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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Jun 27. 2018

미국 선거관리원에 도전! ③  

- 투표소를 설치하고 투표 안내원으로 봉사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선거 당일 내가 배정된 투표소의 책임자인 인스펙터(Inspector) 엘레나로부터 온 이메일이었다. 선거 전날 투표소를 설치하도록 학교로부터 허락받았다며, 가능한 사람들은 3시 30분까지 모여달라고 부탁했다. 그 시간은 아이들이 방과 후에 집에 있는 시간이라 살짝 고민이 되었지만, 가능하면 전날 가서 같이 일할 사람들 얼굴도 보고 투표소도 직접 설치해 보며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후 직접 전화를 걸어온 엘레나에게 가능한 꼭 가서 돕겠다고 말하며, 서둘러 아이들을 부탁할 곳을 알아보았다.


이리하여 선거 전날인 6월 2일. 학교가 마치고 아이들은 각자 친구네 집으로 고고 씽, 나는 우리 집에서 차로 8분 거리의 S 중학교까지 쌩 달려가 3시 30분에 맞춰 도착했다.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물어 약속 장소인 체육관을 찾아가 보니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두 명이 걸어오는데, 그들임을 직감했다.   

"Hi, I'm Elena." 중년의 백인 여자가 자신을 소개했고, 그 옆의 젊은 인도 여자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희한하게도 나와 이름이 같게 들려서 다시 물어보았다. 내 이름은 소나(Sona), 그녀의 이름은 사나(Sana). 우리는 서로 미소 지었다.   


그런데 엘레나는 뭔가 석연찮은 표정이었다. 나에게 반나절만 일하는 거 맞냐고 물어보더니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하길래 약간 당혹스러웠다. 아만다(Amanda)라는 미국 여자가 좀 더 늦게 도착했는데, 그녀에게는 악수도 청하며 더 나긋하게 대하는 것 같아서 이건 뭐자 하는 마음도 살짝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엘레나는 이번에 감독관으로 처음 일해 보는 것이고, 우리 세 명은 선거관리원을 처음 해 본다고 하니 그녀도 더 신경이 곤두섰던 것 같았다. 나도 괜히 더 오버해서 생각하지 않고, 걱정 안 끼치게 내 할 일 열심히 하자, 싶었다.   


그리고는 우리 각자는 말없이 투표 안내 부스와 종이 부스를 설치하고, 전자 부스를 나열하여 하나씩 조립해 나갔다. 옆의 젊은 두 친구는 빨리빨리 잘 하는데, 나는 막상 조립하려고 하니 헷갈리는 부분이 많아서 물어가며 조립을 해 나갔다. 그나마도 다리 방향을 잘못 세운 걸 나중에야 깨닫고 고치기도 했다. 원래 한 시간 반 걸릴 줄 알았던 일이 금세 30분 만에 다 끝났다. 엘레나는 고맙다며 다들 내일 6시에 모이자 하고 헤어졌다. 휴~ 하나의 고개를 그래도 가뿐히 넘어감에 감사했다.     


드디어 실전의 날! 6월 3일 선거 당일, 나는 내 간식과 점심, 물 한 병을 챙기고는 남편에게 아이들 등교를 부탁하며 6시까지 부리나케 투표소로 향했다. 이미 낯익은 투표소의 모습이 마음을 편케 해 주었다. 어제의 멤버 외에 새로 한 명이 더 왔는데, 준(June)이라는 이름의 키가 큰 일본 여자였다. 다행히도 그녀는 선거관리원으로 일해 본 경험이 많았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일을 알아서 처리하는 해결사 스타일이어서 든든한 의지가 되었다. 투표 시작인 7시가 되기 전에 전자 부스 전선들을 연결하고 전원을 켜서 시스템을 가동하는데, 한 군데 부스가 끝끝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 한참을 애먹어야 했다. 그리고 데스크 물품을 정리하고, 밖에 투표소 안내 표지판 등을 부착하고, 투표 안내 포스터 등을 부치며, 성조기를 문 밖에 게양하는 등 사전 준비를 착착 해나갔다.

    

7시, 투표소 오픈 시간은 다가오는데, 각자 무슨 일을 맡을지 아직 말이 없었다. '대체 언제 일을 배분하는 거야?' 엘레나가 처음 감독관을 해보는지라 아무래도 일이 더디었다. 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제일 앞에 앉아 사람들을 맞이하는 사람 역할이 중요하고도 어려우니, 영어 발음도 고려해서 맡는 게 좋겠다 하니 미국인 아멘다가 당첨되었다. 사실 그 말을 일본 사람인 준이 해주었으니 기꺼이 동조가 되었지, 만일 미국 사람이 미국 사람 해야 한다고 했으면 수긍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려운 자리는 안 맡아서 다행~ 그다음 역할은 주소 확인을 하는 자리로, 이 중에서 제일 쉬우니 자기가 하겠다는 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가 그 일을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다들 웃으며 오케이 해 주어서 내가 제일 무난한 일을 맡게 되었다. 사나는 마지막 책상에서 전자 부스 번호표를 끊어주는 일을, 준은 무언가 미비하여 정상적으로 투표를 할 수 없는 모든 경우를 다루는, 본인 말로 'very tricky'-제일 까다로운 일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엘레나는 전체 책임자로 전체를 감독하였다.     


오전 7시, 드디어 투표가 시작되었다. 앞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줄 지어 들어와 금세 투표소가 붐비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딱 마음에 들었다. 환하게 인사를 해 주고, 아멘다가 건네준 용지에서 번호를 찾아 해당 주소를 찾은 뒤 투표자에게 자신의 주소를 물어본 뒤 일치하면 자로 쫙~ 긋고 그다음 사람에게 보내면 되는 일이었다. 여기까지는 쉬운데, 그다음 말을 어떻게 할지가 더 신경이 쓰였다. 그 사람을 다음 데스크로 안내해야 하는데, 그 데스크가 바로 옆이 아니라 제일 끝 쪽에 있어서 그리로 가라고 하면 사람들이 정확히 어디인지 몰라 어리둥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명료하게 어떻게 설명을 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담당자 사나의 블루 셔츠가 눈에 띄어서 "blue shirts lady"에게 가라고 해 주었더니 그다음부터는 잘 알아듣고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표현이 어색한지 어느 사람은 "블루 셔츠 레이디!" 라 따라 하며 미소 짓는 것이었다. 이게 이상한 표현인가 싶어서 옆의 아만다에게 확인했더니 그렇게 써도 괜찮다고 하길래 에라 모르겠다 계속 블루 셔츠 레이디를 가리켜 주었다. 사람들이 금방 알아듣고 그쪽으로 가면 됐지 뭐~ 하면서.     


그런데 사실 내 본 업무는 한국어 통역인데, 어째 한국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를 않았다. 우리 투표소에 속한 구역에 한국인의 비율이 높아서 여러 언어들 중 한국어 서비스가 유일하게 지정된 것인데, 한 명도 투표소를 찾지 않다니! 사람들이 우편 투표로 많이 참여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정작 한국인을 투표소에서 만나볼 수 없어서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미국인 아저씨가 내 이름표에 "한국어 합니다" 글자를 알아봤는지, 갑자기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해서 함께 웃으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비록 한국어 도우미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는 못했지만, 일반 선거관리원으로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사람들의 걸음이 끊기는 한적한 시간에는, 옆에 앉은 다른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아직 미혼인 아만다는 친구 결혼식으로 2년 전 서울을 방문하였다며 그때 사진도 보여 주어서 얼마나 반갑던지. 호탕한 일본 여자 준은 한때 여행사 투어 매니저로 일해서 세계 대도시들을 다녔다며 내가 뉴욕에서 살았다고 하니 바로 아는 척을 해 주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그녀는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본어 통역을 하면서 학교나 병원 등 부르는 곳을 찾아간다며 나도 한번 해보라고 권해 주며 내 연락처도 받아갔다. 그 말만으로도 고맙고 격려가 되었다. (그래도 영어가 나쁘지 않게 들렸다는 게 아닌가! ^^ 정말로 통역을 감당할 만큼 영어를 유창하게 하게 될 날이 오길! 꿈꿔 본다. ) 멀리 앉아 있어 잘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젊은 인도 여인 사나는 그릭 요거트와 바나나, 오트밀로만 구운 건강식 머핀을 구워 와서 하나씩 나누어 주는 마음이 고마웠고, 머핀 맛도 좋았다! 감독관인 엘레나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약간 쌀쌀했던 첫인상과는 달리 중학생, 고등학생 두 아이를 둔 엄마인 그녀와 학교, 교육 등 엄마로서의 관심사도 함께 나눌 수 있었고, 알아갈수록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감독관의 재량 하에 돌아가면서 30분씩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나는 2시까지만 하므로 쉬는 시간 동안 가져온 스낵을 먹고 차 안에서 잠시 쉴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업무를 보니 금세 1시가 되었고, 내 뒤로 오후 시간을 맡아 줄 한국인 고등학생 그레이스가 도착했다. 이제 졸업반인 그녀는 대학교가 잘 결정이 난 상태에서 지금은 하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한국말도 제법 잘하였다. 그래서 남은 한 시간은 그레이스에게 내가 하던 일을 인수인계해 주며 한국말로 수다를 떠는 즐거움도 누렸다.     


아침 6시부터 시작하여 어느덧 8시간이 금세 지나가고 오후 2시가 되었다. 내 업무는 여기서 끝!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반나절의 만남이지만 헤어지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엘레나가 수고해 줘서 고맙다며, 다음에도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에 왠지 기분이 좋았다. 처음 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얼마나 고민을 거듭했던가. 그때 주저하여 결국은 고사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즐거움과 보람은 느끼지 못했으리라.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해 볼만 한데!' 두려웠던 장벽을 하나 넘어선 기분, 돌아가는 발걸음이 상쾌했다.      



PS. 나도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한국어 선거관리원이 부족하니 추천을 해달라는 부탁 전화를 받고 함께 한글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선생님 한 분을 추천해 드렸다. 미국에서 자녀들을 다 잘 키우시고 성격도 적극적이시며 영어도 잘하시는 것 같아 권해 드렸는데, 역시 잘 추천한 것 같았다. 그분도 반나절 봉사하며 세 명의 한국인들을 도와드렸으며 맨 앞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맞이하여 번호표를 나누어 주는 역할도 즐겁게 잘 감당하셨다며 좋은 경험을 하셨다고 고마워하셨다. 나중에 그분의 따님도 투입되어 봉사하였다고 하니 추천한 보람이 더욱 넘쳐났다. 참, 그분은 영주권자여서 처음에 이런 일은 생각지도 못하였다고 했는데, 선거관리원은 영주권자도 참여할 수 있으니 자격이 되시는 분들은 한번 기회의 문을 열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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