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관리원 트레이닝, 그리고 우편 투표
지난 4월 초, 이번 6월에 있을 미국 예비선거(Primary Election)에서 선거관리원(Poll Worker)으로 봉사해 달라는 요청에 수락하고 약 한 달 뒤에 나는 또 다른 메일을 받게 되었다. 선거 당일 내가 일할 투표소로 우리 집에서 가까운 편인 S 중학교가 배정되었다며, 근처 도서관에서 열리는 선거관리원 트레이닝 스케줄을 함께 보내왔다. 최대한 봉사자의 편의를 고려하여 배정해 주는 배려가 느껴져서 감사했다.
또한 메일의 첨부파일에는 내 선거관리원 고유번호(Poll Worker Pass ID)와 함께 웹사이트 정보가 나와 있었는데, 그곳에 들어가 보니 선거관리원 트레이닝 강의도 시청할 수 있고, 내가 일할 투표소 정보 및 함께 일할 다른 봉사자들 명단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어가 부족한 나로서는 사전에 최대한 트레이닝 내용을 숙지하고 싶어서 온라인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전에 유튜브에서 시청했던 트레이닝 비디오가 교재처럼 나와 있었고, 동영상과 함께 요약된 문서를 보여주면서 마지막에 테스트를 거치는 과정으로 되어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보고 들으면서 최대한 대비하고 싶었다.
5월의 어느 토요일, 드디어 선거관리원 트레이닝(Poll Worker Training)을 받는 날이 되었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한 뒤 아침 9시가 조금 못 되어 도서관에 도착해 보니 나보다 빨리 도착한 사람들이 강의실 입구에 줄을 서고 있었는데,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젊은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속으로 '역시 미국! 대단하다' 감탄했다. 본인의 몸이 불편해도, 연세가 많아도 기꺼이 선거에서 봉사하고자 트레이닝에 참석한 모습들이 참 귀하고 존경스러워 보였다. 두 명의 흑인 여성이 번갈아 트레이닝 강의를 진행했는데, 공부한 내용과 다르지 않았기에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어서 속으로 안도했다. 솔직히 비디오로만 볼 때는 감이 잘 안 잡혔는데, 투표하는 도구인 전자 부스(e-booth)와 종이 부스를 직접 설치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투표자가 방문했을 때 어떻게 맞이하여 투표를 돕는지 과정들을 실전으로 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제일 처음 투표자를 보고 "Hi, Good morning!" 하며 환한 얼굴로 인사하는 것을 강조하는 말을 들으며 '그것만큼은 내가 잘할 수 있지!' 싶었다. 모든 내용이 요약되어 있는 핸드북을 받고 나니 더 자신감이 생겼다. 아직 선거 날까지 2주 정도 남았으니, 집에서 핸드북도 꼼꼼히 살펴보고 트레이닝 비디오도 계속 시청하면서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나는 어떻게 투표를 하지?
선거관리원도 처음 해보지만, 투표도 처음 해보는 나로서는 자연히 드는 궁금증이었다. 강사는 선거 당일엔 우리가 바쁠 것이기에 가능한 사전 투표를 하거나 아니면 우편으로 투표할 것을 권했다. 사실 나는 벌써 우편 투표자로 분류된 상태였다. 처음에 유권자 등록을 할 때 멋도 모르고 영구 우편 투표자(Permanent Vote-by-Mail Voter)를 신청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작성한 투표용지를 어디에 내느냐가 궁금했는데, 마침 어느 아저씨가 똑같은 질문을 해 주었다. 대답은, "본인의 지정 투표소가 아닌, 어느 투표소에나 내도 괜찮다"였다. 휴, 다행이었다. 우리 집 주소로 지정된 투표소까지 또 가야 하나 싶었는데, 내가 일하게 될 투표소에 우편 투표용지를 내면 되니까 간단해졌다. 다른 사람 것도 위임받아 대신 내줄 수 있다고 하니, 남편 것도 같이 내면 되므로 더욱 다행이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와 남편의 투표용지가 드디어 도착했다. 과연 미국 투표용지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보았다. 세 장의 종이에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비롯하여 미 상원의원, 하원의원, 법무 장관 등 여러 직함에 도전하는 후보들의 성명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고, 마지막에는 캘리포니아 및 오렌지 카운티에서 새로 발의하는 법 개정의 찬반 투표가 열거되어 있었다. 선택은 후보자 이름 및 항목 옆에 있는 네모칸에 검은색이나 파란색 펜으로 색칠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위해 앞서 도착했던 두 권의 책자—하나는 캘리포니아 주 정부, 다른 하나는 오렌지 카운티용—를 들고는 후보들의 성명과 발의안 내용들을 살피며 선택을 해나갔다. 영어 책자가 먼저 도착했고, 이후에 한국어 책자도 도착했기에 한국어로 훨씬 빨리 내용을 읽고 파악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사실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내용은 상세 설명이 부족하여 웹사이트 등 더 많은 내용을 찾아보면 좋겠지만, 투표 초짜인 나에겐 우선 이것만으로 "Enough!" 하다 싶었다. 어차피 이번 예비선거에서는 최대 득표자 두 명을 가리는 것이고 11월 선거(General Election)에서 최종 선출이 있을 것이기에 나중에 최종 후보자들을 더 꼼꼼히 살펴보자는 마음도 들었다.
많은 후보자들 중에 한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있었으니, 바로 'Dave Min'이란 이름의 한국인이었다. 미 하원의원에 도전하는 법대 교수인데, 얼마 전에 그분의 어머니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서 자신의 아들을 알리며 투표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 적이 있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잘 감당하리라 믿고 또 같은 핏줄이란 의리에 끌려서 선택하였다. 쟁쟁한 여러 후보들로 인해 쉽지 않은 도전이겠지만, 속으로 파이팅을 외치면서.
이렇게 캘리포니아 지역의 여러 현안들을 결정하는 일과, 이곳을 위해 일할 일꾼을 뽑는 투표에 동참하게 되니 뿌듯한 사명감과 보람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의 막중한 임무, 선거관리원으로 일하게 될 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생각만큼 준비를 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모르면 물어보며 부딪치면 되겠지. 그래, 이제는 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