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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Jun 09. 2018

미국 선거관리원에 도전! ①

- Poll Worker 제안 메일을 받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사실 내 국적이 바뀌었다는 게 잘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미국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권리와 의무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당당하게 내 한 표를 행사하리라고 결심했건만, 사실 미국에서 투표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참여하는지 까막눈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장면을 지켜보며 간접 선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미국 선거 과정이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다만, 이민 강경 대책을 내세운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시민권을 신청한 게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는 뉴욕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오면서 인터넷을 통해 새 주소로 유권자 등록을 하긴 했으나 그 후로는 새로운 환경과 생활에 정착하느라 바빠서 투표에 대해 관심도, 신경도 쓸 겨를이 없긴 했다.    


2018년 3월, 그날따라 나는 영어에 찌그러져 좌절감을 맛본 상태였다.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온, 번역자 모집 광고를 보고는 집에서 부업으로 한번 해보겠다고 며칠 고생해서 테스트용 번역문을 작성해서 보냈는데, 아무 답도 없는 것이었다. 내 번역문이 답장할 가치도 없단 말인가 하며, 혼자서 속상해하며 '받은 메일함'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문득 어느 영어 메일이 도착해 있는 걸 발견했다. "Poll Worker Training Schedule Information"이란 제목을 보며 '엥? Poll Worker가 뭐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선거관리원'을 뜻하는 말이었다. 내용인즉, 이번에 새로 유권자로 등록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면서 이번 6월 5일에 있을 주 전역 예비선거에서 이중언어 선거관리원으로 일해보지 않겠냐며 제안하는 것이었다. 영어가 불편한 한국 사람들을 위해 투표소에서 통역을 감당하며 사람들의 투표를 돕는 일인데, 그 일을 통해 미국 시민으로서 의무를 감당하면서, 한국 커뮤니티도 돕게 되는 일이라며 사명감을 고취시켰다. 또한 수고비도 받게 되는데, 선거 전 3시간 트레이닝을 받으면 20불, 선거 날 봉사하면 100불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미국 선거에서 선거관리원으로 봉사한다는 것도 근사하게 여겨졌고,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면서 한인 동포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이 느껴졌으며, 이를 준비하면서 영어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내게 참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그러면서 돈도 벌 수 있다니 일석 몇 조란 말인가.     


나는 마음이 확 끌려서 문의 메일을 보냈다. 제일 궁금한 것은, 선거 당일에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하는가였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또 방과 후에 데리러 가야 하는 나의 스케줄로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바로 답이 왔다. 무려 아침 6시부터 밤 9시 30분까지가 풀타임 스케줄이지만, 아침 6시부터 2시 혹은 2시부터 밤 9시 30분까지 반나절씩도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럴 경우 트레이닝 비용 20불에 선거 당일 봉사비로 50불, 총 70불을 받게 된다면서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겠노라고 답변이 왔다.   


반나절만 할 수도 있다니 고무적인 소식이었다! 오후 2시에 마치면 아이들 픽업은 할 수 있기에 괜찮았지만, 아침 6시가 관건이었다. 남편에게 그날만 조금 늦게 회사에 출근하고 아이들을 준비시켜 학교에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해주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한번 도전해 볼까?!!    


그런데 막상 한다고 답을 쓰려니 영어가 걸렸다. 투표 절차도 잘 모르고 영어도 유창하지 않으면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생각하니 영 자신이 없었다. 먼저 내가 감당할 만한 일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유튜브에서 'California Poll Worker'를 검색해 보니 관련 트레이닝 비디오들이 나오길래 한번 시청해 보았다. 선거 전에 투표소를 셋업 하는 일부터 선거 당일 사람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이름과 주소를 확인하고, 전자 부스(e-booth)나 종이로 투표를 잘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투표 마감 후 투표소를 정리하는 일까지였다. 말만 잘 알아듣고 잘 안내해 준다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는데, 문제는 내가 그 빠른 영어들을 잘 알아듣고, 여러 상황에 대처하며, 이중언어 선거관리원으로 통역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아무래도 자신이 없고 망설여졌다. 그래서 솔직하게 메일을 다시 보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지만, 투표도 처음인 데다가 영어가 유창하지 않고 아직도 배우는 중이니 투표에 더 익숙해지고 영어에도 더 자신감이 생기면 그때 다시 지원해 보겠노라고. 그랬더니 또 바로 메일이 왔다. 이번엔 한국말로 왔다. 내가 영어로 쓴 이메일을 읽어보니 영어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지금 한인들의 인구가 많아져 시민권자 및 등록 유권자는 많아지는데 투표소에서 영어가 서툰 이들을 도와줄 이중언어 구사자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꼭 도와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는데, 내가 그렇게 필요하다는데, 뭘 더 망설이는가! 번역 일이 성사되지 않아서 마음이 좀 상해 있던 내게 이 메일은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게다가 나 영어 잘 못한다고 말도 해놨으니 마음도 더 편해졌다. 사실 영어 못하면서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게 제일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번역 일이 성사가 되었어도 영어 잘하는 척 번역을 해보려고 얼마나 고생을 할 것이며, 그 약간의 대가를 받겠다고 낑낑대느라 더 소중한 것들을 많이 놓쳤을 것이니 차라리 처음부터 안 된 게 잘된 일이다 싶었다.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더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우선은 내게 호의적으로 열려 있는 이 길부터 걸어가 보기로 하면서.


"Half-day로 봉사하겠습니다." 마침내 나는 수락의 메일을 보냈다. 이리하여 나는 2018년 6월 5일 미국 주 전역 예비선거에서 이중언어 선거관리원으로 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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