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교에서 일하기
미국 고등학교에 취직하면서 왠지 어깨가 으쓱으쓱 해졌다. 마치 미국 주류사회 속으로 진출하는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남편에게 말했다.
두고 봐요, 이제 내가 자기보다 영어 더 잘하게 될 걸요!”
피식 웃는 남편에게 겉으로는 호탕하게 선언했지만, 막상 학교에 가면 못 알아들을까 봐 잔뜩 긴장하고 있는 이 심정을 그대는 알까.
우리 선생님은 확실히 말이 빨랐다. 휘리릭 끝. 그녀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했다. 그래도 짧게 말할 때는 괜찮다. 문장이 길어지면 더 곤란해진다.
“Will you tilt her wheelchair?”
학생의 휠체어를 밀면서 교실로 들어오는데, 이 말이 들려왔다. 말은 확실히 들었지만, ‘틸트’(tilt)라는 단어 자체가 내게 낯설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봐도 될 텐데, 나는 주저했다. 무식이 탄로 날까 싶어서.
다행히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었다. 내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휠체어를 뒤로 젖히는 것, 그게 ‘tilt’였다. 아하, 나는 얼른 접수했다. 그 뒤로 그 단어는 내 입에 착 붙어서 늘 쓰는 용어가 되었다.
어느 날은 다른 교실의 학생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데, 선생님이 다음 과제로 학생에게 ‘shredding’을 시키라고 주문했다. 많이 들어 본 단어인데 언뜻 생각이 안 났다. 너무 쉬운 단어를 묻기도 민망해서 눈치코치 동원해 보니, 옆에 종이를 드르륵 분쇄하고 있는 다른 학생을 보고서야 감을 잡았다. 그렇게 익힌 단어들은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다.
“I will get that door.”
내가 휠체어를 끌면서 문 쪽으로 향하면, 다른 사람이 문을 잡아 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문을 열어 주겠다는 표현을 할 때 ‘open the door’라고 하지 않고 ‘get’이란 동사를 쓰는 것 자체가 내게는 새로웠다. 배운 것은 바로 써야 한다. 그 후로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문을 열어 줄 때마다 그 표현을 썼다.
내가 정말 바라던 일터가 아닌가. 하루 5시간 일하면서 온통 들리는 것이 영어이니, 축복받은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 말들을 잘 알아듣고 적절히 대답을 하면, 혼자서 나 자신을 뿌듯해한다. 하지만 영어의 벽은 높게 느껴졌다. 마음처럼 말이 안 나와줘서 버벅거리기라도 하면 창피하고, 잘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한 순간도 많다. 제일 좌절감을 느낄 때는 사람들이 수다를 떨 때이다. 말들은 왜 이렇게 빨리 하는 건지, 대략 감을 잡으면 다행이고, 수다에 한 마디 보태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의 나는 말수가 참 적었다. 그녀들은 나를 조용한 사람으로 알겠지만, 그 말들을 다 알아듣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내 심정을 그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내가 맡은 학생들은 말을 못 하는 아이들이어서 상대적으로 말을 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말도 자꾸 해야 느는 법인데, 남들 이야기하는 것만 듣다가 집에 돌아갈 처지였다.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사 특별히 하사해 주신 선물이 있었으니, 바로 같이 일하는 간호사였다. 나는 여학생, 간호사는 남학생을 맡아서 같이 산책을 시켜 주고 기저귀 갈 때도 서로 도와주기 때문에 늘 옆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처음에 같이 일했던 간호사는 백인인 젊은 아기 엄마였는데, 말이 빠르고 발음도 잘 알아듣기 힘들어서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했다. 그녀와의 대화는 나로 하여금 빠른 영어에 조금 더 익숙해지고 생생한 표현들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원래 그녀는 다른 에이전시에 소속된 파견 간호사였는데, 얼바인 교육구에서 일하고 싶어서 취업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결과가 좋기를 바라는 마음을, 둘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 꼬면서 “cross finger”라고 말하는 들으며 나 또한 몰랐던 표현 하나 배웠다. 함께 일하면서 육아를 비롯해 여러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가 오지 않고 또 다른 간호사가 스쿨버스에서 내렸다. 페루 출신인 새로운 간호사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이민 온 시점은 비슷하지만 영어 실력은 훨씬 뛰어났다. 말하는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고 발음도 정확히 잘 들려서 그녀의 말은 알아듣기가 더 수월했다. 하지만 발음에 악센트가 있고 기존의 영어 발음과 다르게 발음하는 단어들(예를 들어 ‘마운틴’을 ‘몬타인’으로 발음)이 더러 있어서 그 점만 주의하면 대화하는 데 별 문제없었다.
사실 미국의 빠른 영어에 익숙해지려면 예전의 간호사가 딱이었는데,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처음엔 다소 아쉬웠다. 그래도 페루 출신인 그녀와는 마음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영어 잘 못한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같은 이민자로서 서로 다 이해해 주기에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실제로 우리는 살아온 이야기를 비롯해 가족과 자녀교육, 종교 등 여러 영역에 걸쳐 많은 대화를 나눈다. 어제저녁엔 뭘 했는지도 소상히 나누다 보니 서로의 일상에 대해 잘 알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를 염려하며 위해 주는 마음도 더 커져 간다. 함께 있다 보면 언어의 장벽도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처럼 학교에서 일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영어에 한결 더 자신감이 생긴다. 마트나 식당, 밖에 나가서 영어를 쓸 일이 생기면 이제는 더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영어를 써야 할 때 주저하는 일이 훨씬 줄어든 셈이다. 낯선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하는 것도 더 자연스러워졌다.
한편으로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일하다 보면 내 부족함을 많이 느끼기에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자극과 도전을 받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하여 계속 들어보고, 유용한 표현들을 반복하여 따라 하는 등 이전보다 더 노력을 하게 된다. 영어를 잘해야 학교에서 내 역할도 잘 감당할 수 있고, 학생들의 필요에 맞춰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도 더 늘어나기에 아무래도 필요성이 더 간절해진다. 이제 영어는 중요한 직업적 능력이기도 하다.
예전에 막연히 꿈꿔 왔던 일, 일하면서 영어 공부하는 그런 직장 없을까 했던 그 소원이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이루어져 있었다. 일하느라 몸은 더 고단하지만, 마음엔 감사가 넘쳐난다. 영어가 더 편해지고 더 자연스러워지길 바라면서 오늘도 귀를 쫑긋, 입을 벙긋 열어 본다.
Tip. 유튜브로 영어 공짜로 배워 볼까
- 말킴의 영어 뽀개기 : 뉴욕과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영어 강사 마크 김의 강의와
영어 필수 표현이 담긴 패턴 500, 응용 500 문장들을 음성파일로 접할 수 있다. 현지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 각 문장들을 12번씩 들으며 따라 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말킴의 영어 뽀개기’ 네이버 카페에 들어가면 공부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다양한 영어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이분이 만든 모바일 앱 ‘SCHOOOL’에도 활용도 높은 영어 표현들이 가득하고, 문장을 저장하여 반복하여 공부하는 기능도 있으니, 다운로드받아 유용하게 사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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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 박(Summer Park) 이영시 영어 듣기: 20대에 영어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여 뉴요커 영어 강사가 된 서머 박의 ‘이제부터 영어 시작하기’(이영시) 유튜브 채널에는 영어 듣기를 비롯해 문법, 발음, 패턴 영어 등 다양한 강의를 제공한다. 특히 미국 드라마를 반복해서 따라 하는 영어 듣기 시리즈는 흥미롭고 효과적으로 영어 청취 실력을 향상시키도록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