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아는 것이 힘이다
최근에 주치의에게 온라인 상담을 요청하여 이것저것 문의를 하던 중, 나의 오랜 고질병인 두통으로 화제가 전환되었다. 요새 계속 집에 있어서인지 머리가 더 자주 아픈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의사는 MRI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MRI 검사라… 덜컥 비용부터 걱정되었다.
“보험으로 커버가 되나요?”
“보험으로 되는지 알아보고, 만일 보험을 처리하는 게 더 비싸면 현찰로 내시는 게 나을지 몰라요. 400불 정도 하거든요.”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400불이라고요? 정녕 그렇다고요?
그도 그럴 것이, 내겐 MRI와 관련한 뼈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통인지 편두통인지, 지끈지끈 머리 아픈 증상은 빈도수가 잦은 데다가 약도 안 들을 때면 오랜 시간 지속되기 때문에 내겐 늘 골칫거리였다. 수년 전, 뉴욕에 거주할 때도 두통 때문에 전문의 진료를 받게 되었는데 의사가 MRI 검사를 권했다. 우선은 검사 비용이 어떤지 몰라서, 보험으로 커버가 되는지 그곳 여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다 충당될 거라고 답해 주어 안심하고 예약을 잡았더랬다. 영어로 전화하기 두려워서 보험회사에 직접 전화는 해보지 않았지만, 뭐 다 되겠지 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렸다.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안도를 했는데, 한참 후에 청구서가 날아왔다. 보험으로 1,200불 처리되고, 나머지 1,400불 정도가 본인 부담금이라는 것이었다. 헉, 이럴 수가… 예상치 못했던 청구서에 뒤통수를 맞고 나니, 두통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듯했다.
억울하여 어떻게든 해결책 혹은 디스카운트라도 받아보고자 보험회사에도, 검사소에도 전화를 걸고 편지도 보내봤다. 잘만 하면 협상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 더 큰일이 벌어졌다. 기다려주지도 않고 얄짤없이 내 청구서를 컬렉션(빚 수금업체)에 넘겨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컬렉션을 상대로 어떻게 해야 하지… 도움받을 이 하나 없어서 인터넷을 뒤져 경험담들을 리뷰하여 전략을 짠 후 컬렉션 측과 협상을 시작했다. 부족한 영어로 협상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자꾸 깎아달라고 이야기하기도 참 무안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깎아서 마침내 내 목표금액인 700불에 도달했다. 그쪽에서도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모질게 말하여서 거기서 협상을 멈추었다. 다 갚고 나니 얼마나 얼마나 후련하던지! 비록 신용점수가 깎이는 아픔도 겪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내게 비싼 비용을 치르게 했던 MRI 검사가 여기서는 현찰로 내면 400불 밖에 안 한다고? (물론 400불도 적지 않지만, 이전에 낸 비용에 비한다면야...)
예전의 아픈 기억이 스쳐 지나가며 한숨이 절로 내쉬어졌다. 캘리포니아와 뉴욕의 차이일까? 아니면 검사소마다 다른 걸까? 혹시 모른다. 그때도 어쩌면 보험을 내미는 게 아니라 현찰로 냈으면 더 저렴하게 받았을지도.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랴. 아무것도 알아보지도 않고, 병원 직원 말만 믿고서 덜컥 검사를 받아버린 내가 잘못이지….
미국에서 살다 보면,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묻기를 주저하는 일이 많이 생기는데, 그러다 보면 이런저런 억울한 손해를 보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그러다 이런저런 경험이 쌓여가면, 삶의 지혜도 더 생겨나고, 용기도 더 생겨난다. 미국인 상대로 내 할 말 조금이라도 더하는 배짱이 생겨나는 것이다.
아무튼 이리하여 두 번째 받게 된 MRI 검사. 쿵쾅쿵쾅 귀청을 흔드는 기계음 소리를 들으며 20분을 꿈쩍없이 누워서 받았고, 결과도 바로 다음 날 시원하게 받았다. 별다른 이상은 없고, 다만 편두통인 듯한 사인이 보인다는 소견을 받았다. 신경내과, 편두통 전문의를 찾아가라는 의사의 권유를 고맙게 받았다. 이로써 두통의 원인과 치료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되길.
한편으로 괜찮다고 얘기 들을 거 왜 또 받았나 아까운 마음도 들지만, 아니다 아니야. MRI 검사, 이번엔 더 착한 가격으로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으니 받기를 잘했네! 하면서 핑크빛으로 마무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