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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 전문 한의원'의 길을 말하다, 이제원 한의사 2

by 대신만나드립니다
1편의 전문의 생활 및 수련과 내과 전문 한의원 운영 철학 이야기는 재밌게 읽으셨나요? 2편에서는 의료기기 활용 및 임상 판단과 원장님의 자세한 임상 경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의료기기 활용 및 임상 판단

Q. 진료에서 진단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신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한의학은 비기계적 진단에 기반을 둔다고 여겨지는데, 실제로 검사 결과를 한약 처방에 어떻게 연결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수치나 영상 소견에 따라 처방을 달리하거나 조정한 경험이 있다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먼저 “한의학이 본래 비기계적 진단에 기반한 학문인가?”라는 질문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실 고전 의서에 의료기기나 검사 결과가 없는 건, 그 시대엔 그런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만약 허준 선생이 지금 동의보감을 집필한다면, 현대의 CT, MRI, 내시경과 혈액검사, 각종 화학약물까지도 분명히 다 참고해서 책에 담으려 했을 겁니다. 당대에 존재하던 모든 의학 지식을 집대성하려고 했으니까요. 저는 한의학이 과거에 멈춘 학문이 아니라,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새로 등장하는 과학적 진단 도구들도 마땅히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고요.

한의사는 항상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 진단해야 합니다. 우선 ‘병에 대한 진단(국제표준 분류 및 현대 과학적 지식 체계에 의거한 진단명을 내기 위한 변병)’을 하고 그 뒤에 ‘한의학적 이론을 위주로 한 진단(한의학적 처치를 정하기 위한 변증)’을 따로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두통 환자가 오면 바로 반하백출천마탕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편두통인지, 긴장성 두통인지, 혹은 뇌출혈·뇌경색 같은 응급 질환은 아닌지부터 감별해야 해요. 필요하면 CT나 MRI도 찍어야 하고요. 변병 없이 변증으로만 처방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변병’—병 자체에 대한 정확한 감별 진단—이 반드시 선행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 현대 진단기기는 필수예요. 골절이나 뇌경색 진단을 맥만 짚어서 할 수는 없잖아요. 당뇨, 고혈압도 마찬가지고요. 진단 기준에 진단기기를 활용한 객관적 데이터가 포함되어 있는데, 당연히 그 기기를 써야죠.

실제로 2011년부터 한의사들은 상병 코드(KCD-8, ICD-10 기반)를 써서 진단하고 있습니다. 벌써 15년 가까이 됐죠. 이걸 쓴다는 것 자체가 한의사가 병을 진단하는 주체라는 의미고, 당연히 의료기기 활용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제가 꼭 강조하고 싶은 건, 진단기기를 공부할 때 처음부터 '한방 변증에 어떻게 연결하지?'라는 생각으로 접근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CT나 MRI는 병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한 변병 도구지, 변증을 뽑아내는 도구는 아니거든요. 이걸 억지로 연결하려 하면 논리적 비약이나 오류가 생기기 쉽습니다.

먼저 기본적인 ‘변병’이라는 국제표준 및 현대 과학적 지식에 따른 진단에 맞게 활용하는 데 익숙해지고,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패턴을 변증에 참고하는 건 그다음입니다. 예를 들어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았다가 정상으로 회복됐다면, 가장 먼저 “빈혈이 호전됐다”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다음에야 “혈허증이 개선됐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거예요. 병 진단이 우선이고, 변증은 그다음입니다.

저는 초음파 자격증을 딴 뒤에, 도플러 초음파로 요골동맥을 보면서 맥진에 연결해 보고 있는데, 의미 있는 관찰 결과가 있었습니다. 沈脈이나 虛脈이라고 느꼈던 맥이 실제로는 혈관도 굵고 혈류도 잘 흐르는 경우가 있었고, 맥이 안 잡혀서 확인해 보니 아예 요골동맥이 우리가 기구맥을 짚는 위치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해부학적 변이도 관찰되었고요. 그 후로는 맥진할 때 이런 변이를 고려해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식의 관찰과 경험이 쌓이면 진단기기를 활용한 변증에 훨씬 더 설득력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리하면, 병 진단(변병)과 증에 대한 진단(변증)은 분리해서 각각의 기준을 명확히 가져가야 합니다. 현대 진단 의료기기는 주로 병 진단, 즉 변병이 목적입니다. 이들 기기를 통한 검사 결과를 변증에 연관 짓는 것은 임상 경험을 통해 서서히 익혀가야 하므로, 처음에는 두 영역을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질병명을 명확히 진단한 뒤에도 결국은 한의학적인 변증을 거쳐 처방하시게 될 텐데요. 원장님께서는 실제 임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변증을 하고 계시는지, 교과서적인 기준을 따르시는지 아니면 나름대로 체득하신 원칙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임상 현장에 있다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변증 스타일이 생깁니다. 저 역시 경험이 쌓이다 보니 변증 진단이 제가 자주 보는 유형이나 자신이 있는 유형으로 쏠릴 때가 있어요. 그래도 저는 교과서의 진단 기준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제가 변병과 변증 두 가지 범주의 진단을 하는 것도 교과서를 따른 겁니다. 교과서나 임상 논문을 보면, ‘질병명(변병)’과 ‘변증’이 나란히 정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현대 과학에 따른 진단이 먼저, 그다음에 한의학적 변증이 따라붙는 구조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제 머릿속에 두 가지 범주의 진단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만약 제가 모르는 변증형이나 낯선 케이스가 있다면, 저는 교과서부터 다시 펼칩니다. 교과서가 중요한 이유는, 임상에서 치료 계획을 수립할 때 가장 훌륭한 참고문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용한 처방이나 시술이 얼토당토않은 나만의 망상이 아니라, 한의과대학에서 “공식적으로 배운 내용”이라는 근거가 되어주죠.

혹여나 법적인 분쟁이 생겨도 가장 든든하게 내 치료 과정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지켜줄 수 있는 게 교과서입니다. 그래서 교과서 개정도 중요한 것이죠. 저는 교과서가 개정되면 새로 사서 챙겨봅니다. 임상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교과서를 참고하실 필요가 있어요. 저는 교과서에서 근거를 찾아보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설명하거나 소견서를 작성하는 식으로 임상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애매할 땐 논문, 특히 임상 증례 논문을 찾아봅니다. 우리는 맞춤 의학을 하므로 케이스마다 완전히 다른 치료 계획이 수립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임상 증례 논문이 굉장히 중요한 자료라 생각하고, 많이 찾아보는 편이에요. 임상진료지침도 많이 참고하는 편이고요.


Q. 저는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이 환자를 내가 치료해 봐도 될까?’라는 고민을 자주 하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서 엄마 친구분께서 폐에 간유리음영이 있어서 양방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받았지만 거부하고 한약을 원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어떤 기준으로 한의 치료가 가능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할지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진료 현장에서 한의 치료가 적절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어떻게 구분하시는지, 또 그 판단 기준을 어떻게 학습하시고 체화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임상적 판단 기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병동에서 입원 환자분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입원 환자를 하루 종일 관찰하면서 약을 쓰고, 바이탈을 체크하고, 증상 변화 양상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경험이 임상적 감각을 길러줬어요. 외래 진료만으로는 사실 이게 어렵습니다. 외래는 환자분을 잠깐 보고 며칠 후 다시 보게 되니, 약의 반응이나 위험 신호가 어떤 흐름으로 나타나는지를 놓치기 쉽거든요. 아무리 혈액검사나 엑스레이 보는 게 익숙하다고 해도, 환자분들에게 확실하게 얘기하기가, 자신감이 생기기가 어려워요.
실제로 내과 진료를 하고자 하는 분들이 종종 질문해요. “수련 없이도 내과 특화가 가능할까요?”라고 묻곤 하는데, 저는 “어렵다. 24시간 환자를 본 경험이 없지 않으냐, 그것만으로도 매우 큰 약점이 될 수 있다.” 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결국 중요한 건, 환자를 24시간 내내 관찰하고, 내가 쓴 약의 효과를 몇 시간 단위로 확인하면서 환자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계속 체크해 보는 경험이에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 정도는 내가 커버할 수 있겠다.” 같은, 나만의 임상적 감각이 생깁니다.

특히 폐렴 같은 질환이라면, 지금 이 환자의 병정에서 양방적인 관점에서는 어떤 처치를 할 수 있고, 한의학적으로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그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이득이 크고 어느 쪽이 위험 부담이 더 큰지—이런 득실을 실질적으로 가늠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현실적인 득실 판단은 단순히 교과서나 검사 수치만으로는 어려워요. 몸으로 겪어보고, 환자의 반응을 실제로 확인해 본 경험이 결국 기준이 됩니다.

실제로 임상 현장에서의 판단은 의사마다 전부 다를 수밖에 없는 영역이에요. 똑같은 환자를 보고도 한 명은 ‘항생제를 바로 써야 한다.’라고 하고, 다른 한 명은 ‘항생제 쓸 필요 없다.’라고 판단할 수도 있어요. 이는 각 의사의 임상 경험이 100% 동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정도는 지켜야 한다.’라는 최소한의 가이드로서 교과서와 진료지침이 있는 거고요.
만약에 질문 주신 환자분을 외래에서 본다면, 적절한 트랜스퍼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심도 있게 상담을 해주시고 싶으면, 적어도 엑스레이나 혈액 검사는 확인한 뒤에 판단하셔야 합니다. 어머님 친구분께서 간유리음영이라고 하셨죠?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상 소견이고,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지 머릿속에 바로 그려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양방에 가면 어떤 처치를 받게 될지, 거기에서 환자가 겪을 수 있는 단점은 뭔지, 한의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무엇인지—이런 것들을 비교해서 환자에게 가장 나은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 사실 학생 때는 이게 쉽지 않습니다. 결국엔 임상경험이 쌓여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 외래에서도 환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합니다. 예전에 코로나19 감염으로 폐렴을 앓으셨던 환자분이 다시 코로나19 진단을 받으셨다며 내원하신 적이 있었어요. 내원 당시 체온은 36.7도로 열은 없었지만, 인후부 불편감과 감기기운이 있었고 청진상 폐 소리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내원하셨을 때, 두통, 근육통이 나타나 임상 증상에 변화가 관찰되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열은 없었습니다. 저는 청폐배독탕을 증량하고 댁에서 체온을 자주 측정하여 제게 알려달라고 말씀드렸어요. 댁으로 가신 지 약 두 시간 후 “환자가 오한과 전신통 등 몸살기가 심하고, 체온이 38도가 넘어 열이 관찰된다”라며 보호자가 연락을 주셨고, 마침, 그때가 주말 오후라 저는 바로 응급실로 가셔야 한다고 안내해 드렸습니다. 결국 코로나19로 인한 폐렴으로 진단받으셨어요. 이후 환자분은 해열제 및 항생제 투약을 하며 입원 치료를 받으셨는데, 그동안에도 보호자와 소통하며 환자분의 증상에 대한 정보를 얻었어요. 그리고 퇴원하시고 난 다음에 다시 저희 한의원에 오셔서 치료를 이어갔습니다.

이렇게 환자 상태를 보고 어떤 치료가 우선인지, 어떠한 종류의 개입이 이뤄져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임상 경험이 쌓여서 가능한 거예요.

처음엔 저도 잘 못했습니다. 그래서 강조하고 싶은 건, 내가 임상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환자가 곁에 많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무작정 환자의 수만 늘리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한 환자를 보더라도 환자와의 소통을 자주, 깊이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환자 한 분에게서도 얻는 정보가 훨씬 많아지고, 이는 임상 실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하루에 10명의 환자를 보는 것보다, 한 명의 환자를 열흘간 꾸준히 관찰하며 증상 변화 양상을 살피고, 임상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때로는 더 깊은 배움이 될 수 있어요.

이렇게 경험 중심으로 접근하는 교육이 바로 현대 내과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현대 내과학의 아버지’ 윌리엄 오슬러가 병동에서 환자를 직접 지켜보며 배우는 수련 시스템, 즉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저 역시 임상 경험이 쌓이면서, 왜 이런 시스템이 필요한지 피부로 느끼게 됐어요. 환자의 증상 변화에 따른 치료의 타이밍이나 종류 결정은 책이나 강의만으로는 쉽게 알 수 없고, 직접 환자를 곁에서 보고 경험을 축적해야만 체득된다는 것, 반드시 이런 경험이 있어야 제대로 된 내과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원장님은 다양한 내과 질환을 진료해 보셨는데 실제 임상에서 ‘이 분야는 정말 한의학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강하구나.’라고 느끼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만약 있다면 어떤 질환에서 그런 차이를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첫 번째는, 양방에서 “병은 없다”라고 하는데 환자분은 분명히 증상이 있는 경우입니다. 최근에도 이명 환자분이 오셨는데요, 이미 부신피질호르몬, 항히스타민제, 이뇨제 및 벤조다이아제핀계 향정신성약물 등을 4주 넘게 복용하셨는데도 호전이 없었어요. 이비인후과에서는 청력검사 등 관련 검사까지 다 했지만 “딱히 문제없다.”라는 말만 들으셨고요. 그래서 제가 MRI도 찍어오시라고 안내해 드리고, 혈액검사도 해봤지만, 이명 증상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을 만한 결과는 없었습니다. 그 뒤에 저는 이 환자분의 증상을 ‘담화이명(痰⽕⽿鳴)’으로 진단하고 약을 처방했어요. 이런 경우야말로 한의학이 양방적인 관점에서는 제시할 수 없는 또 다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생활습관병, 예를 들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질환들입니다. 단순히 수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약에 의존하지 않고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로 끌어올리는 데는 한의학적 관점을 통한 접근이 확실히 강하다고 느껴요.

자가면역 질환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방적인 관점에서는 부신피질호르몬제나 면역억제제, 대증요법을 위한 몇 가지 약물들 외에는 선택지가 거의 없지만, 한의학적 관점으로는 몸의 균형이 깨진 원인을 찾고 교정하면서, 면역계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호르몬 관련 질환도 양방적인 관점에서는 특정 호르몬을 직접적으로 조작해서 원하는 결과를 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갑상선 질환, 당뇨, 생식 호르몬 변화로 인한 질환들까지—이런 전반적인 내분비계 문제에서 한의학이 훨씬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성 소화불량이나 염증성 장질환, 또 내시경상으로는 이상이 없는데 소화기 증상이 계속될 때도 한의학적 접근이 굉장히 강점이 있습니다. 급체(急滯)에 해당하는 급성 소화불량도 물론이고요.

피부 질환에도 한의학적 접근이 굉장히 효과적이에요. 양방적인 관점에서는 항생제, 항진균제, 항히스타민제, 보습제나 스테로이드 등 대증요법 위주로 접근해요. 그러다가 결국 ‘기승전 스테로이드’인데, 스테로이드의 효과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대증요법일 뿐입니다.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증상이 계속 이어지게 되고, 오히려 화학약물의 부작용으로 인해 이중고를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한의학적 관점으로는 스테로이드를 테이퍼링(점진적 감량)하면서, 피부 증상의 개선뿐만 아니라 환자분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까지도 개선할 수 있는 포괄적인 치료가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화학합성약물이나 시술 및 수술 등 다양한 선택지에 대해 충분히 알고, 한의학적 접근과 양방적인 접근 중 어떤 선택지가 더 나은지 환자분들께 명확하게 안내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양의사에게만 진료를 받은 많은 환자분이 다른 선택지가 없는 줄 아시고 양의사가 제시한 시술이나 수술을 어쩔 수 없이 받으시는 경우가 있거든요. 수술은 우리 몸에 비가역적인 손상과 후유증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환자분들은 수술 병력으로 인해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어요. 가령 스텐트 삽입이나 담낭 절제술 등을 하고 오신 분들께는 처음부터 '수술 자체가 몸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어서, 100% 회복될 수 없다는 걸 고려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우리 한의사들이 어떤 시술이나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양의사의 소견에 대해 “2차 소견”으로서 한의학적 관점으로 시술과 수술 필요 여부를 판단하여 환자분에게 또 다른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한의사가 직접 이러한 치료를 시행한다면 환자분들의 질병 치유와 건강 회복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양의사의 독점적인 의료 행위로 인한 폐해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도록 우리 한의사들이 역량을 계속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급성 발열성 질환들에도 한약이 잘 듣습니다. 저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비대면으로 청폐배독탕 처방을 많이 해드렸습니다. 타이레놀과 같은 해열제를 함께 구비해놓으시고 열을 4시간마다 체크해서 문자로 보내달라고 안내해 드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할 수 있도록 한 상태로 치료했고, 실제로 환자분들은 해열제 복용 없이 한약만으로도 잘 회복되셨어요. 이렇게 한의학의 도움으로 치료된 경험을 한 환자분들이 ‘한약 먹으니까 훨씬 컨디션 저하가 덜하고, 병이 빨리 회복되는 것 같다.’라는 인식을 갖고 나중에 다시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또 한의학적 치료 방법을 찾으시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한의학이 강점이 있는 분야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중요한 건, 환자분들께 ‘다른 길이 있다’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질환이 있을 때 무조건 양방만이 답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런 경우 한의학적으로 훨씬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라는 인식을 환자분들이 가지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진료 경험


Q. 연령대별로 내원하는 환자군의 질환이나 패턴이 다를 것 같습니다. 각 연령대에서 가장 흔하게 마주치는 증상과 진료 시 원장님께서 특별히 신경 쓰시는 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A. 진료에서 제가 가장 신경 쓰는 건 “이 질병이 왜 생겼을까?”를 끝까지 파악하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혈압이 높으면 그냥 그 수치를 떨어뜨리는 데만 집중하지 않고, “왜 이 사람의 혈압이 높아졌을까?”를 먼저 고민하죠. 그래서 진료 시간이 긴 경우가 많아요. 현병력뿐 아니라 과거력, 검진 결과, 사회력, 가족력, 복용 중인 약, 생활습관까지 다 확인합니다. 그렇게 하나씩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이 사람의 증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거든요.

그리고 다음 단계로 “지금 이 사람이 겪고 있는 이 증상이 과연 나쁜 걸까? 아니면 몸이 살아남기 위해 하는 노력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요. 증상이 불편하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우리 몸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일 수 있어요. 대표적인 게 ‘발열’이죠. 열이 난다는 건, 내 몸이 면역계를 활성화하려고 일부러 체온을 높이는 건데, 많은 분이 열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해열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과연 그게 항상 맞는 선택일지 의문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구토도 마찬가지예요. 구토도 몸이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반응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환자분이 구토하면, 항구토제를 먼저 떠올려요. 항구토제로 사용되는 약물들은 주로 구토를 유발하는 특정 신경 경로를 막는 방식으로 작용해요. 언제나 항상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다양한 관점으로 우리 몸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병이 왜 생겼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이 증상이 몸의 회복을 위한 활동인가, 아니면 병의 나쁜 반응인가?”를 고민해 보는 게 필요해요. 이런 관점을 갖추면 진단명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연령대별로 질환군은 분명하게 나뉘는 것 같아요.

10대분들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성장기에 있기 때문에 틱 장애, 피부 질환, 소화기 문제로 내원하시는 경우가 많고요.

20대는 자율신경계 실조가 특히 흔해요. 소화기 증상, 피부 문제도 여전히 있고요. 아무래도 요즘 음식들의 질적인 문제나 건강하지 않은 생활 방식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30부터는 체중 관리나 비만으로 오시는 분들이 생기고, 소화기 증상, 자율신경계 실조는 여전히 있습니다.

40대에 들어서면서는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등과 같은 생활습관병 진단을 받으신 분들이 많아지죠. “이 약 꼭 먹어야 하나요?”, “다른 치료법은 없을까요?” 이런 질문들을 하시면서요. 갑상선 질환을 가지고 계신 분도 많습니다.

40~50대를 묶어도 될 것 같아요. 이들 연령층에서는 비만,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이 많습니다. 연령이 증가할수록 부정맥 환자의 비율도 높아지는 것 같고요.

60~70대 이상은 여기에 심뇌혈관 질환에 대한 치료나 후유증 치료 및 관리 목적으로 오시는 분들이 더해집니다. 아무래도 제 전공이 순환신경내과다 보니까 이러한 유형의 환자분들이 더 많이 오시는 것 같아요.


Q. 지금까지 진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그 환자의 변화 과정과 원장님께서 느끼신 바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A. 수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10대 초반의 여자 환자였어요.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왼쪽 팔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어서, 양방 대학병원에서 뇌경색 진단을 받고 급성기 치료를 한 뒤에, 뇌경색을 더 적극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우리 대학 한방병원에 입원하셨고요. 처음에는 정말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2개월 정도 치료를 이어가다 보니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됐습니다. 뇌경색 부위도 작지 않았었는데요. 제 기억으로는 퇴원하시고 난 뒤 외래로 내원하셨을 때는, 뛰는 모습도 보여주셨던 것 같아요.

그 환자분이 최근에 성인이 되어 SNS로 연락을 주신 적이 있었는데,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참 반갑더라고요. 저로서는 이런 경험들이 ‘내가 이 길을 택하길 잘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서, 우리가 결국에는 의료인이고 의사잖아요. 환자분이 실제로 좋아지고, 질병에서 벗어나서 삶의 방향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걸 볼 때면 저는 굉장히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개원 이후 기억에 남는 환자 사례들은 제가 한의신문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떠오르는 대로 몇 가지를 말씀드릴게요. (클릭하시면 해당 환자분에 대한 기고문으로 연결됩니다.)

먼저, 20대 여성 환자분이 있었어요. 밥만 먹고 나면 졸음이 너무 심한 상태였는데, 그냥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 10분 공부하려면 3시간은 자야 할 정도였어요.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울 정도였죠. “휴학해야 할까요?”라고 물으시길래, 치료하면서 한번 지켜보자고 했는데, 결국 치료가 잘 돼서 학업도 이어가고 무사히 졸업해서 원하시던 시험에도 합격했어요.
또 4개월째 식사를 거의 못 하셔서 처음 오실 땐 보호자가 부축해서 진료실로 들어오셨던 환자분도 기억에 남아요. 속이 더부룩하면서 쓰리고, 트림이 심해서 식사를 거의 못 하는 상태로 내원하셨어요. 화학약물을 복용해도 소용이 없었고, 음식이 소화관을 타고 천천히 내려가는 느낌이 느껴질 정도로 예민해진 상태였죠. 문진을 해보니 향정신성 약물을 복용 중이셨는데, 그 부작용 같았어요. 향정신성 약물을 복용한 기간은 약 3개월 정도에 불과했지만, 양방 대학병원에서는 약을 끊는 데 12개월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짧게 복용한 약을 끊는 데 1년이 걸린다는 게 저는 이해가 잘 안되더라고요. 그 말은 적어도 1년 동안 이 약들을 계속 먹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한약을 쓰면서 3개월 만에 끊어보자고 했죠. 처음에는 약을 끊으니까 소화기 증상이 더 나빠졌어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죠. 그래서 첩약을 3일에 한 번씩 조제했습니다. 마치 입원 환자분들 첩약을 매일 처방하는 것처럼 말이죠. 또 전화도 거의 매일 하며 상태를 체크했어요. 저도 힘들었고, 당사자인 환자분은 더욱 힘드셨겠지만, 결과적으로 2개월 만에 향정신성 약물을 중단했고, 이후에도 5개월간 증상을 다스리며 치료를 이어가, 결국에는 회복되셨습니다. 지금도 그 7개월이 전부 머릿속에 생생하게 지나갈 정도로 기억에 남는 환자분입니다.

크론병 환자분도 기억에 남아요.

처음 상태가 많이 안 좋았던 분들이 좋아지셔서 평범한 일상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된 사례들은 오래 기억에 남아요. 특히 젊은 분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또래 친구들과 평범하게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볼 때 참 뿌듯합니다.
또 한 분은 ‘30년 동안 구내염을 달고 살았는데,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고 장도 이렇게 편안한 건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라는 얘기를 해주셨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의료인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인 것 같아요.


Q. 원장님께서는 기존 인터뷰에서 생활 습관 변화 유도를 위해 ‘건자꿈(건강한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 캠프를 구축하셨다고 말씀해 주신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런 구조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건자꿈 캠프란?
- 원장님께서 환자분들의 식단과 생활 습관을 관리하기 위해 운영하시는 오픈 채팅방. 원장님을 포함한 한의원 의료진과 환자분들이 함께 머무르고 있음. 식단뿐 아니라, 아침 기상, 운동 등의 전반적인 생활 방식을 사진으로 인증하면서 서로 함께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고받음. 주중 매일 카톡방에 업로드된 사진과 텍스트를 정리하여 피드백하고,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도 환자분들과 소통.

-> 더 궁금하시면 이제원 원장님의 인테그리티 인터뷰를 참고해 주세요!
1부: https://integrity-interview.imweb.me/67/?idx=107
2부: https://integrity-interview.imweb.me/67/?idx=108


A. 최근에 외국인 환자분들도 ‘건자꿈’ 캠프에 들어오셨어요. 외국인을 위한 별도의 채팅방을 만드는 게 아니라, 국내 환자분들과 같이 채팅방에서 생활습관을 공유하고 있어요. 영어로 올리시고, 저는 영어로 피드백을 드리고요. 요즘은 번역기의 기능이 워낙 좋아서 의사소통에 큰 불편은 없습니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진료 연결이 되는 걸 보면, '의료기관이라는 게 꼭 물리적으로만 존재할 필요는 없겠구나, 의료가 온라인으로 이렇게 국경을 넘어 확장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세계로 뻗어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있고요.

이 시스템을 운영한 지도 벌써 6년이 됐는데요. 환자 한 분 한 분의 생활 흐름을 계속 보다 보니, 저도 임상 데이터가 계속 쌓입니다. 같은 식단을 꾸준히 지킨 분과 그렇지 못한 분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증상 차이와 질병 발생 빈도 차이도 보이고요. 그렇다 보니 외래에서 생활습관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도 훨씬 설득력이 생깁니다.

저는 이 오픈채팅방 시스템이 일종의 ‘비대면 병동’이라고 생각해요. 입원실은 없지만, 환자분의 생활을 매일 같이 확인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구조니까요. 내과 진료에서는 ‘이 사람이 평소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아는 게 정확한 진단과 처방에 정말 중요하거든요. 이 시스템 덕분에 환자분이 3개월 만에 내원하셔도 전혀 낯설지 않고, 그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 있으니 훨씬 깊이 있는 진료가 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3개월간의 기록을 살펴보면 증상이 발생한 원인을 더욱 쉽게 찾을 수 있거든요.



3편에서는 교수 및 강의 활동과 한의원 브랜딩 및 콘텐츠 운영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Interviewer. 꽁치, 사막여우, 햄스터, 고등어

Writer & Editor. 꽁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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