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 B고등학교 특수반 원예치료 2019-7차시
[바이 그리너리]에서 진행하는 실제 원예치료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꽃으로 식물로 마음을 달래는 수업을 진행하는 [바이 그리너리]의 대표 이보현입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9월이 되었습니다. 회사에 다닐 때 9월은 그저 12달 중에 하나일 뿐이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9월이 대학생 때 이후로는 느껴보지 못한 '개학'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을요. 1학기부터 원예치료를 진행하고 있는 용인 B고등학교 특수반 학생들과 방학 이후 오랜만에 만나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학 이후에 어떤 수업으로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줄지 고민하다가, 재미있는 꽃다발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대부분 꽃다발은 졸업, 승진, 기념일 등 무언가를 완수했거나 지나온 일을 기념하기 위해 주는 경우가 많은데요. 오늘은 다시 시작하는 스스로를 응원하기 위한 꽃다발을 만들어 봤어요.
가을빛이 감도는 꽃들을 사서 집에 두고, 수업의 세부 커리큘럼을 짤 때처럼 행복한 순간은 없는 것 같아요. 수업에 사용되는 꽃들은 계절성은 반영하되 최대한 다양한 소재와 조화로운 가운데 다양한 컬러, 기존에 봐오지 못했던 꽃을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업에는 실거베라, 호랑이눈, 연밥, 맨드라미, 이끼시아, 투베로사, 소국, 장미, 유칼립투스, 좀작살나무 등을 준비했습니다.
방학 동안 쉬고 다시 시작하는 수업이라 잠깐 긴장했지만, 이내 달려와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훌쩍 큰 친구들을 보니 그저 즐겁게 수업해야겠다는 마음만 들더라고요.
중간에 손을 쉴 수 있는 꽃꽂이에 비해, 꽃다발은 한번 꽃을 잡으면 다발이 완성될 때까지 손에 힘을 계속 주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시간은 길지 않아도 아이들이 본인의 의도대로 꽃이 잡히지 않고, 꽃이 부러지기도 하고, 다시 꽃을 잡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역으로 이용, 아이들이 집중해서 하나의 업무를 지속적으로 이행 및 완수할 수 있도록 수업을 유도해봤습니다.
먼저 각각 꽃을 살펴보고 이름, 질감, 색깔, 향 등을 관찰합니다. 그러면서 꽃과 관련된 질문을 하나씩 던집니다. 왜 처음에 이번 꽃다발은 다시 시작하는 스스로를 응원한다고 했잖아요. 2학기 시작도 있지만, 각자 세부 계획을 생각해보는 시간도 함께 가져봤는데요. 뇌 모양을 닮은 맨드라미는 뇌=공부를 적용해서 2학기 성적을 몇 점 받고 싶은지, 호랑이 눈을 닮은 에키네시아는 호랑이 눈을 뜨고 보고 싶은 건 무엇인지, line flower 역할을 하는 이끼시아에는 line=한 획이라는 개념으로 인생에 긋고 싶은 한 획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특수학급 친구들이라 각각의 질문에 맞는 대답을 하는 친구도, 엉뚱한 대답을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100점을 맞고 싶어 하고, 2학기에 바라는 일로는 각자의 이성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여느 또래와 같은 대답이었답니다.
그렇게 꽃마다 2학기 혹은 고등학생, 길게는 평생을 두고 이루고 싶은 것을 투영하고 각각을 모아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로 다발을 만들어봅니다.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아이들은 서툰 손으로 각자의 꽃다발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수업 중간에 사진을 남겨봤습니다.
저는 아이들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꽃다발을 만들었지만, 정작 포장까지 완성이 되고 나니 부모님께 선물을 드린다는 아이들이 대다수였답니다. 항상 아이들에게 더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요즘 꽃다발에는 예쁜 포장지와 리본 뿐 만 아니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스티커가 많이 붙어있지요. 그래서 저희도 할 것 다 해봤어요. 아이들이 너무 정직하게 꽃다발 '실명제' 급으로 스티커를 만들었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고 귀여웠답니다.
잠시 아이들의 작품 감상하실까요~
꽃다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스파이럴이든, 꽃 배치, 컬러 배치 등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특수학급 아이들과의 수업에서 가장 어려울 수 있는 '끝까지 스스로 해내는 능력'을 매 시간마다 달성해내는 아이들에게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더 재밌는 수업을 준비하고 더 없는 관심과 칭찬을 주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여러분만의 꽃다발에는 어떤 소원과 희망을 담아내고 싶으신가요? 찬바람이 불어오는 이맘때, 다시 한번 2019년의 다짐을 되돌아보시고, 마지막 힘을 내본다는 생각으로 스스로에게 파이팅 꽃 선물 어떠실까요?
보리둥둥(보리아내_이보현)
꽃으로, 식물로 마음을 달래는 <바이 그리너리> 대표
35년째 농장을 운영하시는 시부모님과 함께 원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직접 길러낸 식물과 트렌디한 식물들을 종로꽃시장 내, [식물상점] 바이 그리너리에서 판매하고 카페, 무대, 정원 등 다양한 공간을 식물로 구성하는 일을 합니다. 또한 복지원예사(舊 원예치료사)로서 초등학생 스쿨팜 교육과 weeclass청소년, 특수학급 , 노인 대상으로 식물을 매개로 한 원예치료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브런치에서는 [부부에세이]를 쓰는 보리둥둥 작가이자,
식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긴 [식물매거진] 바이 그리너리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bygreenery.bori @bygreenery.offi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