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슬픔, 죽음, 십자가,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에
식물매거진] BY GREENERY는 매주 목요일마다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식물매거진-그림가드너 코너에서는 명화 속 식물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그림가드너(그림 속의 가드너가 되어,
직접 그림 속의 꽃과 식물을 알리고 가꾸는 사람: 혼자 만들어 본 직업)
[식물매거진]의 그림가드너로서 처음 바라보는 식물은 바로 사이프러스 나무다. 그림가드너를 시작하고, 그 첫 그림의 주인공은 빈센트 반 고흐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특정 식물을 보고 특정 그림, 화가가 떠오르기가 쉽지 않은데, 해바라기를 보면 우리는 모두 그를 떠올린다. 해바라기 화가라고도 불리는 Vincent van Gogh.
그런데 식상하게 해바라기 말고, 그의 그림 속에서 나는 사이프러스(Cupressus sempervirens)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사이프러스, 사이프러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았는데 무슨 나무인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림가드너를 더 잘해보겠다고 찾아간 그림 살롱 '오그림(@ohgrim_)에서도 같은 반응이었다. 거기서 나는 오지랖을 떨면서 사이프러스를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설명충인가, 식물충인가.
내가 고흐의 대작 속, 사이프러스 나무를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는데, 고맙게도 고흐가 1889년 6월 25일,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이미 '그렇다'는 답을 내려 주었다.
난 밀밭이나 사이프러스 나무를 가까이 가서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외에 다른 아무런 생각도 없다.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항상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것을 소재로 '해바라기'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사이프러스 나무를 바라보다 보면 이제껏 그것을 다룬 그림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
해바라기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할 정도로 사이프러스에 매력을 느꼈던 고흐. 그럼 고흐의 그림 속에 사이프러스 나무는 어떤 것일까? 아래 3개의 그림의 보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나무가 있을 것이다.
이게 맞나? 고민하지 말라. 그게 맞다. 헷갈린다면 고흐가 사이프러스 나무를 표현한 걸 더 보자.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아름다운 선과 균형을 가졌다. 그리고 그 푸름에는 그 무엇도 따를 수 없는 깊이가 있다. 태양의 내리쬐는 풍경 속에 자리 잡은 하나의 검은 점, 그런데 이것이 바로 가장 흥미로운 검은 색조들 중 하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해 내기란 참 어렵구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中
몸집을 키우기보다는 위로, 빠르게 타오르는 듯한 모습이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 같다고 그는 말했다. 태양의 신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가 땅에는 미련이 없는 듯, 끊임없이 하늘로 솟아오른 것처럼 사이프러스가 서있다. 실제 사진을 보더라도 자신이 주변은 아랑곳없이 올라선 오벨리스크의 모습처럼 드넓은 평야와 대비되는 사이프러스이다.
이러한 사이프러스의 형태적 특성으로 우리가 익히 보아온 잘 이발된 나무, 토피어리가 시작되기도 했다. 측백나무 과로 소나무처럼 솔방울은 맺지만 이는 이용할 수가 없고, 열매는 독이 있고, 폭이 좁아 시원한 나무 그늘도 드리울 수는 없으나, 이는 영토의 경계를 짓기에는 제격이었다. 그냥 세워만 둬도 울타리로서의 제 역할을 하겠지만, 블루클럽에 온 거 마냥 자를 대고 각을 잡아주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위적인 모양 있는 나무'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우리네 정원과는 조금 다른 유럽식 정원이 완성된 것이다.
이제 대충 모양은 감이 온다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나무다. 실제로 본 적도 없는 것 같고, 유럽 여행 가서도 본 기억이 없는데, 반 고흐는 왜 해바라기와 같이 그림의 메인 주제로 사이프러스를 선택했을까?라는 물음표가 생겼다. 그리고 그 물음과 함께 나무를 더 들여다보았다.
죽음과 슬픔의 상징. 사이프러스의 내면이다. 태양신 아폴론은 키파리소스Cyparissos라는 소년을 매우 총애했다. 키파리소스는 케오스 섬에 사는 건장한 수사슴과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러나 어느 날 실수로 창을 잘못 던져 수사슴을 죽이고 말았다. 키파리소스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따라 죽으려 했으나 아폴론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아폴론에게 자신을 영원히 애통해하는 존재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아폴론은 키파리소스의 소원을 듣고 그를 음침하고 축 늘어진 사이프러스로 만들어 주었다(식물 이야기 中).
아무리 고흐가 화사한 노란색을 좋아하고, 그의 작품에 많은 꽃을 담고, 해바라기의 화가가 되었지만 그의 작품은 그의 인생처럼 어딘가 무겁고, 어둡다. 나는 어릴 적부터 도시적인 세련된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도시적인 여자가 되고 싶어도,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 깔린 자연과 초록에 대한 애정은 그저 나를 푸근한 사람으로 비추더라. 고흐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밝고 사회성이 높고 싶지만, 그의 인생 전반적으로 깔린 내면 세계는 사이프러스의 전설처럼 음침하고 축 늘어져 있었을 것이다. 오벨리스크처럼 태양의 신을 따라 하늘 높이 오르고 싶지만, 땅에 붙은 채 어둡고 짙푸른 사이프러스를 보고 고흐는 본인의 모습을 보았을 것 같다.
비극의 여신인 멜포메네도의 왕관은 사이프러스로 만들었다. 이집트의 미라들도 사이프러스 나무로 만든 관에 누워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묘지 근처에 사이프러스를 심고, 예수님이 못 박힌 십자가 또한 사이프러스로 만든다.
이렇게 읽다 보니 '뭐야, 이 나무 왜 이렇게 어두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나는 반 고흐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뭐야, 이 오빠 왜 이렇게 안 풀리고 어두워?' 이랬다. 뭔가 끔찍한 평행이론에 서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어둡기만 한 고흐와 사이프러스는 또 하나 닮은 점이 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져 있고, 유럽에서도 가장 나이 많은 나무는 사이프러스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정복했던 나폴레옹도 스위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는 심플론이라는 고개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건설하면서도 가장 나이 많고 37미터에 이르는 이 사이프러스 나무만은 베지 못하게 했다. 사이프러스가 이렇게 오래 살아남은 것처럼 고흐 또한 100년이 훌쩍 넘은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 속에 제일 사랑받는 화가로 남아있다. 지난달에 멜론 top1이 무슨 노래인지, 어제 점심에 뭘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고흐의 작품만은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자, 이 정도 되면 사이프러스 나무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질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올 5월부터는 돈을 내야 하니깐 조금 서둘러보자. 마곡의 서울식물원 대온실에서 우리는 사이프러스를 볼 수 있다. 대온실의 열대관 말고, 지중해관으로 들어가면 뭔가 음침하게 서있는 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총 3그루의 사이프러스가 있다.
아래 사진에 왼쪽은 설명판 앞에 있는 사이프러스, 그 나무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90도 정도 고개를 돌리면 한 그루가 더 서있다. 그리고 마저 90도를 돌리면, 안타깝게 말라가는 사이프러스 한 그루를 더 만날 수 있다.
고흐 오빠가 말하길 "자연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 속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길래, 나는 그 앞에서 계속 서성 서성였다. 왜 반복적으로 이 나무를 그렸을까? 이 나무를 계속 보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나무는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혼자 멀뚱히 서서 나무를 바라보았다.
내가 서있는 동안, 사람들이 사이프러스 앞에 놓인 사이프러스 설명판을 들여다보면서 한 마디씩 한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뭐가 사이프러스야? 설명이 있다 보니 쓰윽 글을 읽고, 각자만의 상식을 뽐낸다. 하지만 아쉽게도 고흐의 사이프러스를 떠올리는 사람을 없었다. 나도 모르게 도슨팅을 시작할 뻔했다. 또 한 번 나는 설명충인가. 식물충인가.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바로 유통되는 작은 사이즈의 사이프러스를 만나는 것이다. 사이프러스의 또 다른 이름은 이탈리안 사이프러스(Italian Cypress), 초록 연필(green pencil). 하지만 이 이름이 지워지고 블루아이스로 유통이 되었었다. 비싼 블루아이스(일명, 엘사나무)의 묘목이 실생으로 유통된다 하니, 나는 농장에 있는 물건을 다 쓸어왔다. 열심히 블루아이스라고 홍보하고 판매했는데, 항상 나보다 많이 아시는 손님 덕분에 제대로 된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 이름은 바로 이탈리안 사이프러스. 사이프러스의 다른 유통명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대혼란 속에 나의 무지가 너무 부끄럽고, 손님에게도 죄송했는데(지금도 죄송해요ㅠ) 고흐 오빠를 만날라고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 이제는 절대 헷갈릴 수 없는 덕분에 더 많이 공부하게 된 사이프러스.
물론 햇빛이 충분히 있어야 하고, 자라는 기간도 오래 걸리고, 지중해스러운 적당한 환경 조건을 만들어주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식물원에서도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니깐. 그래도 왠지 해가 잘 드는 집으로 이사 가면 우리 집에 두고 싶은 나무다. 남편아, 열심히 돈 벌어서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서 사이프러스로 울타리 치자!!
마지막으로 너무나 유명한 그림이다. 특히 starry, starry night라며 시작하는 돈 맥클라인 Don MClean의 음성과 함께 들으면 왠지 그림 속 별들이 반짝이고 있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키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starry night>. 처음에는 앞에 검은 무엇이 교회 혹은 마녀의 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야 사이프러스 나무임을 알게 되었다. 반짝이는 별을 향해 검은 사이프러스는 본인의 손을 할 수 있는 대로 뻗어보지만, 닿을 리 없다. 그림 속에서나마 사이프러스가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닿아 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고흐가 반짝이는 별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대변한 듯이 말이다.
그림 속의 식물을 들여다보는 일이 무의미할 수 도 있다. 그냥 풍경을 그리는데, 거기에 식물이 있었기 때문에 그려진 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이렇게 그림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식물이 주기도 한다. 그냥 길쭉하고 어두운 색의 나무가 아니라 정확하게 '사이프러스'라고 불리며 고흐의 그림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된 것처럼 말이다. 이 또한 내 의견이지, fact는 아니다. 하지만 그림을 볼 때 답은 정해진 것이 없다. 수능 언어영역이 아니니깐. 5개의 보기 중에 화자의 의도로 알맞은 것을 고르는 게 아니다. 그림을 본 우리의 마음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그 안의 자연을 더 자세히 보라는 고흐 오빠의 마음만 읽을 수 있었다면 그 걸로 '그림가드너'로서의 역할은 성공인 것 같다며 자축해본다.
그림가드너(그림 속의 가드너가 되어,
직접 그림 속의 꽃과 식물을 알리고 가꾸는 사람: 혼자 만들어 본 직업)
다시 한번 다들 그림 감상하다 까먹었을 것 같은, 이 매거진의 실체를 상기시키며 반 고흐의 그림과 사이프러스 나무에 대한 그림가드너의 금일 업무를 종료해본다.
보리둥둥(보리아내_이보현)
꽃으로, 식물로 마음을 달래는 <바이 그리너리> 대표
35년째 농장을 운영하시는 시부모님과 함께 원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직접 길러낸 식물과 트랜디한 식물들을 종로꽃시장 내, [식물상점] 바이 그리너리에서 판매하고 카페, 무대, 정원 등 다양한 공간을 식물로 구성하는 일을 합니다. [원예치료연구소] 바이 그리너리에서는 복지원예사(舊 원예치료사)로서 초등학생 스쿨팜 교육과 weeclass청소년, 특수학급 , 노인 대상으로 식물을 매개로 한 원예치료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브런치에서는 [부부에세이]를 쓰는 보리둥둥 작가이자,
매주 목요일, 식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긴 [식물매거진] 바이 그리너리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유튜브 채널 보리둥둥TV를 운영, 식물을 키우고, 관리하고, 즐기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