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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기 Feb 23. 2021

소름

곰 주의보

교수님... 박사님...
곰이 산다는 이야기는
 안 하셨잖아요...

지만이와 나는 짐을 챙겨서 이른 아침부터 누마타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히에이 산으로 향했다. 지만이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왜냐하면 산 정상까지 걷지 않고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 되기 때문이다. 산으로 가는 길에 계곡이 보였다. 아침부터 어린 친구들은 물놀이를 하러 나와있었다. 우리도 내려오면 발이나 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마타 교수님께서도 히에이 산이라고만 했지 정확한 포인트를 알려주진 않으셨기에 정상까지 올라간 다음 내려오면서 민민매미를 찾기로 하였다.


케이블카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한 명당 만원이면 충분했다. 생각보다 멀리 올라간다 생각했는데 내리고 갈아타라고 안내해주었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또 한 번 갈아타야지만 정상까지 갈 수 있었다. 정상 가는 케이블카에는 창문이 뚫려있어서 약간 겁이 났지만 깽깽매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지만이는 또 다른 깽깽매미 종류의 매미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너무 높게 자란 나무와 깽깽매미들이 나무 꼭대기에 주로 있는 특성을 아는 지만이는 금방 기대를 접었다. 나는 케이블카에서 멋진 자연을 본 것으로 만족했다.

2019. 08. 24. 일본 교토. 히에이산 케이블카
2019. 08. 24. 일본 교토. 히에이 산 케이블카

우리는 내려가는 내려가는 길에 이번 태풍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길이 끊겨있거나 나무에 가로 막혀 있어서 어디가 길인지 한참을 헤매기도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해서 제대로 된 길로 갈 수 있었다. 모두들 지나다니면서 아침이라 "오하요"를 외쳤다. 간혹 나이 드신 분들은 예의를 갖춰야 했기에 제대로 된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오하요 고자이마스."라고 말하며 아침 인사를 했다. 


내려오는 길에 가장 놀랬던 것들은 큰 키에 나무들이 모두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얼마나 바람이 심하게 불었으면 이 큰 나무들이 다 쓰러져있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태풍 불었을 때 힘들더라도 고베에 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일본에서는 태풍이 오면 주요 시설들의 방어벽이 생길 정도로 기상재해에 굉장히 준비가 잘 되어있지만 그럼에도 사망자가 나올 정도로 강력한 태풍이었다. 

2019. 08. 24. 일본 교토. 태풍으로 피해를 본 히에산의 나무들

내려오는 길, 매미는 안 보이고 파란색 꼬리를 가진 도마뱀이 내 눈을 유혹시켰다. 내가 이름을 지었으면 파랑 꼬리 도마뱀이라고 불렀을 것 같은데 현지에서는 다섯 줄 도마뱀이라 부른다. 물론 줄이 다섯 개가 있긴 하지만 파란색 꼬리가 더 눈에 띄는데 처음 지은 사람은 줄이 더 눈에 들어왔을 것이라 추측해보았다. 내려가는 길에 10 마리도 넘게 보았지만 딱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사진을 못 찍어놓으면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아서 놀래진 않도록 카메라를 꺼낸 후 바닥에 엎드려서 사진을 찍었다. 덕분에 좋은 사진 한 장을 건졌다. 일어나자마자 내 움직임이 커서 그런지 재빠르게 도망갔다.

2019. 08. 24. 일본 교토. 파란 꼬리가 매력적인 Plestiodon japonicus

산에서 거의 다 내려올 때쯤 민민매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민민매미는 딱 한 마리뿐이었다. 그러나 잡고 보니 나무 위에서 생을 마감한 매미였다. 죽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날개 부분만 약간의 상처가 있었는데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자에 영광의 상처였다. 우리는 조금 더 내려간 후에 민민매미가 많이 서식하는 장소를 찾았다. 


민민매미를 채집할 곳도 찾았겠다. 앉아서 조금 쉬려고 앉았는데 내 다리에 피가 보였다. 몇 군데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는데 자세히 보니 내 다리에 거머리 한 마리가 내 피를 먹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래서 바로 떼어냈지만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단지 기분이 안 좋았다. 나도 모르게 피를 빨리고 있었다니... 모기보다는 낫지만 기분은 영 좋지 않았다. 거머리의 침샘에서 분비되는 히루딘으로 인해 내 피가 응고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피를 빨고 남은 자리에 약간의 히루딘이 남아있었는지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거 드라마인 '허준'이 생각났다. 메디컬 드라마를 많이 보시는 분들은 헤파린을 먼저 떠올리실 것 같다.

2019. 08. 24. 일본 교토.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한 민민매미
2019. 08. 24. 일본 교토. 나도 모르게 산거머리에게 피를 뺏겼다.

첫날이고 매미가 사는 곳도 알았고 시간도 해가 질 시간이라 다음날 다시 오기로 하고 숙소로 향하려던 찰나에 곰이 보이는 안내판이 있었다. '에이 설마 곰이 교토에?'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무리 봐도 곰이 산다는 표지판이었다. 사진을 찍어서 게스트 하우스 직원에게 표지판 대해서 물었다. 그 친구는 5월 10일에 곰이 출현했다는 안내 표지판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교수님, 박사님 모두들 우리에게 곰이 있다는 말은 안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등산하던 사람들도 별다른 장비를 착용하진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에도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었다. 우리나라 지리산에 살고 있는 반달가슴곰보다 작고 성인 남성을 해할 정도로 강력하진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도 별다른 장비 없이 다녔다(우리나라 반달가슴곰도 일본 반달가슴곰도 위험합니다. 대부분 공격 당하지도 않고 공격당해도 방어를 한다면 죽진 않지만 안 죽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2019. 08. 24. 일본 교토. 2019년 05월 10일에 곰이 출몰했다는 안내판

우리는 이틀 더 교토에 머물면서 민민매미를 찾아다녔다. 주로 히에이 산을 공략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진 못하였다. 최소한의 결과만을 가지고 떠나야만 했다. 히에이 산 밑에 계곡에서 발을 담그며 쉬기도 하고 청개구리도 보고 또 운 좋게도 주말이라 종점인 히에이 산으로 갈 수 있는 역에서 맥주 파티 현장도 볼 수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후 맥주를 마시고 지하철을 타면 종점까지 곯아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소소하게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2019. 08. 25. 일본 교토. 지만이가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19. 08. 25. 일본 교토. 청개구리
2019. 08. 24. 일본 교토. 히에산 역에서 맥주 파티가 열렸다.

교토에 온 첫날은 비가 엄청 내렸는데 갈 때가 되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날씨가 너무 좋았다. 머피의 법칙처럼 여행의 마지막은 항상 햇살 가득한 날로 끝이 난다. 맑은 교토를 보며 우리는 여정의 마지막인 홋카이도로 향했다.

2019. 08. 26. 일본 교토. Good bye 교토


P.S.

연구하러 돌아다니는 동안 끄적끄적 쓴 한 편을 완성시켰네요(아직 집으로 돌아가진 않았습니다.). 복귀 글로 2주 동안 돌아다닌 일들을 한 편으로 정리해서 올리려 합니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네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한 편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ㅠㅠ

조만간 복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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