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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기 Mar 15. 2024

싱가포르의 심장

야생 원숭이와의 만남.

여기서 제일 가까운 편의점이 어디지?

역시나 아침은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싱가포르에 와서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맨날 숲만 가고 언제 도시 구경을 하겠나, 이 시간 외에는 도시 구경은 버스로 이동하면서 밖을 보는게 전부다. 아침은 편의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컵라멘 중 치즈카레 라면을 먹었다. 이번 여행은 싱가포르부터 말레이시아 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을 가는 것이었는데 일본을 가야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싱가포르에 편의점에 보니 너무 반가웠다. 한 때 일본에서 매미 연구하러 다닐 때 숙소에 너무 늦게 도착하여 근처 식당다 닫아서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골라서 먹었는데 이만한 컵라면은 없었다. 한국에서 구해보려 했으나 여간 구하기 어려웠는데 거의 3년 만에 먹어본 그리운 맛이었다.

일본 컵라면 중 최애 Top3 안에 드는 컵라면이다.

싱가포르에서는 편의점에서 기본적으로 일회용 포크를 주지만 젓가락 요청하면 받을 수 있었다. 라면을 먹은 뒤, 숙소에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포트 캐닝 공원(Fort canning park)이 나왔다. 꽤나 녹지가 우거져 있는데 역사적인 공원이라길래 천천히 걸어가 보았다. 걸어가는 길에는 평일이고 러시아워도 지나간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도 없고 한적하니 좋았다. 오랜만에 홀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별생각 없이 구경하며 걷다 보니 포트 캐닝 공원에 도착하였다. 공원에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그런지 한 적 했다.


어제저녁까지 탐사하느라 피곤했는지 공원 벤치에 앉아서 반쯤 잤다. 그러다 갑자기 "꼬끼오!"라는 소리가 크게 들려서 눈이 떠졌다. '어디서 닭을 풀어놓았나.' 했는데 싱가포르는 야생닭이 있는 나라가 아닌가. 비둘기 대신 닭이 거리에 있는 것이 더 익숙한 나라이다. 사진 찍으려고 쫓아 댕겼는데 뭔 닭이 왜이리 잘 나는지 날아서 도망갔다. 한참을 다시 같은 벤치에 있었더니 다시 도망갔던 수탉이 내 앞으로 왔다. 조용히 내 앞에 온 수탉을 촬영하였다. 장이권 교수님께서 왜  닭을 좋아하셨는지 깨달았다. 수탉을 눈앞에서 보는 순간 나조차도 매료되었다. 지금 보는 닭은 품종 개량한 게 토종닭인데 야생닭을 보니 '인간이 정말 야생 동물의 많은 것을 바꿨구나.'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떡하겠나... 맛있는걸...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고 최상위 포식자니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참을 닭을 찍고 숙소로 돌아갔는데 정작 공원 사진은 하나도 없고 온통 닭 사진만 있었다. 정말 기억에 남을만한 공원인데 다음에는 탐사가 아닌 일반적인 여행으로 다시 포트 캐닝 공원을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포트 캐닝 공원(Fort canning park)로 가는 길
수컷 야생닭, 깃털이 정말 아름답다.

교수님과 띵동이를 다시 만나서 점심 식사를 같이한 후 오늘 톰슨 자연보호구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특별한 원숭이인 띠잎원숭이(Raffles' banded langur; Presbytis femoralis)를 보고자 했다. 또다시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반 정도를 이동했다. 점심 먹은 후라 한참을 졸면서 가다 보니 톰슨 자연보호구역에 도착했다. 교수님과 띵동이 그리고 나는 시간을 정해두고 숲에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잠시 볼 일을 보고 왔는데 이미 띵동이와 교수님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입구부터 여러 갈래 길이 있었는데 내가 예상하기에는 서로 각자 다른 길을 간 것 같았다.


5분 정도 걸었을까? 너무나 유명한 원숭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게잡이원숭이라고 실험용 원숭이로 쓰이는 원숭이 종류이다. 게잡이원숭이는 동남아에서 굉장히 흔한 종이지만 원숭이가 없는 한국에 있다가 오니 야생 원숭이를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어린 원숭이가 내가 무서웠는지 금방 자리를 피하길래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촬영을 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원숭이들은 내 주위를 돌더니 이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는지 자연스러운 야생의 모습을 보여줬다. 서로 그루밍하는 행동, 대장 수컷이 왔을 때 어린 원숭이들과 암컷 원숭이들의 위계질서 행동 등 다양한 모습을 보았지만 아쉽게도 원숭이의 다양한 사회성 행동은 사진보다는 주로 영상으로 남겼다. 그래도 귀여운 어린 원숭이가 풀을 뜯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톰슨 자연보호구역 입구
귀여운 게잡이원숭이(Macaca fascicularis)

평일이고 숲속에는 사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는데 앞에 한 사람이 무언가를 찍고 있었다. 마침 교수님과 띵동이의 행방도 궁금해서 물어볼 겸 인사를 했다. 새로 만난 현지 친구의 이름은 모니크였는데 모니크는 이곳에서 거의 평생을 잠자리만 쫓아다니며 찍고 있다고 했다. 물론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거의 싱가포르 모든 잠자리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진도 남기고 있는 친구였다. 모니크 앞에 거대한 삼각대와 독특한 장비를 들고 가는 사람을 봤다고 이야기해 줬다. 거대한 삼각대와 독특한 장비는 장이권 교수님 말고는 이 숲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모니크와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이 걸었다. 그리고는 모니크도 혼자 심심하던 찰나였다며 같이 동행해서 동물들을 찾기로 했다. 그러던 중 띠잎원숭이에 대해서 들었는데 이 톰슨자연보호구역에 사는 것은 맞지만 보기 힘든 종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개체수가 많지 않아서 근친교배(Inbreeding) 문제로 현재 있는 집단도 건강한 편은 아니라고 이야기해 줬다. 그리고 띠잎원숭이에 친척쯤 되는 검은잎원숭이(Dusky leaf monkey; Trachypithecus obscurus)도 이 숲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검은잎원숭이는 원래 싱가포르에 살았지만 난개발로 인해 멸종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사태 때 싱가포르도 락다운(Lockdown) 상태로 싱가포르 사람들에 이동이 제한되었는데 그때 말레이시아에서 3마리의 검은잎원숭이들이 헤엄쳐서 왔거나 아니면 다리를 통해 건너와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후에 싱가포르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검은잎원숭이 3마리는 톰슨자연공원으로 와서 정착했다고 한다. 이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 가족이라도 번성하길 바랐으나 아쉽게도 3마리 모두 수이었고 그중 한 마리는 결국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멸종된 검은잎원숭이(Dusky leaf monkey; Trachypithecus obscurus)가 싱가포르에서 재발견되었다는 논문

재밌는 이야기를 듣다가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를 들었다. 근데 소리가 나는 방향은 분명 한 곳인데 같은 종의 새가 소리 낸다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로 극단적으로 다른 소리를 내었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한국에서는 여름에 나그네새 또는 미조로 지나가는 바람까마귀였는데 한국을 경유하는 종은 아니었다. 바람까마귀는 다른 새들의 경계음을 모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만약의 작은 새들이 먹이를 먹다가 포식자가 나타났다는 경계 소리를 듣게 되면 먹이를 떨어뜨리거나 버리고 도망간다. 바람까마귀는 점을 이용해서 다른 무리를 짓는 새들의 먹이를 훔치는 전략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의 새소리를 내가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것이 진짜 바람까마귀의 소리인지는 결국 알지 못하였다.


내가 본 녀석은 큰라켓꼬리 바람까마귀였는데 꼬리깃이 인상적이었다. 의문인 것은 꼬리깃이 수컷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암컷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이 사실은 내가 잘못된 정보를 얻은 것일 수도 있는데 만약 잘못되지 않았다면 거추장스럽게 왜 암수 모두 꼬리깃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증으로 남았다.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었던 큰라켓꼬리 바람까마귀(Greater racket-tailed drongo; Dicrurus paradiseus)
울창한 숲 속에서 소리 내던 큰라켓꼬리 바람까마귀(Greater racket-tailed drongo; Dicrurus paradiseus)
톰슨자연구보호구역의 울창한 숲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띵동이와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잘 모였고 어쩌다 인연이 된 모니크와 함께 로우어 피어스 리저뷰어(Lower Pierce Reservoir)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로우어 피어스 리저뷰어는 톰슨자연보호구역과 연결되어 있는데 싱가포르에 담수지역에 중심지이다. 로우어 피어스 리저뷰어는 싱가포르에 유일한 저수지 같은 곳으로 싱가포르의 생물다양성과 국민들에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싱가포르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가는 길에 우리는 아니 내가 드디어 내가 보고 싶어 했다 분류군이 양파(양서파충류)를 보았다. 마가 끼었나... 개구리는 많이 봤어도 너무 멀리 있어서 사진 한 장 못 남기고 뱀이나 도마뱀은 코빼기를 비추지 않았다. 로우어 피어스 리저뷰어로 가는 길에 녹색볏도마뱀과 말레이흰입술개구리를 보게 되었다. 생태 궁금하지만 단지 좋아하는 동물들을 드디어 볼 수 있어서 기뻤다. 너무 덥고 물도 없어서 그 이상 딱히 생각도 못했다. 얼른 근처 편의점이나 마트 가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녹색볏도마뱀(Green crested lizard; Bronchocela cristatella)
말레이흰입술개구리(Malayan White-lipped Frog; chalcorana rabialis)
너무 아름다웠던 싱가포르의 심장

길고 긴 숲을 빠져나와서 드디어 사람들이 보이고 뭔가 자판기라도 나올 것 같았다. 너무 지쳤고 겸사겸사 근처에 편의점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늘이 있는 쉼터에서 쉬었다. 쉴 때 위에서 자꾸 소리가 들렸는데 집도마뱀붙이들이 싸우는 소리였다. 장이권 교수님께서는 힘드시지도 않으신지 아까 정리하셨던 녹음기를 다시 빠르게 설치해 놓고 도마뱀붙이 소리를 녹음하셨다. 얼마 뒤, 나랑 띵동이는 물이 필요해서 말라죽어가고 있는데 교수님은 싱글벙글 웃으시면서 도마뱀붙이 소리가 아주 잘 녹음되었다며 우리들에게 들려주셨다. 나는 교수님께 '교수님은 이제 가야 합니다...'라고 속으로 백 번을 외쳤다. 띵동이와 나는 여기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어디인지 찾아내어 곧장 그곳을 빨리 갈 생각만 하였다.

쉬면서 집도마뱀붙이 소리를 녹음하고 계신 장이권 교수님.

우리의 뇌는 도파민에 지배당하지 않는가. 녹음을 마치신 교수님께서는 급격하게 힘들어 보이셨다. 우리는 빠르게 길을 빠져나와서 주유소 안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곧장 그냥 내 카드로 빠르게 교수님, 띵동이 그리고 모니크 것까지 1인당 달달한 음료 하나와 물 하나씩을 샀다. 우리 모두 그 자리에서 거의 원샷으로 두 통을 다 비었다. 띵동이와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교수님께서도 그렇게 급하게 물을 드시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오늘을 계기로 이다음부터 물을 1.5L씩 들고 다녔다.


모니크와 우리는 이곳에서 헤어졌다. 가는 길에 교수님과 띵동이 그리고 나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숙소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길에 식당을 들렸다. 사실 우리 숙소 근처에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팔았는데 특히 딤섬집이 하나 있었는데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집이라 가보고 싶었다. 우리는 배도 엄청 고파서 거의 메뉴판 한쪽에 있는 것을 다 시켰다.

싱가포르에서 진짜 맛있었던 맛집 중 하나
사진보다 훨씬 많이 시켰는데 먹느라 찍질 못했다.

그렇게 먹고 난 뒤 숙소로 돌아가서 이제는 씻고 자야겠다 했는데 교수님께서는 나가서 한 잔 하자고 제안하셨다. 당연히 오늘 걷고 난 뒤에 한 잔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좋다. 하루를 정말 잘 마무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면 싱가포르의 밤도 마지막이다.


Reference:

Ang, A., Jabbar, S., & Khoo, M. (2020). Dusky langurs Trachypithecus obscurus (Reid, 1837)(Primates: Cercopithecidae) in Singapore: potential origin and conflicts with native primate species. Journal of Threatened Taxa, 12(9), 15967-15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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