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둘 다 일어났다. 오늘 해발 800~900m 되는 로코산에 가는 날이다. 주섬주섬 널려 있는 옷을 입고 코지마 씨가 있는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코를 훌쩍훌쩍 거리며 나갔다. 이유는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고 자서이다. 그래도 여름에 에어컨을 세게 틀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코지마 씨는 아침마다 코를 훌쩍훌쩍 거리는 우리를 신기하다는 눈치로 우리를 보셨다. 말로 표현은 못하시지만 눈을 보니 어떤 말씀을 하고 싶은지 보였다.
코지마 씨는 로코산 정상에 우리를 내려주셨다. 로코산은 모리야마 박사님께서 알려주신 민민매미의 서식지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민민매미를 채집해야 했다. 로코산에 도착하니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만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들렸다. 깽깽매미의 소리였다. 깽깽매미는 일본어로 "애조 제미"라 부른다. 해발 600m 이상의 높은 산에만 서식하기 때문에 보기가 어렵다. 과거 우리나라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오동정 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는 근연종(분류학적으로 매우 가까운 종)인 참깽깽매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매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매미를 보며 아름다움에 이런 매미도 우리나라에 있어?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많은 아이들이 해외에 생물들을 더 관심 있게 보고 우리나라 생물들은 관심도 없다. 우리나라에는 왜 외국 이쁜 생물이 안 살까?라는 질문을 하는 어린 친구들이 많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많은 생물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도롱뇽은 호주나 뉴질랜드에는 살지 않는다. 믿기 힘들겠지만 과거 우리나라는 호랑이와 표범이 정말 많았던 나라였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보면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정말 멋진 생물들이 많다. 최재천 교수님께서는 "알면 사랑한다."라는 말씀을 항상 하신다. 우리나라 생물들을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게 되면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P.S. 자이언트 판다 보고 싶은 마음은 백 번 이해한다.
2017. 08. 17. 경기도 연천. 고대산. 참깽깽매미
특이하게도 참깽깽매미와 깽깽매미 모두 다른 매미들과 다르게 거꾸로 나무에 앉아서 노래한다. 왜 그러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한국에서 참깽깽매미를 보며 해답을 찾아가는 것도 나름 재밌는 일이라 생각한다. 등산을 싫어하는 분들께 꿀팁을 주자면 아침 일찍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쉽게 소리를 듣고 볼 수도 있다. 또 다른 고통점은 침엽수(예, 소나무)를 기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일본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높아지면서 점점 활엽수(예, 도토리나무)가 우점을 하게 되었다. 참깽깽매미와 깽깽매미의 서식지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침엽수가 사라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제주도 정상 부근에 살고 있는 구상나무가 매년 많은 수가 죽고 사라지는 것을 비슷한 이유이다. 물론 생물이 사라지고 죽는 것을 지구온난화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몇 가지의 큰 이유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2019. 08. 17. 일본. 고베 로코산. 거꾸로 앉아서 노래하는 깽깽매미
코지마 씨가 깽깽매미 한 마리를 잡아서 우리에게 줬다. 우리는 과거 오동정 되어 우리나라에 살고 있었다고 기록된 녀석을 보니 정말 기뻤다. 최대한 워낙 높은 곳에서 앉아서 노래하는 녀석이기에 얼른 나무에 놓고 사진 촬영을 하였다. 우리는 민민매미가 목적이었기에 찍다가 날아가도 상관은 없었다. 대신 최대한 많이 찍을 수 있게만 도와주길 바랬다.
2019. 08. 17. 일본. 고베 로코산. 깽깽매미와 깽깽매미 탈피각
코지마 씨와 우리는 로코산 정상에서 헤어졌다. 코지마 씨는 행운을 빈다며 고베를 떠나기 전에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하셨다. 당연히 좋다고 말씀드렸다. 우리는 언제 숙소에 돌아갈지 모르니 정상에 있는 휴게소에서 볼 일을 본 후 내려가면서 민민매미를 찾아보았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높고 침엽수가 많다 보니 호좀매미 소리가 들렸고 또 호좀매미와 자매종(=근연종)이자 우리나라에는 없는 소나무좀매미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두 종 모두 워낙 작고 나무 가지 끝에 있어서 볼 수는 없었다.
나조차도 호좀매미를 야생에서 본 것은 손에 꼽는다. 특히 두 종 모두 이른 아침에 노래하기 때문에 보기 위해서는 해발 700m 이상의 산을 정상 부근까지 올라가야 한다.
2019. 08. 17. 일본. 고베 로코산. 로코산 정상부와 깽깽매미 서식지 풍경
한참을 내려갔는데 다 와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내려가는 길이 아름다워서 지루하지 않게 내려갔지만 민민매미는 보이지 않았다. 간혹 민민매미 소리를 듣긴 했지만 채집할 수 없는 곳이었다. 모리야마 박사님께서는 너무 어려운 채집지를 알려주셨다,
내려가는 길에 민민매미는 아니지만 과거 오동정으로 우리나라에 기록되었던 저녁매미 암컷을 보았다. 과거에 쓰름매미와 비슷하게 생겨서 오동정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보니 쓰름매미처럼 배의 끝부분 흰색 가루가 있었다. 표본으로 보다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니 형형색색의 색깔들로 몸을 뒤덮고 있었다.
저녁매미 수컷은 다른 매미들과 달리 해 질 녘에 노래하기 시작해서 저녁이 돼도 노래를 한다. 저녁에 저녁매미 소리를 들으면 조금은 소름이 끼친다. 왜냐하면 귀신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일본인들도 저녁매미 소리를 그리 반가워하진 않는다.
2019. 08. 17. 일본. 고베 로코산.
2019. 08. 17. 일본. 고베 로코산. 저녁매미
지만이는 가면서 언제쯤 다 와가냐고 계속 물었다. 난 좀 더라고만 답할 수 있었다. 아침 8시부터 아무것도 못 먹고 오후 5시가 돼도 하산을 못했으니 당연했다. 가는 길에 일본 구렁이도 보고 사슴벌레도 보고 했지만 이제는 민민매미고 뭐고 숙소에 가서 쉬고 싶었다.
지만이는 멀리서 자판기를 보더니 곧장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일본에서는 현금을 주로 사용하는데 우리가 가진 동전이 얼마 없어서 물 4통을 산 게 전부였다.자판기에는 영수증이 안 나오기 때문에 사진과 장부로 기록하였다.
2019. 08. 17. 일본. 고베 로코산. 일본 구렁이
2019. 08. 17. 일본. 고베 로코산. 자판기로 가는 지만
결국 우리는 민민매미 소리만 듣고 로코산에서 채집하지 못한 채 하산했다. 하산하며 내려오는 길에 간단히 간식을 먹었다. 살기 위해서 먹었다. 식당에서는 거의 물먹는 하마처럼 물을 마셨다. 숙소에 돌아오니 30,000 보 이상을 걸었다. 거리로 환산하면 대략 30 km 정도 된다. 15 kg 정도는 되는 배낭을 메고 그 정도 걸었으니 바로 씻고 잠들만했다.
30,000 보 이상을 걸었다. Photo by 허지만
자다가 배고파서 일어났다. 한 끼도 안 먹었기에 밥을 먹기 위해 나갔지만 이미 시간은 9~10시였다. 아침 8시에 우리는 그냥 편의점에 사 먹기로 했다. 편의점은 카드도 되고 영수증도 나오니 그 편이 편했다.
편의점에 들어오니 닭꼬가 눈에 띄었다. 종업원에게 닭꼬치를 달라고 했더니 종업원이 몇 개나 드릴까요?라는 뜻에 "우츠케 시마스카?"라고 말했다. 앞에 무엇인가 한 단어가 더 들어가는 것 같은데 일본에 가지 않은지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한 번쯤 사용해보고 싶었던 전부를 달라는 말에 "젠부"를 말했다.
우리는 방에 들어와서 먹었다. 밤 9시가 돼서야 첫 끼라니 그리고 방도 좁아서 방바닥에서 식사를 했다. 닭꼬치와 컵 라멘 그리고 하이볼 캔을 사다 먹었다. 이 날 내 컵 라멘 초이스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치느님은 배신하지 않았다. 지만이와 나는 앞으로 일정과 민민매미 서식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잔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