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이라는 골방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누군가의 말마따나 어영부영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중간시험 (Qualifying Examination) 없는 나의 3년 박사과정에는, '수료'와 '졸업'이 따로 없다.
그러므로, 나는 영원히 박사 학생일 수 있다. 논문 디펜스를 준비하는 박사 후보생 (Doctoral candidate)과 석사 태를 벗지 못한 박사 학생 (Doctoral student)을 엄격히 구분해서 기재해야 하는 이력서를 보며, 시간이 대수롭다고, 번뜩 겁이 난다. 연구자로서의 자리매김을 위한 논문을 쓰려는 생각 하나 없이, 어영부영 1년을 지내 보내고 있는데, 언제고 바빴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의아할 뿐이다.
"왜 이렇게 됐지?"
막연함은 속절없다. 떠내버린 시간을 되돌아보며 가중될 뿐이다. 책임을 추궁하고, 곧장 후회가 되어, 원망이 되어 응어리가 되어 내 주변을 떠돌며 타인을 노려보다 이내 나를 공격한다. 여태껏 나는 바쁨을 찾아 나를 보호했던 것이다. "연구자"라는 자리에 앉지를 못하고 밖으로 내돌며 수업이니 장학금이니 눈을 돌리고, 내 시간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거짓으로 찍어놓았다. 내 안의 수사관은 '바쁨 속 게으름 피기'라는 죄목으로 나를 물어뜯는다.
보행기에 의지해도 나의 걸음이었다, 이제까지는.
스물 다섯 석사 진학을 기점으로 세상이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알을 깨고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인사담당자 혹은 벤처 개업가의 가치관, 동기들의 취업관, 인터넷에 흩뿌려진 타인의 모든 관점들을 통해 날카로이 내 머리에 주입된다. 날카로움은 통찰력 깊기도 하고, 이분법적 경멸이 담겨있기도 하다.
내 세상은 이제껏 단순했다. 좋은 대학 가기, 대학 졸업하기, 대학원 시험 합격하기, 석사 졸업하기. 가다듬어진 길 위의 이정표는 분명했으므로 젖먹이의 보행기와 같아서 나는 다리 만을 휘적거리고 살았다. 보행기는 이제 없고, 세상은 잣대를 주었다.
잣대는 나를 노려본다. 이 잣대로 나를 잰다. 잣대는 공포를 주입한다. 둥지를 나오려는 새끼 새가 직감하는 땅바닥에 처박힐 촉감 따위가 촉발하는 공포에 익숙할 리 없다. 박사에 올라온 나는 내 길 찾아 걷지 않았다. 다만, 나를 노려보는 눈으로부터 도망쳤다.
이력서가 내게 붙이는 꼬리표가 무서워서, "연구자" 따위의 대단한 대접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세상이 요구하는 주체성, 직업관, 커리어관에 진지하게 맞서 본 적 있었다면 보행기 같은 건 진즉에 버렸을 것이다. "연구자"라는 단어가 울렁이며 내게 온다. 젖먹이에게 신발을 신기는 꼴이다.
열일곱 살의 나이로 집을 나와 어언 십 년이다. 집안일, 전입 신고 따위의 것에 익숙해지며 나는 성인인 줄 알고 살았다. 엄격해지는 잣대 속에서 연구자 로서의 성과를 내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잡일에 매달려 그 시간을 핑계로 삼아 숨어 살았다. 깨달았으니 되었다. 이 시점의 내가 늦었던 빨랐던, 아무렴 어때. 가자, 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