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코 Oct 14. 2021

바깥은 여름

이제부터 단편 소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오고 나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책장이다. 이전에 살던 곳엔 책을 더 둘 공간이 없어서, 책상에 쌓고, 간이 책장을 사서 화장대까지 다 책으로 뒤덮였었다. 그러다 종국에는 바닥에 책이 쌓아뒀는데 반지하였던 지라 여름이면 습해 책이 누렇게 뜨고, 곰팡이까지 피어올라 이사 올 때 아끼던 책을 많이 버리고 왔다. 습한 여름 찌는 듯한 더위에 땀이 나고, 비 오는 날이면 곰팡이 필까 전전긍긍하던 어느 여름 날 만났던 책에 관한 이야기다.


호흡이 짧은 단편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짧은 글이 감동을 줄 수 없을 거라 생각했고, 소설 속 인물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너무 가벼운 시간이라 생각했다. 대부분 열린 결말이니, 뒷이야기를 상상해서 나만의 결말을 만드는 게 아니라 끝마치지 못한 어느 조각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소설인 줄 모르고 샀던 몇 권의 책, 예쁜 표지들 덕에 알게 된 작가님이 있었다. 2016년에 파리에 갔을 때, 우연히 가게된 세계도서 박람회에서 만나 사인까지 받았던 '김애란' 작가였다. "비행운" 이라는 책을 읽고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었는데, 새로운 책을 내셨다고 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점으로 향했다.


책 뒤표지에 이런 글이 적혀있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

시간은 끈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어느 한 순간에 붙들린 채 제자리에 멈춰 설 수 밖에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바깥은 여름 - 김애란



이런 문장을, 생각을 할 수 있는 분의 이야기는 어떨까 너무 궁금했다. 이 문장은, 이 책의 모든 이야기를 관통한다. 그 짧은 이야기에 담긴 서사가, 인물의 이야기에 빨려 들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서, 어떤 이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그렇게 긴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글은 한 문단 만으로도, 문장 만으로도 감히 그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위에 문장만으로도 내가 지금 서있는 곳에선 스노우볼 안처럼 눈보라가 몰아쳤고, 창문 너머 깔깔 거리며 웃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으므로. 이 책을 시작으로 참 많은 단편소설까지 나의 서재에 들어오게 됐다. 그리고 문장을 모으게 됐다.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누군가의 마음을 그 문장들이 위로해 줄 것 같아서. 내가 그랬듯.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길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밝은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