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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 Sep 27. 2022

2022.09 월간 회고

다 좋았어요

다 좋았던, 여행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 바로 직전에 베트남 다낭에 다녀왔는데, 이번엔 나트랑에 가게 됐다. 해외여행을 가면서 이렇게 급하게 정한 것도, 친해지지 얼마 안 된 사람과 가게 된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이것저것 처리해야 할게 많아서 바빴다. 다행히, 같이 가기로 한 언니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준 터라, 내가 할게 많지 않았다. 나는 계획형 사람인데, 여행 갈 때는 예외다.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계획을 짜거나, 상대가 짜준 계획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추거나.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에 간 여행의 대부분은 후자였다. 짜 본 사람의 고통과 애환을 알기에, 대부분 잘 따르는 편이다. 설레긴 했지만, 걱정이 많이 됐다. 친해진지 얼마 안 돼서, 서로를 잘 모른다는 게 가장 컸다. 아무리 친해도 여행에서 싸우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 여행을 가는 건 꽤나 도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었고, 재밌을 거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 좋았다. 나트랑은 크지 않은 도시고, 바다가 아주 깨끗하진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리조트에 있었고, 따로 투어를 가지도 않았다. 여행 가면 뭐든 체험해보는 걸 좋아하는 내가 이렇게 가만히, 평화로운 시간을 잘 즐기고 왔다는 게 신기했다.


이런 순간이 좋았다. 타들어 갈 듯한 햇볕을 등지고,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던 것. 모래사장에서 운동할 거라며, 버피 하던 것. 우리가 전세 낸 것처럼 사람이 많이 없었던 것. 어디로 튈지 모르는 꼬부기 비치볼을 가지고, 비치발리볼을 하겠다며 뛰어다니던 것. 숙소 앞에 흐드러지게 핀 꽃 덕에, 어딜 가나 향기가 그득했던 것. 어두운 밤 라이트도 켜지지 않던 수영장에서, 핸드폰 라이트에 의지해 수영하던 것. 언니가 나도 모르게 처진 어깨와, 고개 숙인 뒷모습을 보고  어깨 펴고 고개 들라고 말해준 것. 선물 받았던 책을 읽다가, 나도 몰래 잠들었던 것. 저녁에 술 한잔 할 때, 영상통화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술 마셨던 것. 새롭게 좋아하는 노래가 생긴 것. 나보다 동남아 영어에 통달한 언니 뒤를 졸졸 쫓아다녔던 것. 덩치는 크면서 겁이 많은 내가, 신호라곤 없어서 오토바이로 가득 찬 도로를 건널 때, 나보다 작은 언니의 팔을 잡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길을 건넜던 거. 호텔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 소주를 보며 한참 웃었던 것. 어두운 밤, 야자수가 즐비한 산책로를 걸으며 이야기했던 것. 물고기 밥이라고 조식에서 몰래 빵 하나를 훔쳐온 것. 한국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며 같이 웃었던 것. 사진 찍는다고 하면 뽀빠이 자세부터 취했던 것. 빈백에 누워서 마시던 맥주와 매캐한 담배냄새. 바다.


쓰면서 다시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여행 끝자락에, 묻지 않아도 자연스레 여행이 어땠는지 얘기했다. 어떤 게 좋았는지 다 이야기 하진 못했지만, 좋았다고, 같이 와서 재밌었다고 얘기했다. 다음에 또 같이 가자고. 아쉬운 거라면, 놀고 마시느라 기념품 하나 제대로 사 오지 못한 것. 총 천연색의 셔츠를 입은 언니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그래서 다음에 또 가자고 얘기했던 것.


무엇보다 좋았던 건, 노트북 없이,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어서였다. 쉬는 동안 일 생각 없이, 정말 편히, 행복하게 쉬다 왔다. 그랬다. 이런 여행이 나에게 있었나? 싶었다.


다음에 또 같이 가자 ⭐️


같이 가줘서 고마워


새롭게, 또 다른


강의 제안을 받았다. 보통 링크드인이나 메일로 연락이 오는데, 특이하게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이 와서 뭔가 한참 생각했다. 딱 여행을 가기 직전에 연락을 받았는데,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강의를 할 수 있을까, 시간적 여유가 될까, 지금의 여유를 조금 더 만끽하고 싶은데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지금 생각해보니 책을 쓰기 전에 했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엔 책을 썼고, 힘든 시간을 지나, 결과를 냈을 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생각이 났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므로, 나한테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으므로. 아마 나의 다음 달은 몬스터와 함께 하는 달이 되지 않을까 싶다.


회사에서 찍는 테크 콘퍼런스 촬영도 마쳤다. 사전 준비가 길었던 만큼, 얼른 찍고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촬영이 끝날 즈음에, 올해는 카메라 앞에 설 일이 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블루라이트 차단이 되는 안경 때문에 촬영감독님이 조명 세팅하느라 애를 많이 먹으셨다. 안경을 하나 사야겠다.


바깥은 여름


경조사가 많은 한 달이었다. 특히나 누군가 갑자기 떠나보낸 사람의 소식을 들을 때가 많았는데, 기쁜 일보다는 더 마음이 쓰인다. 생각해보면 결혼식은 이미 계획된 일이고, 장례식은 늘 갑작스러운데, 나는 장례식에 더 많이 가게 되는 것 같다. 그 슬픔이 얼마나 큰지 느꼈기 때문인 것 같아. 그래서인지 장례식만큼은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순간엔 언제나 무리를 하게 된다. 그저 내 발걸음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내가 가진 모든 노력을 들여,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게, 남아있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가게 된다.

내 세상이 무너져 갈 때, 그저 내 슬픔을 바라보며 서투른 위로를 보낸 사람들이 그랬듯, 나도 그 자리에 서있어 주고 싶다.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오랜만에 동생을 만났다. 노래처럼 내 동생이 곱슬머리도, 개구쟁이도 아니지만, 동생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노래다. 연휴 때 휴가로 해외에 있어서 동생을 못 만났다. 일한다, 이래저래 바빴는데, 동생의 친한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는 덕에, 일을 빼고 얼굴도 보게 됐다. 오랜만에 강아지랑 산책도 하고, 시장에서 호떡도 사 먹고, 같이 낮잠도 자고, 포장마차에서 술도 한잔 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일을 겪었을 텐데 늘 어리게 봤다. 동생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가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는 책이나 어디서 들어서 알고 있는걸 동생은, 살면서 더 힘들게 깨우친 것 같다. 사람은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속도로 성장하는 것 같다. 정답이 없듯. 동생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 다 컸네 내 동생.

같이 걷자


그리고


벌써, 2022 년의 3사 분기도 다 지나갔다. 이제 마지막 분기가 남았다. 여행 중에 언니랑 이야기했던 게 생각난다. 살면서 가장 재밌었던,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지금이 딱 그렇다. 좋은 직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고, 좋아하는 운동을 마음껏 할 수 있고, 고생하며 다녔던 대학원을 마무리했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하루하루 재밌고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고. 연말 회고록에 또 쓰게 되겠지만, 그래도, 기억하고 싶다. 이 글을 볼 미래의 나에게. 2022 년 끝자락의 나, 참 행복했다고.

그리고, 한창 바쁠 10월도 기대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니 조금 더 잘해보자. 파이팅.


고개 들고, 어깨 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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