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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던민화 Sep 22. 2020

모던민화의 뜻

모던민화의 시작




우리가 부르는 ‘민화’를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백성 민 자에  그림 화 자의 의미를 담고 있는, 조선 후기에 일반인들에 의해 그려지던 실용적 그림이었다. 건강, 다산, 장수, 부귀영화 등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그림들로 집안을 장식하곤 하였으며, 같은 그림이 그린이의 표식 없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반복되어 그려지고는 하여 ‘본그림’이라고도 불렸다고 알려져 있다. 


어떻게 민화를 그리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낸 내가 어릴 적 좋아하고 비교적 그나마 잘 하는 것이 딱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그림이었고 다른 하나는 글쓰기였다. 그 시절 책장에 꽂혀있던 동화 전집과 위인 전집이 아직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몇몇 책을 특히 좋아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세종대왕과 신사임당 전기였다. 사실 책의 내용보다도 거기에 곁들여진 삽화가 예뻐서 보고 또 보곤 했던 것인데 그땐 몰랐지, 내가 사임당의 초충도를 그려보게 될 줄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 대백과 사전에 실린 근사한 유물들의 도판을 즐겨 보고, 특별활동 시간엔 한지 공예반에서 활동하며 연필꽂이며 상자며 이런저런 것들을 오리고 붙여 만들고, 미술시간에 십장생도를 입체물로 만들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단체생활에 무척이나 취약한 나였지만 초등학생 때 수십 명이 운동장에 모여 부채춤추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연두색에 짙은 분홍, 다소 조잡한 금박 문양이 찍혀있는 형광색 부채가 촌스러워도 끝에 달린 깃털들이 부채를 흔드는 몸짓에 따라 팔랑팔랑 움직였던 모습이 참 예쁘고 좋았다. 까마득히 잊고 지낸 시절이지만 어릴 적부터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국의 전통적인 것들이 내면에 새겨졌고, 영상 디자인을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에는 ‘민화'를 배워보고 싶어 인사동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었다. 그 시절만 해도 나는 영화를 무척 좋아해서 영상 디자인을 전공하고 영화나 광고 쪽 일을 하고 있을 줄 알았던 영상 꿈나무였던지라 과제를 할 때도 한국적인 주제와 요소를 활용하여 영상 작업을 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어느샌가 화가가 되었고 민화 속에 나타나는 단순화된 표현과 자연을 가까이한 소재들에 매료되어 그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왔고, 그것이 옛것을 답습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이야기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모던민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 민화의 형식을 모티브로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을 ‘민화’라고 부르기엔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들이라 그 의미가 맞지 않고,  과연 이 프로젝트에 어떤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앞에 ‘모던’을 붙여 <모던민화>라 부르기로 했던 것이다. 야심 차게 붙인 이름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민화에 약간의 현대적 요소를 가미하여 그린 그림들을 여기저기서 하나의 장르처럼  ‘모던민화'라고 부르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다. 내가 그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이것이 하나의 장르로 불리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저 그림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나의 이야기와 바램을 담아 그림 그리기를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대중적인 프로젝트로 여기고 있다.


모던민화는 그리는 기법의 면에서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민화와 차이가 없으나, 그림의 내용이 되는 소재들에 변화를 준 것이다. 지금 나의 주변에 있는 것,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들을 찾아 그리기 시작하였고, 그 시작은 바로 ‘의자’ 연작들이었다.


ⓒ 서하나   www.seohana.com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07년 4월, 봄꽃이 어디에나 만개해있던 그때 나는 프랑스를 여행하고 있었다. 긴 겨울의 옷을 벗은 파리 시내 곳곳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광합성을 하며 따사로운 햇살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었고, 파리는 물론이거니와 유럽 땅에 발을 처음 디뎌본 나는 이국적인 풍경에 마냥 신이 나서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도록 몇 날 며칠을 쉴 새 없이 발발 거리며 돌아다녔다. 파리를 시작으로 유럽 몇 나라를 돌아보고 와야지 하는 그다지 구체적이지 않은 계획으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한 달 반 쯤 되었던 여행 기간 동안 결국 나는 신고 갔던 하얀색에 연노란색이 더해진 나이키 에어 맥스가 잿빛이 되어 구멍이 나도록 많이도 걸으며 파리 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왔다. 다른 나라는 가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내내 한 도시에만 있어도 그 매력을 다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끝도 없이 매일 걷다 보니 의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원의 벤치, 노천카페의 라탄 의자들, 벼룩시장의 앤티크 의자들도. 뚜벅이 여행자인 나의 눈에 그것은 ‘쉼’ 그 자체 다가왔다.

ⓒ 서하나   www.seohana.com

다녀와서 그 여행을 곱씹어 보아도 의자들이 자꾸 떠올랐고, 퐁피두센터 앞에서 단소를 불며 그림을 팔 거라면서 한창 파리 앓이에 빠져있던 나는 프랑스의 고전적인 의자 형태에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을 문양화해서 그림을 몇 점 그려봤고, 그것이 지금의  <모던민화 프로젝트>의 시작이 되었다. 당시 검은색 단소를 장만하고, 그 후에도 몇 번 파리를 다시 가긴 했지만, 단소를 불며 길에서 그림을 팔겠다는 꿈은 꿈에 그쳤고, 그 단소는 몇 년 후 친구에게 기증하였다. 


민화의 매력 중 하나는 본그림이라고 하여 처음 시작할 때 직접 창작을 하지 않아도 되니 진입장벽이 낮아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꽤 완성도 있게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는 쉬운 접근성에 있다. 또 민화를 처음 그려보게 되면 순식간에 그 시간에 빠져들게 되는 몰입감이 아주 큰 매력이라고들 입 모아 말한다. 평소에 2-3시간씩 뭔가 하나에 푹 빠지기가 쉽지 않은 바쁜 현대 사회인데 그림을 그리며 그 시간에 완전히 집중하고, 그것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얻게 되니 성취감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본그림'이라는 민화의 특성이 더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발전 가능성에 제약을 둔다고 생각한다. 크고 작은 민화 전시회들을 찾아보면 대체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은 그림들이다. 전통의 맥을 잇는다고 생각하면 잠깐은 수긍이 갈까 싶다가도 진짜 그것이 우리의 전통이 되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려면 시대에 맞게 발전해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좀 더 욕심을 내보자면 나는 그리는 이가 모사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만의 언어로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길 바란다. 아무렇게나 그린 듯한 조선시대의 민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그들이 제약 없이 자유롭게 마음과 염원을 그림으로 드러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림은 그리는 이를 닮게 마련이다. 나는 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그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더 깊이 알아가며 자신만의 색을 찾고 그것을 표출해 낼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모던민화다. 




www.seohana.com

www.모던민화.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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