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개발자로 커리어 전환 시리즈
앞서 발행한 "미국 vs 캐나다" 라는 나라에 대한 고민에 대한 대답을 캐나다로 결정한 뒤, 두번째로 고심한 부분은 "대학교(4년제)를 갈 것인가, 컬리지(2년제)를 갈 것인가" 였다. 강남역에 포진해있는 유학원과 상담, 인터넷 서칭, 학교측에 이메일을 통해 컨택, 이민 상담, 다양한 시나리오를 표로 그려보기도 하며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었다. 하여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대학교와 컬리지를 고민할 때 결정을 내리게 해준 나의 기준점들을 다뤄보려 한다.
한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해야 한다.
내가 캐나다에서 어떠한 삶을 원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퇴직을 고려할 때, 한국 금융사가 가지는 높은 연봉과 좋은 복지를 마다하고 캐나다로 가려고 하는 이유와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적어보았다.
엔지니어로서 전문적인 역량을 기르고 싶다. 문과 출신은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개발자로 전환하는게 어렵다. 캐나다는 취직하는데 나이가 상관 없고, 문이과 상관없이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이 가능하다.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소득과 생활수준을 유지하거나 높인다. 외국에서 돈없고 능력없이 힘들게 살고싶지 않다.
기회가 많은 산업과 나라에 산다. 소위 말하는 큰물에 가보고싶다. 나는 성장추구형 인간이고,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시장도 넓었으면 좋겠다.
대학과 컬리지의 차이점은 1) 비용 2) 교육기간 3) 수료 후 커리어가 다르다. 4년제이고 학비가 훨씬 비싼 대학과 달리(세컨 디그리 프로그램의 경우 3년), 컬리지는 2년제이고 학비가 대학교에 비해 저렴하다. 짧은 시간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비라는 장점과 맞바꾸는 단점은 수료후 커리어 기회의 폭이 다르다는 점이다.
로컬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최대한 빨리 밴쿠버에 정착하고 소소하지만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과, 경쟁적이고 계속 성장해야한다는 압박이 더 강한 환경이나, 높은 연봉의 대기업 엔지니어로 일하는 것 중 본인이 어떤것을 더 추구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후자의 경우 대학교 졸업 시 기회가 훨씬 많이 주어지기 때문에, 위에 언급한 내가 원하는 삶과 대학이 맞다고 생각하여 대학을 선택하였다. 밴쿠버에 정착한다는 목표 보다, 커리어 전환 및 전문성 기르기에 방점을 둔 경우이다. 번외로 전문성을 기르는 것은 본인이 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어느것을 선택하던 주니어로서 전문성은 충분히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방법으로 본인이 원하는 삶의 조건을 나열했다면,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예를들어, 내가 "나는 미국 구글 본사에서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어 구글 메인 페이지를 만들거야" 라고 목표를 나열한다고 하자. 이게 이뤄질 확률은 냉정하게 0% 이다. 나는 디자인적 재능도, 흥미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첫번째 단계에서 내가 나열한 조건을, 나의 역량 범위 안에서 실현 가능한 것으로 수정해야 한다. 스스로의 회사생활, 대학교 생활, 학점, 인턴십 경험, 심지어 수능성적까지 생각해 보면서, 나의 끈기와 재능이 어떤지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내가 스스로에 대하여 내린 판단은 다음과 같았다.
1) 아카데믹한 분야, 즉 학교라는 주어진 틀 안에서 퍼포먼스가 좋다. "개천에서 용 나는 스타일"은 아니다. 어느정도 구성이 정해져있고, 그 안에서 부지런히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 "컬리지 졸업후 구글에 취업했어요" 하는 천재적인 퍼포먼스는 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 학교보다는 회사에서 평가가 더 좋다. 커뮤니케이션 및 콜라보레이션 능력이 좋은 편이며, 동료들과 편안하게 잘 어울린다.
-> 대학원/박사 과정이 탄탄한 연구중심의 학교보다는 인턴십 등 산업연계가 강점인 학교를 통해 취직을 목표로 하였다.
3) 실제 코딩 실력은 굉장히 평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추측이 사실로 밝혀짐). 애초에 "어렸을때 컴퓨터가 궁금해서 컴퓨터를 분해해 보았어요"하는 인재가 아니다. 하지만 수리, 문제해결능력이 좋다.
-> 중소기업은 코딩 실력 자체로 인력을 뽑는다. 하지만 글로벌 대기업은 문제풀이 형식의 인터뷰를 보고, 수리적 문제해결능력이 좋기 때문에 이에 적합한 유형이라고 판단했다.
4) 왠만한 압박에 쫄지 않는다. 잘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도 기죽지 않는 편이다.
-> 1시간 짜리 인터뷰를 3-5회 연속으로 보는 대기업 압박 면접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답은 없다. 대학교라는 높은 학비를 투자해서 초기 비용이 높이 들더라도 졸업 후에 연봉 1억 이상을 받는다면 몇년만에 손실을 메꿀 수 있다. 하지만 비용이 높기 때문에 리스크가 큰 것이 사실이다. 만약 졸업후에 원하는 오퍼를 받지 못한다면, 투자한 비용의 원금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 내가 원하는 삶이 밴쿠버에서 주말에 캠핑, 스키, 하이킹을가고, 너무 치열하지 않은 회사에서 칼퇴 후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선이라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컬리지를 가서 하루빨리 원하는 도시에 정착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20대 중후반, 멀쩡히 잘 다니던 금융사를 퇴직하는 싱글여성으로 나에게 내린 답은 대학교 였다. 중요한건, 큰 방향은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성공의 확률이 제일 높아보이는 현실적인 선택지를 치열하게 찾고, 선택 후에는 나 스스로를 믿고 밀고 나가는거다. 어떤 선택을 하던지, 도중에 후회하는 순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 그 때, 나의 선택의 이유를 치열히 고민하고 또 기록해 두었다면, 험난한 여정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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