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담당하고 있는 서비스, 제품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이 질문을 처음 들었던 것은 2018년 한창 IR을 준비하던 때였다. 지금은 한 회사의 PO로 일을 하고 있지만 당시 강력한 스타트업 붐이 한창이었고 너도나도 투자를 받으러 다니고 여기저기 성공담이 흘러 다닐 때였다.
내가 만드는 제품이 투자를 받기 위해, 보기 좋게 만든 것인가 아니면 정말 사용자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그리고 한 문장을 어느 책에서 읽게 되었다.
그 무언가에 대하여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면 본질을 모르는 것이다
나는 내 서비스, 내가 만들고 있는 제품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망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준비가 부족했고, 돈이 부족했고, 결국 제품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없었다.
시장 상황이 여유롭지 못해서, 투자자가 날 알아봐 주지 못해서가 아니라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었다.
그러다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고 팀원으로 몇 명의 PM과 함께 일하고 있다.
어느 날 한 PM이 이야기했다. 건강과 관련된 제품을 기획해보고 싶다. 나는 물었다. "어떻게 그 제품을 만들 생각인가요?" (물론 이렇게 젠틀하게 물어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름대로의 생각이 정리되어 있고 제품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어 보이는 답변을 해주었다. 그럴듯한 기획서 한 장 없었지만 회사의 방향과도 일치하는 제품이었다. 2주 정도 여유롭게 준비해 보자고 조언했고, 구체화와 실행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약속된 시일이 다가왔지만 준비된 내용이 없어 보이자 담당 PM에게 이야기했다. 이번주 목요일 정도 팀원들과 준비된 내용에 대해 공유해 보고 피드백을 받아보자.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다른 일을 하느라 시간이 너무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일의 준비를 위해 상당 부분 일을 덜어내고 심지어 Designer가 직접 기획까지 진행하며 업무를 보조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한주의 시간을 더 주었다. 공유하기로 약속한 날 모든 팀원은 그의 공유 내용을 듣고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스스로가 이야기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기획안을 가져온 것이다. 그것도 정말 Figma로 대충 그린 한 장의 화면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잘 만들어진 Figma디자인을 꺼내 들고 설명을 이어갔다. 결론은 앞서 만들기로 한 '건강'과 관련된 제품이 아니라 '우리 아기 키 예측'이라는 제품이었다.
왜 건강과 관련된 서비스를 준비하지 않고 전혀 다른 서비스를 준비했는지 물었다. 일단 매우 방어적인 태도였다. 그간 너무 많은 거절을 나로 인해 당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한번 차분하게 왜인지를 물었다.
'우리 아이 키 예측'이 핵심 지표를 올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답이었다. 그러나 내가 물은 것은 왜 '건강'제품을 준비하지 못했느냐였다.
결국 그 제품을 '하고 싶어서' 해보겠다고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얼마나 깊이' 고민해야 하는지 본질을 들여다보지 않았거나 들여다보니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을 것이다. 만약 어려운 문제였다면 쉽게 해결하기 어려워 보였다.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사전 공유가 있었어야 한다.
제품을 담당하는 사람은 항상 부지런해야 한다. 자신의 컨디션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하고, 팀원들이 현재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흔들리지 않게 붙잡기도 해야 하고,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언제나 방향을 수정하고 새로운 방향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결론은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질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특히, PM, PO와 같은 직군은 더욱더 그렇다.
서비스와 제품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이 가능하려면 정말 끊임없는 연구와 조사, 그리고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한 대화가 부족할 때 우리는 쉽게 말해 산으로 가는 기획을 만나게 된다.
이제 제품을 만드는 모든 조직은 구성원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표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 중심에 있는 PM, PO가 커뮤니케이션을 소홀히 하고 연구와 조사가 부족한 기획을 들고 구성원을 설득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설득하고 실행해야 한다. 언제나 중요한 가치는 '실행'이다. 실행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은 결국 아무런 결과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