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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Jul 14. 2024

책상 위가 지저분해지는 이유

나는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타입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제발 정리 좀 하라는 잔소리를 매일 들었던 것 같다. 정리하면 할수록 더욱 복잡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 학창 시절 내 책상은 언제나 각종 문제집과 학습지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책상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상을 치우다가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나오는 날엔 그걸 읽느라 청소는 뒷전이 되었다. 당연히 공부는 더욱 뒤로 밀렸다.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엄마에게 매번 혼이 났지만, 어쩐지 그 습관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난 후에도 집중해서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책상 위에 종이가 한두 장씩 쌓여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업무 자체가 동시다발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많아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책상 위에 쌓인 책과 문서들이 많다고 해서 체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보고할 기한이 정해져 있는 문서들은 위에 날짜를 적어서 체크해 두었다. 그 외에 따로 필요한 것들은 파일에 잘 정리해 두고, 파일에 네임택을 달아 구분해 놓기도 했다. 사실 책상이 자꾸 지저분해지는 이유는, 업무공간과 책상이 유난히 좁기 때문이기도 하다. 캐비닛도 충분하지 않고 하다못해 서류를 정리해 둘 공간도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책상 앞에 깔아놓고 일하는 게 편해져 버린 거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이것도 처리하고 저것도 처리하고 정신없이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윗분이 방문하셨다. 재빠르게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일하느라 바빴다. 윗분은 쯧쯧 혀를 차시더니 “책상 위를 좀 깨끗하게 정리해야지. 이게 뭐냐.”라고 했다. 책상을 치울 시간조차 없이 바빠서 그런 건데, 순간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이도 없고 억울하기도 했다.


   뭔가 대꾸를 해야 했는데 그만 기회를 놓쳐버렸다. 윗분이 가시고 나서야 ‘한마디라도 할걸..’이라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꼭 제대로 답변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몇 달 후 또 비슷한 지적을 당했다. 나는 그동안 생각했던 대로 윗분에게 말했다. “책상은 시간만 넉넉하면 치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책상이 깨끗하다는 건 제가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하고 말이다.


   물론 이 말을 듣고 윗분은 좀 어이없게 생각하시긴 한 것 같지만, 각자의 업무 스타일은 다른 거니까. 게다가 내가 했던 말에 나는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고 오히려 자부심이 있기까지 하다. 그래서 업무 중에 책상이 복잡해지는 것은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근거로 삼기 시작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대부분의 업무들이 정리되고 최종점검만 앞두고 있다. 덕분에 그동안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책들과 서류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파쇄할 것은 파쇄기에 넣어 모두 깔끔하게 정리했다. 어느새 이것은 업무를 마무리하는 나만의 의식이 되었다.


   깨끗해진 책상 위를 보니 기분이 좋다. 이제까지 미처 신경 못 쓰던 책상 주변까지 깨끗이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여유가 생기는 느낌이다.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이미 해낸 것들에 대한 잔잔한 뿌듯함도 밀려온다. 이제 밀린 연수도 좀 듣고, 생기부 점검도 하고, 행사 뒷마무리 보고도 잘 끝내봐야겠다는 다짐으로 한 주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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