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간 꽤 힘들었다. 지금 근무하는 곳에 처음 올 때부터 익히 소문으로 들어왔던 일들이 내게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윗사람의 과도한 언어폭력과 갑질은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상황이었지만, 이기적 이게도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모르고 싶었다. 몰라야만 했다. 그저 무심하게도 나만 건드리지 않기만을 바랬다. 그러나 계속된 폭주는 마치 러시안룰렛과도 같은 상황을 불러왔다.
러시안룰렛이란 회전식 연발 권총의 여러 개의 약실 중 하나에만 총알을 넣고, 총알의 위치를 알 수 없도록 탄창을 돌린 후, 참가자들이 각자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 이 게임에서 주최자는 모든 직원을 참가자로 만들어 사방을 쏴댔다. 누군가 한 명이 우연히 총알을 맞고 쓰러지면, 남아 있는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심장이 오그라들어야 했다.
위기감은 점점 더 커졌고 이미 터졌던 다른 사건들 때문에 일순간 잠잠해졌던 룰렛게임은, 2학기가 시작된 후 방향을 바꾸어 다시 시작되었다. 다음 총알은 나의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늘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했던 상태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번 타깃은 나구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고 어떻게 하면 최대한 부수적인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제발 조용히 넘어가기만을 바랬는데, 추석 전부터 본격적인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아, 그 시기는 내게 너무나도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어쩌면 타이밍을 맞춰도 그렇게 맞추는지. 계속되는 공격에 나의 심장은 쪼그라들었고 숨이 잘 안 쉬어져 몇 번이나 심장을 부여잡고 나뒹굴어야 했다. 무엇이든 최악부터 상상해 버리는 나는 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좁은 상자 속에 옴짝달싹도 못하고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톡 건드리기만 해도 찰랑거리던 눈물이 홍수처럼 넘쳐흘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임을 6개월 앞두고 다시 시작된 러시안룰렛에서 우리는 깨달았다. 요청한 적도 없는 참가자가 다수이고 주최자는 한 명이라는 사실을. 주최자의 칼춤에 다시 눈치를 보며 누군가가 희생되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조용하고 빠르게 독재자를 해결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이루어졌다. 어떤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그동안의 갑질을 문서로 정리하는 데만도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한 사람이 지난 3년간 당한 갑질만 3~40건이 넘는다고 했다. 수십 명의 기록이 모아졌고, 차곡차곡 쌓인 증거들은 동료가 쓰러지고 병들어가고 죽어가는 걸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고요 속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었다. 증언과 자료와 증거가 너무도 많아 여전히 이 사안은 조사 중이지만 1차 조치로 독재자는 퇴임 때까지 강제 휴식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장 피해를 본 것은 바로 학생들이었다. 독재자의 갑질을 위한 갑질이 이어지는 동안 학생들은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누릴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을 말해 달라는 조사관의 질문에 놀랍게도 모든 직원이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가장 속상하고 가슴 아픈 것은 아이들이 당연히 할 수 있는 교육활동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어른인 나는 조금 참고 버틸 수 있지만 정말 중요한 아이들의 시간과 미래를 이렇게 날려버리도록 둘 수는 없다고.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아직은 모르지만 결국 진짜 처벌받아야 할 대상이 처벌받기를. 묵묵히 버텨온 시간에 대한 상처가 서서히나마 아물기를. 또 아이들이 누려야 할 것들을 제대로 누리며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그저 바램은 그것뿐이다. 그 어디에서도 다시 이런 러시안룰렛이 없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