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rl K Oct 25. 2024

러시안룰렛의 말로

지난 몇 달간 꽤 힘들었다. 지금 근무하는 곳에 처음 올 때부터 익히 소문으로 들어왔던 일들이 내게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윗사람의 과도한 언어폭력과 갑질은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상황이었지만, 이기적 이게도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모르고 싶었다. 몰라야만 했다. 그저 무심하게도 나만 건드리지 않기만을 바랬다. 그러나 계속된 폭주는 마치 러시안룰렛과도 같은 상황을 불러왔다.


   러시안룰렛이란 회전식 연발 권총의 여러 개의 약중 하나에만 총알을 넣고, 총알의 위치를 알 수 없도록 탄창을 돌린 후, 참가자들이 각자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 이 게임에서 주최자는 모든 직원을 참가자로 만들어 사방을 쏴댔다. 누군가 한 명이 우연히 총알을 맞고 쓰러지면, 남아 있는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심장이 오그라들어야 했다.


   위기감은 점점 더 커졌고 이미 터졌던 다른 사건들 때문에 일순간 잠잠해졌던 룰렛게임은, 2학기가 시작된 후 방향을 바꾸어 다시 시작되었다. 다음 총알은 나의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늘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했던 상태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번 타깃은 나구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고 어떻게 하면 최대한 부수적인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제발 조용히 넘어가기만을 바랬는데, 추석 전부터 본격적인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아, 그 시기는 내게 너무나도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어쩌면 타이밍을 맞춰도 그렇게 맞추는지. 계속되는 공격에 나의 심장은 쪼그라들었고 숨이 잘 안 쉬어져 몇 번이나 심장을 부여잡고 나뒹굴어야 했다. 무엇이든 최악부터 상상해 버리는 나는 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좁은 상자 속에 옴짝달싹도 못하고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톡 건드리기만 해도 찰랑거리던 눈물이 홍수처럼 넘쳐흘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임을 6개월 앞두고 다시 시작된 러시안룰렛에서 우리는 깨달았다. 요청한 적도 없는 참가자가 다수이고 주최자는 한 명이라는 사실을. 주최자의 칼춤에 다시 눈치를 보며 누군가가 희생되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조용하고 빠르게 독재자를 해결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이루어졌다. 어떤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그동안의 갑질을 문서로 정리하는 데만도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한 사람이 지난 3년간 당한 갑질만 3~40건이 넘는다고 했다. 수십 명의 기록이 모아졌고, 차곡차곡 쌓인 증거들은 동료가 쓰러지고 병들어가고 죽어가는 걸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고요 속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었다. 증언과 자료와 증거가 너무도 많아 여전히 이 사안은 조사 중이지만 1차 조치로 독재자는 퇴임 때까지 강제 휴식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장 피해를 본 것은 바로 학생들이었다. 독재자의 갑질을 위한 갑질이 이어지는 동안 학생들은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누릴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을 말해 달라는 조사관의 질문에 놀랍게도 모든 직원이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가장 속상하고 가슴 아픈 것은 아이들이 당연히 할 수 있는 교육활동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어른인 나는 조금 참고 버틸 수 있지만 정말 중요한 아이들의 시간과 미래를 이렇게 날려버리도록 둘 수는 없다고.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아직은 모르지만 결국 진짜 처벌받아야 할 대상이 처벌받기를. 묵묵히 버텨온 시간에 대한 상처가 서서히나마 아물기를. 또 아이들이 누려야 할 것들을 제대로 누리며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그저 바램은 그것뿐이다. 그 어디에서도 다시 이런 러시안룰렛이 없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앞마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