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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Dec 05. 2024

소름 돋는 불안의 밤

최근 무리한 탓에 피로가 겹쳐 오늘에야말로 일찍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고 치우고, 소화를 시키자마자 씻고 잠이 들었다. 얼마쯤 잤을까 온도가 맞지 않아 눈을 떴다. 확인한 시간은 11시가 좀 안된 시간이었다. 모두가 잘 준비를 하거나 이미 자고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남편이 갑작스럽게 "지금 큰일 났대. 진짠가?" 하며 TV를 틀었다.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그 뒤에도 무슨 말인가를 한참 얘기했던 것 같은데, 그 첫 문장을 듣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직 꿈에서 깨지 않은 건가 아니면 꿈속에서 타임슬립이라도 해서 1980년대로 온 건가.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것도 2024년에.


고등학교 2학년 때 망월동 묘역에서 열린 5.18에 관한 글짓기를 하러 학교 대표로 나갔던 적이 있었다. 신군부의 쿠데타 이후 권력을 잡은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계엄령을 발표했었다. 신군부가 대한민국을 장악했던 그때의 광주, 오월. 너무나도 많은 작품과 책과 영화로 변주되어 왔기에 모를 수 없는 이야기. 실제 현실은 훨씬 더 참혹했겠지만 안전한 곳에서 작품으로 그 시간들을 보면서도 당시의 사람들의 고통을 감히 짐작하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몇 년 전에는 올해의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작품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다시금 그 사건을 간접 체험하기도 했었다


45년에 가까운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그때의 공포가 지금 우리 앞에 다시 다가온 느낌이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의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말을 내뱉은 인물의 사회적 지위가 전혀 가볍지 않았기에,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언제나 모든 경우의 수를 특히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버릇이 있는 나에게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지는 시간이었다.


대체 내가 어느 시대에 와 있는 건지, 이것이 과연 현실이긴 한 것인지.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밤이었다. 시민들이 하루에 일을 마치고 지쳐 잠든 시간에 평화롭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는커녕 도로 위에 군용 트럭이 다니고 군인들이 총을 들고 다니는 이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결국 다시 잠들지 못하고 밤잠을 설치는 바람에 세 배는 더 피곤해졌다.


비록 6시간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수많은 경제적 파국과 시민들의 불안을 유발했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쌓아온 국격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었다. 명확한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계엄령은 국가내란죄에 해당한다. 헌법에 위배되는 일을 국민들의 민의를 대표하기 위해 뽑힌 대통령이 자행한 것 자체가 조선일보의 말을 빌리면 정치적 자해이자 자살이라고 했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를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대국민사과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닌데 말이다. 다시는 이런 불안한 밤을 보내고 싶지 않다. 제발 좌든 우든 보수든 진보든 다 떠나 이제까지 쌓아온 민주주의에 합치하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를. 앞으로 국가의 혼란을 막기 위해 국가내란죄를 저지른 범죄자와 거기에 동조한 주동자 세 사람은 당장 체포하여 구금하고, 내년 봄에는 다시 대선을 치러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인물이 당선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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