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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26. 2018

나의 절반을 이루는 엄마라는 존재

리틀 포레스트, 2018

 내가 대여섯 살 때, 할머니 댁에서 오래된 사진 속 엄마의 어린 시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사진 속 아이가 나랑 너무 똑같은데 나는 그런 사진을 찍은 기억이 없는 것이다. 이게 엄마라고? 아닌데, 이건 난데...모두가 짜고 나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해 울면서 '이거 엄마 아냐~ 나야~' 하면서 우겼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언니는 나를 보면 문득문득 엄마가 젊던 시절을 다시 보는 것 같다고 신기해 한다. 외모가 이렇게나 닮아서 더 그런지는 몰라도, 엄마와 나는 종종 서로에게서 자신을 보는 듯 하다. 엄마는 아가씨 시절에 대한 향수나 아쉬움이 내가 행복하게 사는 걸 보면서 싹 사라진다고 한다. 한편 나는 엄마가 너무 고생을 하거나, 당신이 가진 걸 나에게 지나치게 쏟는 걸 볼 때면 내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마음이 아프고 허전해진다. 정서적인 탯줄이 서로를 강하게 잡아당기는 느낌이다.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는 표면적으로는 꿈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그리지만, 사실은 엄마와의 강한 유대와 그 관계가 갑자기 끊어짐으로 인해 상처받은 주인공이 엄마의 레시피로, 엄마의 주방에서 요리를 배우며 치유를 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도시에서 배가 고파 돌아온 주인공은 적막한 시골집에서 뚝딱뚝딱 소박한 음식을 하며 1년을 살아간다. 주인공이 혼자가 아닌 이유는 친구들이 함께 요리를 먹고 취하고 같이 고민해줘서가 아니다. 그 요리들 안에 엄마의 목소리가, 추억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한 그릇씩 완성해 입에 넣을 때마다, 엄마가 보인다. 따돌림을 당해 속상했던 날 엄마가 준 달콤한 크림 브륄레. 가을에 걸어 두고 계속 만져줘야 겨울에 진짜 맛있어 진다던 엄마표 곶감. 주인공은 엄마를 떠올리며 하나씩 요리를 해 나간다. 때로는 약간의 경쟁심으로 다른 레시피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난 엄마가 남겼던 편지의 말들을 이해하게 되고, 엄마를 만나지 않고도 마음 속으로 화해를 한다.

독립을 하고보니 엄마의 기억은 주방에 가장 많이 남는다. 머리가 자주 아픈 나를 위해 집안이 매캐하도록 생강차를 끓여주던 엄마. 감기에 걸려 온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도 소파에 이불을 돌돌 감고 누운 나에게 대게를 살만 발라내 떠먹여주던 엄마.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늘 매운게 먹고싶은 날 위해 육개장을 끓여 기다리던 엄마.


엄마의 수백 가지 레시피 중 한개도 배우지 못하고 어영부영 독립을 한 입장에서, 엄마를 떠올리며 그 맛을 되살려 낼 수 있는 주인공이 참 부럽단 생각이 들었다. 허기에 쓰러진 주인공을 일으켜 준 건 자연의 힘도, 고향 친구들도 아닌, 1년 간 그의 허기를 채워 준 "엄마의 맛들"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서울에 잠시 올라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 작은 집에 돌아온다. 텅 비었을 줄 알았던 주방에서 온기와 인기척이 느껴지자, 미소를 지으며 들어선다. 엄마가 돌아왔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

 나는 세시간 거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도 엄마 반찬을 기다리고, 나의 주방 앞에서 엄마가 만들어 주던 맛들의 1/10도 따라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엄마가 없어져도 추억하며 다시 일어설 힘을 갖기 위해서는 얼마나 준비가 필요한 걸까? 준비보다도 아직은 엄마가 젊을 때, 우리가 아직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때 엄마가 오래오래 곁에 있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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