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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Dec 05. 2023

플라멩코

어두운 무대가 서서히 밝아오더니 남자 셋이 보인다. 그중 제일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두어 발 나오더니 힘을 다해 소리를 낸다. 오장육부를 다 불러내어 서로의 음을 목소리로 내는 것 같다. 아, 우리 배 속에 있는 내장의 아픔이라니. 무대가 더 밝아지더니 플라멩코의 댄스복을 입은 무희들이 발을 구른다. 내장들의 소리가 처절할수록 발을 구르며 요동치는 소리는 무겁게 울려 퍼진다.


손녀딸을 바라보니 입을 벌리고 무대에, 인생의 굴곡 놀이에 빠져 있다.

엄지와 검지로 가만히 입을 닫아주었으나 그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다시 보는 플라멩코는 삶과 죽음을 더 명확히 알려주는 것 같다. 젊을 때 봤던 그 춤은 유랑극단의 아련한 움직임 같았는데, 자식들과 자식의 자식과 동반한 자리에서는 그 기막힌 세월 동안 나를 지탱해준 내장들의 아픔이었다.     


나는 그 아픔을 알고 여기까지 왔던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 로마서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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