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옥에서 벗어난 기쁨
한 달 전에 식기 세척기를 구매했다. 오랫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질러버렸다. 2년 전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식기 세척기를 설치할까 했었으나 주방 구조상 1자형 싱크대를 설치해야 하는데 식기 세척기를 설치하면 수납공간이 많이 부족할 것이란 인테리어 업체 담당자의 이야기에 식기 세척기를 설치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나의 싱크대는 빈 공간이 넘쳤고, 나는 요리보다 설거지를 더 싫어하는 편이라 식기 세척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더랬다. 나의 게으름은 나의 물욕을 지속적으로 자극했다. 설거지가 싫어 반찬통을 그대로 꺼내 밥을 먹고 다시 냉장고에 넣으면서 스스로 이토록 비위생적인 생활을 하다니, 나에게 실망을 하곤 했다.
우리 가족은 대가족이다. 밥 한 끼를 먹고 나면 싱크대 개수대 가득 그릇들이 넘쳐났다. 딸 셋에 아들 하나인 우리 집에서 저녁 설거지는 가장 늦게까지 먹는 사람의 몫이었다. 설거지를 싫어하기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공통점이었다. 셋째 동생은 설거지가 싫어서 아예 저녁을 먹지 않았고, 끝까지 밥상에 앉아 천천히 밥을 먹는 내가 설거지의 주인공인 날들의 연속이었다. 저녁을 거른 셋째는 내가 설거지를 다 마치고 나면 그제야 밥을 먹곤 했다. 아, 저런 방법이 있었다니! 여하튼 내가 설거지에 학을 떼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어린 시절 대가족이 먹은 그릇을 하나하나 씻어야 했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남자 친구가 우리 집에서 밥을 먹게 되는 일이 생기면 나는 요리를 하는 편을 택했다. 요리 솜씨가 형편없지만, 요리도 너무 하기 싫지만 지저분한 그릇을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씻는 일은 요리보다 더 재미가 없다. 요리를 할 때는 무언가를 완성한다는 보잘것없는 성취감이라도 있지만 식사를 끝내고 부른 배를 두드리고 있자니 고춧가루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그릇들과 기름이 눌어붙은 프라이팬이 쌓여있는 개수대는 쳐다보기도 싫은 것이다. 생각해 보면 설거지는 얼마나 외로운 노동인가. 개수대 앞에 서서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에 세제를 짜서 거품을 일으키고 내가 먹은 그릇을 하나하나 꼼꼼히 닦는 일은. 음악을 듣거나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설거지를 하려고 해도 물소리 때문에, 그릇이 부딪히는 소음에 음악에 집중할 수도 없는 일은.
나는 8인용 식기 세척기를 주문했다. 이미 식기 세척기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왕 살 거면 12인용을 사야 한다고 말했지만 혼자 사는 나는 그렇게 많은 설거지 거리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굳이 대용량은 필요하지 않았다. 걱정과 기대의 마음으로 식기 세척기를 주문했고, 식기 세척기가 배달되기 하루 전에 설치 기사님이 우리 집을 방문해 싱크대의 치수를 재고 식기 세척기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두었다. 다행히 추가 공사 없이 식기 세척기가 설치되었다. 미리 인터넷으로 식기 세척기용 세제를 주문해두었기에 신난 나는 바로 설거지거리를 만들었다. 냉장고에 방치되어있던 오래된 반찬들을 버리고 반찬통을 식기 세척기에 넣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한 시간 반 후 반짝반짝 윤이 나는, 갓 설거지가 끝난 나의 반찬통을 식기 세척기에서 꺼냈다. 내가 아무리 세제를 많이 짜서 설거지를 하더라도 이토록 뽀드득하게 설거지를 하지 못할 터이다. 왜 이제야 이토록 유용한 기계를 들였단 말인가. 나는 후회와 만족의 마음을 담아 내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았다.
얼마 전, 부모님 집을 다녀왔다. 웬만하면 내가 요리를 해서 두 사람을 대접하면 좋겠지만 나도 내가 한 요리는 먹기 싫을 정도이므로 보통 집에 가면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을 하거나 밖에서 음식을 사서 집에 간다. 오랜만에 맏딸이 온다고 진수성찬을 차릴 엄마가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 두 사람이 먹던 소박한 밥상보단 신경을 쓸 터이므로 조금이라도 엄마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날은 밭 일로 바빠서 외식을 할 수가 없어 엄마가 미리 사둔 삼겹살에, 밭에서 딴 고추를 곁들어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끝낸 엄마는 다시 밭으로 일을 하러 갔고 나는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내가 없었다면 엄마는 한참을 이렇게 싱크대 앞에 서서 두 사람이 먹은 그릇들을 씻어놓고 커피 한 잔 마실 틈도 없이 다시 밭으로 나갔을 터였다. 정작 식기 세척기가 필요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12인용 식기 세척기를 주문했다. 아직 부모님 집에 배송이 되지 않았지만 내가 식기 세척기를 주문했다는 이야기에도 엄마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중간에 먹는 참까지 하루에 다섯 번이나 음식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엄마가 설거지를 해야 하는 그 시간에 잠시라도 앉아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쉬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식기 세척기를 주문했다. 단 오분, 십 분 일 지라도 말이다. 일 욕심이 많은 엄마가 쉬지 않고 바로 밭으로 일을 하러 급히 나가더라도 식기 세척기로 인해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엄마는 얼마 전에 청소를 하다가 본인의 처지가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던지 갑자기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놈의 집구석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내가 밖에 나가서 일을 안 하나! 밖에서도 일하고 집에 들어와서도 나만 일하고! 어!”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70년 가까이 집안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아빠가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꽃님이가 인간의 말을 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럴 바에는 엄마의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것들의 도움을 받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쨌든 식기 세척기를 구매하고도 나의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식기 세척기가 생겼다고 내가 더 건강해졌다거나, 살이 빠졌다거나, 더 예뻐졌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더 이상 개수대에 쌓인 설거지거리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단지 그뿐일지라도 스트레스가 넘쳐나는 일상에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가 주는 만족감은 생각보다 크다. 설거지를 해야 하는 10분, 20분 동안 소파에 앉아서 차 한잔을 마시며 멍하게 있더라도, 그 시간이 실은 나의 고단한 하루를 조금 더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엄마의 일상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아빠가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소리를 치지 않아도, 설거지를 해야 하는 시간에 잠시 앉아서 고단한 몸과 마음을 쉬었으면 하는 것이다.
식기 세척기를 사고 싶다는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혼자 사는데 무슨 식기 세척기’냐며 나를 말리곤 했더랬다. 그 사람들에게 이제야 말한다.
‘아, 그때 왜 저를 뜯어말리셨나요. 혼자 살아도 식기 세척기가 있으면 너무 좋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