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단걸 Oct 11. 2022

잘 삐지는 강아지에 대하여

무신경한 나라서 미안해.


꽃님이에게 애착 인형을 사주었다. 유명하다는 젤리캣 인형. 인형 하나의 가격이 5만 원이 넘어 강아지에게 사주기에는 조금 비싼 감이 있지만 꽃님이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봄이의 낡은 파자마는 지난 2년간 하도 물고 뜯고 해서 곳곳에 구멍이 났기에 나는 꽃님이에게 젤리캣 인형을 사주었다. 그 인형의 촉감이 마음에 든 것인지 꽃님이는 잘 때면 인형을 물고 킁킁 소리를 내며 침대로 올라와 잠을 잔다. 내가 인형을 좀 만지려고 하면 재빨리 인형을 물고 침대 끝으로 가서 소중히 끌어안고 잠을 잔다. 


베란다 문이 열린 틈을 타서 꽃님이가 베란다에 나가서 저지레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꽃님이에게 들어오라고 한 뒤 베란다 문을 닫자 이에 삐진 꽃님이가 침대로 뛰어올라가 인형을 물고는 거실로 총총 나가버렸다. 나는 꽃님이에게 사과를 했지만 기분이 풀리지 않았던 꽃님이는 내가 잠들 때까지 침대로 오지 않았다. 삐져서 나와 함께 잠자기 싫다며 거실로 나가면서도 애착 인형은 잊지 않고 가지고 가는 강아지라니!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꽃님이는 침대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인형은 거실 소파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추석 연휴에 집에 내려가면서 나는 꽃님이의 애착 인형을 챙겼다. 인형이 없다고 잠을 못 자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낯선 공간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꽃님이에게 인형이 있다면 조금 더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이번 추석에는 조카들도 함께 했는데, 꽃님이는 틈만 나면 조카의 젤리캣 인형을 노렸다. 둘째 동생이 “안돼! 이 인형은 안돼!”라고 소리를 질러 가보면 꽃님이는 인형을 훔치려 하고 있거나 이미 훔쳐서 도망을 간 후였다. 나는 꽃님이의 품에서 인형을 꺼내 동생에게 넘겨줬다. 동생이 어렵게 직구로 구했다는 판다 인형이었다. 그렇게 도둑질을 한 인형을 빼앗긴 꽃님이는 시무룩해했다. 집에 와서 꽃님이를 앉혀놓고 나는 진지하게 설명했다. 

“꽃님아, 도둑질은 안돼. 네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내는 건 착한 강아지가 하는 행동이 아니야. 다음부턴 그러지 마. 알았지?”

내 이야기를 알아듣는 건지, 내 잔소리가 귀찮은 것인지 꽃님이는 한숨을 푹 내쉬고 허공을 응시했다. 그런 밤에는 침대에서 나와 함께 잠을 자지 않고 혼자 거실 소파에서 인형을 품에 안고 잠을 자는 것이다. 


며칠 전, 예전에 갔던 대관령 선자령을 다시 찾았다. 최근 꽃님이는 삼십 분 이상의 산책을 거부하는 일이 잦은 터라 떠나기 전까지 걱정을 많이 했더랬다. 중간에 더 이상 걷지 않겠다고 할 경우를 대비해 흔히 ‘강아지 띠’라고 불리는 슬링백도 챙기고 25킬로짜리 배낭도 챙겼다. 다행히 나이가 많은 봄이도, 오래 걷기를 싫어하는 꽃님이도 다들 잘 걸어주었다. 날씨도 너무 좋았더랬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뒤늦게 오래 걸은 것이 분했던 모양인지 꽃님이는 뒷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앞자리로 건너오도록 간식으로 유인해보았지만 꽃님이는 급기야 간식도 거부하고 몸을 돌려 앉아 버렸다. 


동물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돌아오는 길에도 꽃님이는 뒷자리로 건너가서 삐졌음을 표현한다. 꽃님이는 자주 내 얼굴을 핥아주고, 내 무릎에 앞다리를 올리고 묵직한 몸을 기대어 내게 애정표현을 하는데 이럴 때 꽃님이의 애정표현을 부담스러워하면 안 된다. 만약 얼굴을 핥는다고 내가 얼굴을 뒤로 빼거나, 무겁다고 몸을 뒤로 빼면 꽃님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닫힌 켄넬 문을 열고 들어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꽃님이는 섬세한 감정을 가진 강아지다. 복길이와 봄이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병원에 데려가서 주사를 맞히고, 심지어 수술을 시켜도) 삐지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꽃님이가 삐진 것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는 꽃님이가 혼자 켄넬 문을 열고 들어가 있으면 내가 무언가 꽃님이를 속상하게 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조심히 켄넬 문을 열고 내 머리를 켄넬 안에 넣고 꽃님이를 달랜다. 


화가 났으나 말을 할 수 없으므로 이렇게라도 표현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고맙기도 하다. 무디고 무신경한 나에게 그렇게 본인의 감정을 표현해주니 꽃님이를 달래줄 수 있으니 말이다. 

어쩐지 나에게 기회를 주는 것 같기도. 


어찌나 알뜰히 핥아주었는지 침으로 목욕한 애착 인형


잘 시간이 되면, 애착 인형을 침실 문 앞에 가져다 두고 줄 서기


삐져도 애착 인형은 제 눈앞에 두고 삐지기
난 너랑 말하기 싫거든! 혼자 켄넬 문 열고 들어가 문 닫고 앉아있는 강아지



매거진의 이전글 강아지 발 냄새에 중독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