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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Nov 27. 2022

새벽형 강아지들

굳이 나를 따라서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데.



몇 달 전부터 새벽 6시에 일어나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저녁시간을 조금 더 여유롭게 쓰기 위해서 나의 아침 시간을 할애하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여섯 시 반이든, 일곱 시든 일어나서 회사에 출근은 해야 하므로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자기 계발에 쓰기로 한 것이다. 새벽 달리기를 그만둔 후, 나와 함께 늦게까지 침대에서 뒹굴던 강아지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내가 일어나면 그들도 나를 따라 일어난다. 내가 물 한잔을 마시고, 거실에 앉아 공부를 시작하면 잠이 덜 깬, 약간 부은 얼굴로, 못마땅하다는 듯이 비척거리며 침실에서 걸어 나와 이내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코를 골며 잠을 청하는 것이다. 그토록 피곤하면 그냥 침실에서 조금 더 자고 나오라고 아이들을 침실로 밀어 넣어도 기어코 내 뒤에 자리를 잡고 모자란 아침잠을 보충한다.


무척이나 졸린 상태의 강아지들은 내가 전화영어 선생님과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누어도, 간간이 터지는 웃음에도 미동도 없이 잠을 잔다. 사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인간인 나도 쉽지 않지만 강아지인 그들에게도 쉽지는 않을 터. 굳이 나를 따라서 새벽에 일어나 내가 공부하는 동안 그 근처에 누워 자는 이 행위를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의리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수업이 끝나면 나는 잠든 아이들의 가슴에 귀를 대고 숨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꽃님이의 우렁차게 코 고는 소리가 몸통에 부딪히는 그 파동을, 봄이의 쌔근쌔근 숨소리를 귀담아듣는다. 이것은 내가 그들에게 보여주는 의리이다. 그들이 조금 더 잠을 잘 수 있도록 조용히 그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


주말 아침, 내가 마음껏 늦잠을 잘 수 있는 날. 내가 늦게까지 잠을 자고 있으면 나보다 먼저 일어난 두 녀석이 기지개를 켜고 나란히 앉아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기척이 느껴진다. 무시하고 계속 잠을 자려고 하면 거실로 나가 찹찹 소리를 내며 물을 마시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며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그래도 계속 일어나지 않고 잠을 자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물고 침대로 올라와 조금 더 놀다가 다시 내 옆에 누워 쌔근쌔근 잠을 잔다. 주중 새벽형 인간과 강아지들은 주말에는 누가 뭐래도 게을러진다. 굳이 주말까지 새벽형 인간과 강아지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나는 홈캠을 켜서 아이들이 무엇을 하나 확인을 한다. 한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잠자던 아이들은 내 퇴근시간이 되면 일어나 현관 쪽을 바라보고 앉아 나를 기다린다. 시계도 볼 줄 모르는 녀석들이 다섯 시 반에서 여섯 시 사이에는 꼭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집에 오는 날에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도, 심지어 중문을 열고 들어와도 세상모르게 잠을 자고 있다. 내가 살금살금 다가가 아이들을 만지면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앉아 ‘아니 니가 이 시간에 어쩐 일로?’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어 내 얼굴을 핥고, 왕왕 짖으며 나를 반겨준다. 


설채현 수의사가 그랬다. 강아지들도 시간을 안다고. 강아지들의 시계는 냄새라고. 보호자의 냄새가 이 정도 옅어지면 보호자가 집에 오더라. 그런 경험들이 그들의 시간이 된다고. 얼마나 로맨틱한 지! 우리의 공간에 흩어진 내 냄새의 농도로 시간의 흐름을 안다는 것이. 그들의 시간에 내가 있다는 것이. 퇴근시간이 되어 신나는 내 기분의 절반 이상은 로맨틱한 강아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은 아닐까. 


어떤 날 아침엔 아이들을 깨우기 싫어서 최대한 조용히, 내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게 조심조심 일어나 거실로 나온 날엔 내가 이미 일어난 줄도 모르고 잠을 있다가 내 말소리에 호다다닥 침대를 내려와 탁탁탁 발소리를 내며 바쁜 걸음으로 거실로 뛰어나온다. ‘왜 우리를 깨우지 않은 거야?’하는 표정으로 내 발치에 앉아 나를 쳐다보다가 소파로 올라가 다시 편한 자세로 잠든다. 새벽형 인간이 되고자 하는 나를 따라 엉겁결에 새벽형 강아지가 된 이들의 얼굴은 어떤 날은 부어있고, 어떤 날엔 눈이 반쯤 감겨있고, 또 어떤 날엔 반짝 빛난다. 


내가 출근 준비를 끝내면 그때 강아지들을 깨워줄 수 있는데! 어째서 아직 세상이 어둑한 새벽에 나를 따라서 일어나는 것인지! 결국 졸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잠들 거면서 말이다. 내가 출근하면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잠을 자다가 또 갑자기 일어나 멍한 얼굴로 앉아 있다가 이내 서로의 곁에서 잠을 청하는 강아지들이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들의 시간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나의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닐는지. 



졸리지만 새벽에 일어나는 새벽형 강아지들


결국 이렇게 또 잘 거면서 ㅋ


사색 중인 새벽형 강아지


잘 건 지, 일어날 건지 하나만 선택해줄래? 
한 침대를 공유하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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