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꿈꿉니다.
삶이 힘겨워졌습니다. 아니 삶이 지겨워졌다고 해야 할까요. 이도 아니면 삶이 버거워졌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지만 바쁜 일상에 지쳐있었던 것일까요.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어 졌습니다. 혼잡한 공항을 통과하여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는 여행이나, 혼자 차를 몰고 바쁜 도시를 벗어나는 과정이 없이 영화 속 장면 변환처럼 나는 어느새 그곳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그곳이 어디쯤 일지, 몇 시 일 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상상이니까요.
나는 한적한 산길에 서 있습니다. 배낭도 없이, 물 한 병도 없이 산길을 걷습니다. 주머니가 없는 옷을 입고 가벼운 신발을 신고 사뿐사뿐 걸어봅니다. 좁은 길가엔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하게 줄지어 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먼지가 풀풀 날리는 흙길을 음악도 없이 그냥 걷는 겁니다. 이왕이면 여름이 시작되는, 선선한 기온에 이따금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 여름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너무 가파르지 않아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 않을 정도의 오르막길을 쉬엄쉬엄 걷습니다. 내 옆에 서 있는 나무는 잣나무였으면 합니다. 소나무와 달리 하늘로 곧게 뻗은 잣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으면 왜인지 안심이 될 테니까요.
단단한 잣나무에 딱따구리가 앉아 열심히 딱딱 소리를 내며 둥지를 만들고 있다면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올려다보겠지요. 오래전 스톡홀름 근처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딱따구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온갖 새들이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며 바삐 노래를 부르며 날아다니던 와중에 딱딱 소리가 들려왔지요. 동행이 나를 멈춰 세우더니 손으로 딱따구리를 가리켰습니다. 나는 한눈에 딱따구리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연신 딱딱. 딱딱. 부리로 나무를 내리치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스웨덴어로 딱따구리를 설명하다 다시 영어로 알려주었습니다. 스웨덴어의 딱따구리도, 영어의 딱따구리도 알아듣지 못하는 나에게 그는 번역기를 켜서 더듬더듬 한국어로 딱따구리임을 알려주었지요. 스웨덴어로는 hackspett, 영어로는 Woodpecker. 왠지 우드페커는 딱따구리 같지가 않았어요. 딱딱. 꼭 된소리가 들어가야만 이 새의 이름이 완성되는 기분이었달까요. 스웨덴의 시골마을에서 만난 내 인생의 첫 딱따구리는 참 신비로웠습니다. 그전까지는 딱따구리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딱따구리를 생각지도 못했던 이 전 날들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번 여행에서, 이 한적한 산길에서 딱따구리를 다시 만난다면 조용히 길 한가운데에 앉아 높이 솟은 잣나무에 둥지를 만들고 있는 딱따구리를 목이 꺾이도록 올려다보려고 합니다. 딱딱. 딱딱. 딱딱 소리를 듣다가 이내 잠이 든다면, 그대로 그곳에서 밤을 보내도 좋겠지요.
나는 계속해서 길을 걷습니다. 가야 할 곳은 없지만 자꾸만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자리에 멈춰있는 나무들을 대신해 저라도 걸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테니까요. 콧잔등에 땀이 퐁퐁 솟아나면 손목에 감아두었던 고무줄로 머리를 질끈 묶고 잠깐 샛길로 빠져봅니다. 이 샛길 어딘가에 다래가 있을까요? 초여름이므로 다래가 있다고 하더라도 먹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건 나의 상상이니까 먹음직스러운 다래를 발견할 수도 있겠지요. 다래를 따 한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봅니다. 단맛이 입안에 가득하겠지요. 어릴 적에 딱 한번 다래를 먹어본 후로 정말 오랜만에 먹는 야생 다래입니다.
아주 오래전 추석이 오기 전, 가족들과 선산에 벌초를 하러 갔었습니다. 우리는 선산에 1년에 한 번, 벌초를 할 때만 갔었지요. 선산은 내가 살던 곳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후,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전쟁이 끝나고도 깊은 산속에서는 빨치산들이 활동을 했고, 밤에는 마을에 내려와 청년들을 잡아가기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에서 내려온 청년들은 경찰서에 끌려가 며칠 동안 매타작을 당해야 했습니다. 경찰서 마당에서 매타작을 당하던 청년들 속에는 내 할아버지도 있었습니다. 전쟁을 직접 겪은 할아버지는 함께 전쟁에 나간 친구들 대다수가 돌아오지 못한 그곳에 사는 것이 미안했었을까요, 아니면 조그마한 산골마을에서조차 좌우의 극한 대립 속에, 이념에 따라 편을 가르는 상황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결국 할아버지는, 어쩌면 조상 대대로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그 터전을 뒤로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왔습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잠들어있는 그곳을, 그들의 육신이 썩어 흙이 되고 돌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었을 그곳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가족들이 추석이면, 이제는 이름도 모르는 내 아버지의 할아버지, 내 할아버지의 할머니가 곳곳에 잠들어 있는 이곳으로 와서 그들의 무덤을 깨끗이 정리하고, 정성스레 음식을 올리는 이유입니다.
1년 전에 힘겹게 내놓았던 길들은 이제 모두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풀과 가시덤불, 억센 칡으로 뒤덮여 버렸습니다. 앞서 나가는 사람이 낫을 휘두르며 힘겹게 다시 길을 냅니다. 앞장서던 이가 힘들어하면 그 뒤를 따르던 이가 앞으로 나서 낫을 받아 들고 다시 길을 냅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 길을 줄지어 서서 한 사람씩 걸어갑니다. 조그만 저도 한 걸음 한 걸음 앞서가는 어른들을 놓칠세라 열심히 따라갑니다. 작은 아버지였는 지, 친척 아저씨였는 지, 누군가가 내게 다래 열매를 내밀었습니다. 낯선 열매에 나는 먹지 않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 야는 이 귀한 거를 왜 안 먹을라 그래. 이거 함 머봐라. 이게 얼마나 맛난 건지 알기는 아나?”
이내 어른들이 멈춰 서서 손바닥에 다래를 하나씩 받아 들고 함께 다래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기억나니껴? 우리 옛날에 이거 억수로 마이 먹었잖니껴. 그때사 먹을 게 있었니껴. 덜익은것도 막 따먹고 그랬잖니껴. 맛은 옛날보다 모해도 오래만에 먹으니께네 먹을만하니더.”
옛날보다 맛이 못하다는 다래를 입에 넣은 어른들의 표정은 어느새 고단함이 사라지고 꿈을 꾸는 듯했습니다. 꿈을 꾸는 듯한 맛이 나는 열매라니. 저도 가만히 다래를 입에 넣어봅니다. 어찌나 달콤하던지요. 아마 나도 아주 잠깐 달콤한 꿈을 꾸었겠지요.
입 안에 달큰한 다래향이 감돕니다. 어느새 나는 샛길에서 나와 다시 길을 걷습니다. 어디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계속 걷습니다. 나의 두 다리로 이 땅을 단단히 디딘 채 앞으로 걸어가는 일은 내가 이 세상에, 이 시간에 살아있음을 일깨워주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엄마의 자궁에서 나온 그 순간부터 내가 꿈꿔온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세상을 만나 목청껏 울부짖던 내가, 목도 가누지 못했던 내가, 열심히 엄마의 젖을 빨고, 힘껏 발버둥을 치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아빠의 손을 잡았던 그 모든 일들은 결국 홀로 걷기 위함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내가 처음 이 땅에 한 발, 한 발 위태롭게 내디뎠을 때, 나의 부모님은 무척 기뻐했을 테지요.
이 길 끝에는 조그마한 호수가 하나 있으면 좋겠습니다. 태초부터 존재해 온 그런 호수가 나온다면 나는 호숫가에 무릎을 세우고 가만히 앉겠습니다. 두 팔로 다리를 감싸 앉은 채로 가만히, 아주 작은 몸집으로 내 어머니의 자궁 속을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상상을 하겠지요. 이렇게 웅크린 채로 다시 어머니의 아늑한 자궁 속에 들어가 열 달을 보내는 상상을 말입니다. 애초에 나를 몸 안에 품은 채 세상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던 어머니의 품 속에서.
다시 안전하게.
평온하게.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존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