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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Oct 13. 2024

날씨 인간

위로가 되는 날씨가 있다는 것이 어찌나 다행인지!


나는 날씨 인간이다. 

나의 기분을 결정하는 많은 것들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날씨다. 어느 기상학자가 말하길 지구가 생겨난 후 단 하루도 같은 날씨인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나의 기분도 그렇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하루도 같은 기분이었던 날은 없었다. 매일 다른 날이었기에, 비슷한 날의 연속일지라도 매일 소소하게 다른 일이 생겨왔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날씨인 날에는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기분이 저 깊은 곳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욕 한번 하고 나면 어쩐지 견딜만하다.


내가 좋아하는 날씨는 파란 하늘 아래 저 먼산의 나무 하나까지도 다 보일정도의 투명한 공기에 반팔 티셔츠를 입었을 때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이다. 비가 내린 후 흙은 적당히 말라있고 아직은 단풍이 들지 않는 그런 날은 어떤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심호흡을 하면 별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좋은 날에 내게 생기는 일은 결코 나쁠 리가 없다는 듯이, 이토록 좋은 날에는 길을 가다 넘어져도 민망하지 않을 것만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면 아무 기대할 것이 없더라도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 매콤한 겨울을 몰아낸 그 포근함을, 나무에 새로 솟아나는 여린 잎을 보면 굳이 지켜낼 것이 없는 나는 올 한 해, 나를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할 수밖에 없다. 봄에 태어난 나는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봄을 좋아한다. 계절로써 봄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봄날씨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봄의 공기는 비릿하다. 새로이 돋아나는 이파리에서 나는 냄새인지, 얼었던 흙이 녹아가며 내는 것인지 봄의 공기는 비릿하다. 그 비릿함이 새 생명을 돋게 하고 새로 시작할 힘을 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는 가을이 와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여름 내내 나를 잠 못 들게 하던 습기 가득한 밤들이 끝나고, 물기 가득한 공기를 마셔서 내 몸속 어느 곳에 곰팡이가 피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게 하던 그런 불쾌한 여름이 끝나고 마침내 가을이 오면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나를 밖으로 내 보게 된다. 가을 산에 올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콧잔등에 맺힌 땀을 식혀줄 때의 서늘함에, 전날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시면 이내 기분 좋은 시원함이 내 목을 넘어 위장을 타고 내려가는 그 순간에 나는 이 날씨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가 세상을 떠났다. 노령견이기에, 이미 아픈 곳이 많았던 강아지이기에, 나는 매일 봄이에게 말했다. 내년 봄은 함께 보자고. 봄이 오면 또다시 봄이에게 말할 작정이었다. 내년 봄도 함께 보자고. 이름처럼 함께 봄을 보고 싶었는데 나의 봄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봄이 아니라 가을에 떠났다. 화장장 대기실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봄이의 털처럼 하얀 구름들이 떠다니는 와중에 우리 봄이의 영혼일 지도 모를 하얀 연기가 서늘한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니 어째서인지 위로가 되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 어쩌면 그녀의 짧은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 길에서 나를 만난 것이 그 조그마한 강아지에게 일어난 가장 큰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품에 안겨 외롭지 않게 떠난 것이 나의 강아지에게는 가장 평온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안도가 되었다. 


내가 너무 슬퍼하지 않게 내가 좋아하는 날에 떠난 강아지. 

그날이 만약 내가 좋아하는 날씨가 아니었다면, 그날 그토록 선명한 파란 하늘이 없었다면, 내 강아지를 닮은 구름이 떠다니지 않았다면, 그날 공기가 서늘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내 강아지의 죽음에 무너지지는 않았을까. 한 줌도 되지 않는 내 강아지의 유골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토록 화창한 날, 청명한 날, 눈이 부신 날 널 보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날씨 인간이다. 슬픈 날에도 날씨가 좋다면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고 눈물을 닦아낼 수 있다. 파란 하늘 아래 조용조용 걷다 보면 나의 슬픔은 이내 옅어지고 화는 사그라들고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얼마나 다행인가. 나란 인간이 날씨 하나로, 고작 날씨로 괜찮아진다는 것이. 나를 괜찮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 날씨라는 사실이.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것이 인간을 어떻게든 살아가게 한다는 게.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있다면 가을 날씨가 아닐까. 나를 슬픔에서 건져내고, 나를 괜찮은 사람이 되게 하는 존재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나를 실존하게 하는 것이. 


그러므로 내가 날씨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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