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가 달아지면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일까

여전히 소주는 쓰지만

by 모단걸



“야 인마. 소주가 달아야 어른이 되는 거야” 까까머리 복학생 선배가 소주를 홀짝일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는 나를 보다 못해 한마디를 했다. “놀고 있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이죽거렸다. 옆자리에 있던 동기 녀석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방금 나에게 한마디를 했던 선배는 본인의 말에 본인이 취한 양 내 동기들을 향해 “야! 선배가 이렇게 인생의 주옥같은 이야길 하는데 노트 안 꺼내? 안 적어?”라며 연신 어깨를 들썩였다. 소주가 달아야 어른이 된다는 선배의 말에 이죽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쓴 소주 맛이 내게는 결코 달아질 수 없는, 가슴 졸이다 끝나버린 내 첫사랑의 그 쓴 기억과 닿아있기 때문이었을까. 스무 살 이후, 지금까지 어쩌다 ‘오늘은 소주가 참 달다’는 말을 종종 들어봤다. 아직까지도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은 이미 어른이고 나는 여전히 소주가 달 수도 있다는 그 어른의 맛을 모르는 애송이는 아닌가 하며 괜한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나에게 소주가 달아진다는 것은, 누군가가 소주에 만취하여 쓴맛과 단맛의 그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시점에 우연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의미 없이 내뱉은 표현은 아니었을까? 다른 누군가가 우연히 그 의미 없는 말을 듣고 오? 느낌 있는데? 하며 써먹었던 것이고, 그것을 들은 또 다른 누군가가 흉내 내고, 이렇게 우연과 우연이 만나 우연히 퍼지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일 뿐이다.


정말 소주가 달아지는 때가 올까? 그러면 나는 더 이상 술맛도 모르는 애송이가 아니라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일까?


수능을 백일 앞둔 날, 나는 백일주를 반드시 마셔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던 때이므로 온갖 근거 없는 속설들조차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잡고 싶었다. 합법적으로 술을 구할 수 없어 불안하던 나에게 때마침 집에서 술 한 잔 하시던 아빠와 아빠 친구의 배려 아닌 배려로 막걸리 한잔을 들이켤 수 있었다. 지독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 지독한 맛 때문에 다 마시지 않으면 수능에서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그 지독한 맛을 이겨내게 했다. 물론 수능을 잘 보지 못했으므로 이 근거 없는 속설은 그저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을 수능이 끝난 후에 알게 되었다.


스무 살, 캠퍼스에는 온통 술이 넘쳐났다. 당시 나는 술을 지독히도 사랑하는 손 씨의 피가 흐른다는 것에 나 또한 술을 잘 마시리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물론 내 몸안엔 술을 마시는 못하는 외가 쪽의 피도 반은 흐르고 있음 따위는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사발식(?) 자리에서 선배들이 내 사발에 가득 부어주는 막걸리와 소주를 찡그린 얼굴로 들이켰다. 곧이어 귀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고, 숨이 가빠졌고, 온몸이 빨개졌으며, 눈 앞의 풍경이 어항을 통해서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크거나, 작거나, 둥글거나 하는 식으로 이상하게 펼쳐졌다. 그 느낌은 매우 불쾌한 것이어서 곧장 화장실로 자리를 피했다. 화장실 입구에는 샌님처럼 생긴 남자 동기가 쪼그려 앉아서 연신 술이 섞인 한숨을 토해내고 있었고, 나보다 상태가 나빠보이던 그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물어보았는데 그가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술에 취한 내 얼굴을 보고 토한 것이리라. 어쨌든 다 토한 그를 부축하면서 더 이상 마시지 말라고 조언을 했는데 그는 그럴 수 없다며 다시 술잔을 받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를 돌아보던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빠가 만취했을 때 내가 소름 끼쳐했던 그 눈빛을 그에게서 본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아빠가 만취해서 들어오는 날이면 자고 있던 우리 세 자매를 깨워 본인의 살아온 일대기를 인기 없는 역사 선생님처럼 읊어주곤 했다. 벌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초점 잃은 눈빛으로, 우리 세 자매를 노려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본인의 불우했던 과거를, 부모를 잘못 만나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던 삶의 고단함을, 그도 한때는 꿈을 꾸던 청년이었음에도 본인의 어깨에 놓인 책임을 차마 피하지 못하고 짊어지고 있는 그것의 무게감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해서라도 끝까지 공부를 시켜주리라는 본인의 다짐을, 그러니 어디에서도 부모 욕을 먹게 만드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곤 했다. 아마 그때의 아빠는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했으리라. 인생의 피로함을 술로 달래고, 만취해서 그 모든 부담을 잠시 잠깐이라도 잊고 싶어 했던 그를 그때의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아빠가 술에 취해서 벌건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그 시선이 몸서리치게도 싫었다. 어린 나는 다짐했었다. 절대 술을 마시는 남자는 만나지 않으리라. 그리고 사발식이 있던 그날, 잊고 있던 그 다짐이 떠올랐다. 술 취한 아빠의 눈과 똑같은 눈빛을 입은 동기를 보고서야.


나에게 술이란 항상 불쾌한 그 무엇이었다.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그 감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면 항상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고, 숨은 가빠왔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온몸에 붉은 반점이 퍼져나갔다. 몹시 불쾌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미있는 일은 술자리에서 벌어졌고 언제나처럼 재미있는 일을 놓치기 싫어하는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 술 마신 사람처럼 노는 법을 택했다. 이십 대의 나는 그랬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술을 마시고 하는 미친 짓을 곧잘 했고, 술자리에서 특히 빛났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제정신으로도 미친 듯이 노는 것을 신기해했고, 사람들은 곧잘 ‘완전 또라이’ 라거나 ‘이 구역의 미친애’이라는 천박한 말로 나를 표현하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었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성공한 여성들은 최선을 다해 본인이 맡은 임무를 완수하고 집에 와서 와인 한잔이나,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지 않나. 나도 그러고 싶었다. 서른이 지나고서야 나는 혼술을 시도했다. 내 몸 안에는 술을 지독히도 사랑하는 손 씨의 피도 흐르지만 그에 못지않게 허세도 흘렀다. 싼 와인은 마시고 싶지 않았다. 맥주도 국내산은 마시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왜인지 폼나 보이지 않으니까. 그때의 나에게는 술을 사랑하는 손 씨의 피와 술을 잘 못하는 우 씨의 피보다 허세가 더 진하게 흘렀을지도 모른다. 주말이면 집 근처 홈플러스에서 싸지 않은 와인을 한 병 사고, 세계맥주를 4캔에 만원, 혹은 운 좋은 날엔 6캔을 만원에 사서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집에 돌아와 낑낑대며 와인을 땄다. 그럴 때는 치즈도 안주로 곁들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드라마에서 보던 성공한 여성들처럼 세팅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이럴 때는 반드시 오디오를 켰다.) 홀짝이면 여전히 나는 불쾌했다. 귀에선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고,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아팠다. 아무리 드라마에서 보던 모습으로 세팅을 하고 혼술을 시도해도 나는 여전히 술을 못 마시는 나였다. 소주가 달 수도 있다는 그 어른의 맛을 느껴보기엔 나의 신체적 한계가 분명해 보였다. 달다는 와인을 마셔도, 도수가 높지 않고 과일향이 매력이라는 맥주를 마셔도 나는 여전히 술이 썼고, 술을 마신 후엔 불쾌했다. 나는 여전히 술맛을 모르는 애송이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얼마 전, 친구들과 송년 모임에서 새벽 세시까지 술을 마셨다. 예전처럼 술을 마시지 않고 술 취한 사람처럼 술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정말 세 시까지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셨다. 소주의 쓴맛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누군가가 쓴맛을 느끼지 못하게 소주를 즐길 수 있는 법을 알아왔다며 제조를 해주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깔라만시 토닉워터와 소주를 5대 5로 섞는 것이었다. 소주의 쓴 맛을 덮을 수 있는 게 과연 있기나 한 걸까 의심을 하며 한잔을 마셨는데, 유레카! 소주가 달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소주를 마시고 맛있다는 표현을 했고, 그날 이성을 잃은 나는 여전히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서 울리고, 숨이 가쁘고, 온몸이 빨개진 채로 친구들과 클럽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과 노래방에서 H.O.T 의 캔디를 비롯한 90년대 댄스곡에 내 몸을 던졌으며, 노래방에서 나와서는 서로의 안전귀가를 빌어주며 깔끔하게 헤어지고는 친구들과 근처 포장마차에서 우동과 라면, 짜파게티를 먹으며 깔라만시 소주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도 나는 소주의 단 맛을 모른다. 여전히 나에게는 소주가 쓰다. 그러나 이제는 그 쓴 소주를 쓰지 않게 마시는 법을 안다. 굳이 소주의 단 맛을 모른대도 쓴 소주를 달게 마시는 법을 알게 된 지금의 나는 반쯤은 어른이 된 것일까. 아니면 애송이 티를 반 정도 벗겨낸 것일까. 쓴 소주조차 달게 느껴지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어른이 아니라 쓰기만 한 소주에 무언가를 첨가하여 인공일지라도 단맛을 느끼며 고단한 삶일지라도 유쾌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즐기는 어른이 된 것은 아닐까.




그나저나 정말 소주가 달 수 있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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