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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시토리 Jun 30. 2016

잡채의 추억

잔치, 명절, 그리고 '엄마'

한국인의 잔칫상과 명절상에는 반드시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잡채. '잡-' 이라는 접두사 때문인지 그닥 정갈하지 못한 비쥬얼 때문인지, 어렸을 때 부터 나는 잡채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상 위에 있으면 몇 젓가락 거들고, 특별히 생각나지도, 해먹어야 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은 음식이었다.


사실 잡채는, 예의 모든 한식이 그렇듯이, 영양학적으로 훌륭한 음식이다. 간장과 설탕, 참기름을 머금은 고소한 당면은 사실상 0칼로리에 가까운 다이어트 식품이고, 사이사이 아삭한 야채들은 부족한 비타민 및 철분을 채워준다. 한 접시만 먹어도 포만감이 가득하고, 각종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다.  


정성도 많이 들어간다. 썰고 볶고 무치고가 과정의 전부 이지만, 각종 야채 - 으레 다섯가지 이상 - 을 일정한 너비로 써는데만 삼십 분, 당면을 정성스럽게 고르고, 불리고, 양념하는 데만 삼십 분이다. 어느 누가 쌀 한 톨을 만드는 데 여든여덟번의 손길이 간다하여 쌀 미(米)라고 하는데, 한 접시의 잡채를 만드는데도 가히 그정도의 손길이 간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잡채를 해주셨다. 잔치, 명절, 상경한 다음 가끔 고향집에 내려가면 어김없이 상 위에 잡채가 올려져 있었다. 나는 늘 그랬듯이 당면만 몇 젓가락 들고 식탁의 육류를 탐했다. 다 큰 여식이 상을 물리고 나면, 잡채를 드시는 분은 정성을 들여 만든 어머니의 몫이었다.


기혼자로써 처음 맞는 설. 시댁에 무슨 음식을 해갈까 고민하다가 잡채를 선택했다. 서툰 칼질과 요리실력 탓에 만드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여든여덟번의 손길로 잡채를 만드며, 문득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멀리서 오는 딸에게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하는 마음을 난 이제서야 안 것이다.


처음으로 만들어본 잡채. 10인분을 만든다는 건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당면은 꼭꼭 씹어먹어야 된다는데, 자꾸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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