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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시토리 Dec 26. 2018

별도 없는 한밤에 | 스티븐 킹

누구나 괴물로 변할 수 있는, 그 어두운 밤에 대한 이야기


한동안 ‘독서 가뭄’에 시달렸다. 줄어든 독서량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익숙한 문장만 읽고 비슷한 이야기만 보고 싶어하는 독서 편식이 생겨 진득하게 작품 정주행을 하고픈 작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번 읽으면 그냥 ‘괜찮네’ 하고 다른 작품을 찾지 않지 않고 또 다른 작품을 기웃거리는 독서 유목민 시절을 몇 년째 지속하던 와중, 자주 가던 여행 카페에서 ‘여름 선베드에 누워서 읽기 완벽한 책’으로 스티븐 킹의 ‘별도 없는 한밤에’가 선정된 걸 보았다. 사실 이런 한번 무섭고 슥- 지나치는 스릴러류를 많이 좋아하진 않은지라 넘기려 했는데, 최근 재미나게 본 미드의 원작자가 책의 작가인 걸 보고, “괜찮겠는데?” 라는 생각에 책을 빌렸다가, 그만 밤이 깊어지도록 책을 놓지 못하고 말았다.  


스티븐 킹은 확실히 하루키와 같은 ‘천재 작가’와는 다르다. 본디 선생님이었고, 본업을 겸하면서 오랫동안 ‘엉덩이 힘’으로 집필을 한 경력이 꽤 긴지라 소설의 기승전결이 정확하다. 눈에 그려지는 듯한 디테일한 묘사법, 메타포 하나로 소설 전반에 적당히 양념을 치고, 이때다 싶을 때면 반전이 정확하게 훅, 치고 들어와 독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킹의 소설을 읽을때면 노련한 운전수가 이끄는 청룡열차를 타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지루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의 반전은 예측 가능하지만 어떤 형태로 오는지 알 길이 없으며, 소설 전반을 이끄는 공포 메타포는 너무나도 친숙한 물품이라, 소설을 읽고 난 뒤 문득문득, 평범한 사물이나 동물에 불과한 메타포를 볼 때면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어릴 적 보고 마는 팽이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일상에 있는 사물이다. 며칠 전에 본 단편 소설의 메타포는 무지개색 축이 달린 어린아이용 모자였는데, 구글 직원이 자주 쓰는 거라 이후 TV나 인터넷 어디선가 구글 직원을 마주칠 때마다 섬뜻, 공포심에 휩싸이곤 했다) 그야말로 ‘먹어봤자 아는 맛’의 음식이지만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은’ 음식 같은 소설이다.




‘별도 없는 한밤에’는 복수에 관한 4가지 중단편 이야기다. 복수극이라고 하지만, 평범한 인간 군상을 비춘 이야기라는 표현이 보다 정확한 듯 하다. 오히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영민하게 일깨워주고 속삭여준다는 점에서 공포스럽고, 섬뜩한 소설이다.  


네 가지 단편이 모두 주옥같이 흥미진진하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소설은 네 번째 단편 <행복한 결혼생활>이었다. 소설의 화자인 아내는, 흔히 말하는 술담배여자도박 문제 전혀 없이, 남편과 남부럽지 않는 결혼 생활을 26년동안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양말을 개키며 짜증을 낸다. 그 양말을 계기로 결혼 생활 내내 자신의 짜증을 인내심있게 받아주는 남편이 끔찍한 연쇄살인마였다는 걸 알게 된다. 아내가 눈치챈 걸 알고 남편은 26년간 보여왔던 성실함과 친절함으로 그녀가 자신에게 도망가지 못하도록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이 상황에 출구 없음을 알고, 또 여태껏 문제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해 왔기에 아내는 남편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지만, 동전 수집광인 남편이 평생을 찾아 헤매던 ‘귀한 컬렉션 동전’을 찾는 날 기쁨에 겨워 드물게 만취한 남편을 밀어 죽이고 만다.  


흔히들 결혼생활은 마라톤이 아닌 매일의 단거리 경주를 지속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 만큼 매일매일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결혼의 행복을 이해하는 척도라는 거다. 소설 속 부부생활을 면밀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기에 이 부부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다라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20여년동안 평화로웠다는 점에서는 순탄한 결혼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아내가 남편을 ‘대승적 차원’에서 용서를 하고 결혼생활을 유지 했다면, 행복한 결혼생활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20여년간 별 탈이 없었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모든 허물을 덮어 줄 수 있을 것일까? 그것이 과연 행복을 영위하는 길일까? 갓 ‘유부클럽’ 리그에 들어온 사람으로‘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 까지 서로를 영원히 바라보며…’ 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했다. (이 자리를 빌어 말하자면, 나와 남편의 매일 단거리전은 아직까진 평화롭다. 어느 날은 느리게 가고, 가끔 의견 차이로 잠시간 따로 뛰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인삼각의 마음으로 잘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복수극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의 숨통을 끊어놓을만한 목적은 이해는 가지만, 그 후의 마음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과연 복수로 그들의 마음은 후련해졌을까? 행복해졌을까? 소설의 메인 디쉬로 숨막히는 복수 장면을 선사한 킹은, 이후의 이들의 삶을 이전과 다를 것이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라는 설명하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들의 절망감을 마무리 디저트로 곁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복수를 하는 과정이  밤같았다면, 복수 이후의 삶은 빛조차도 없는 어둠, 영원히 아침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그야 말로 ‘별도 없는 한밤’을 걷는 기분이지 않을까.  


‘살인자도 때로는 할머니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인물’이라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었다는 킹의 말처럼, 누구라도 살인자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고 우리 모두 새까만 어둠과 같은 비밀스러운 욕망을 가진 이들이라는 걸 새삼 일깨워준 소설이었다. 꽤 늦게 접한 스티븐 킹이지만 여느 스릴러 처럼 이번엔 그냥 지나치진 않을 것 같다. 오아시스가 해체한 해 처음 접한 오아시스의 노래가 지금까지도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것처럼, 한동안 스티븐 킹 소설로 나의 독서 가뭄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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