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심리노트

chapter. 18

by 글쓰는 몽상가 LEE


* [심심한 심리노트]는 겹겹이 쌓인 마음의 깊이를 심심(甚深)하게 들여다보고, 일상에서 심심(心心)하게 스치는 감정 또는 사색을 담는 에세이입니다. 주로 심리를 주제로 한 영화 혹은 책 등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어떠한 울림을 받았는지 기록하고자 합니다.


최대한 영화 혹은 책 등 작품에 대한 줄거리나 설명은 간략히 할 예정이지만 일부 내용이 스포가 될 수도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Page. 36


[INTRO]


오늘은 어떤 감정을 강하게 끌어올리는 음악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변화를 조용히 깨닫게 만드는 음악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바로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다. 이 음악은 시작부터 부드럽다.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이미 도착해 있는 상태처럼 들린다. 밝고 가벼운 선율이 펼쳐지는 순간 우리는 특별한 설명 없이도 하나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조금 따뜻해진 공기와 햇빛이 길어지는 오후 그리고 이유 없이 가벼워진 마음. 이 음악은 어떤 사건을 말하기보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의 감각'을 그대로 건네주는 듯 하다.

qweqwe.png
제목 없음.png
출처: 구글[비발디의 사계 - 봄 악보], [비발디 초상화]


*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

비발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으며 사제로 서품을 받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미사를 자주 집전하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음악 교육과 작곡에 집중하게 된다. 그는 고아 소녀들을 위한 음악 교육 기관인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수많은 협주곡을 작곡했다. 특히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한 협주곡에서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주었고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음악적 시도를 이어갔다. 비발디의 음악은 선명하고 직관적이다. 복잡한 구조보다는 분명한 리듬과 대비 그리고 생생한 이미지 전달에 집중한다.


그의 대표작인 [사계]는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모습을 음악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사랑받는 클래식 곡 중 하나로 남아 있다.






Page. 37


[작품에 대하여]


비발디 - 사계 中 '봄' :: 베르사유 궁전 왕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출처: 유튜브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개의 협주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각 곡은 하나의 계절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단순히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 그 계절 안에서 일어나는 장면과 감각들을 구체적으로 담아낸다.


[봄]은 네 개의 계절 중에서도 가장 가볍고 밝은 방향으로 열리는 곡이다. '봄'의 1악장은 경쾌한 리듬으로 시작된다. 이 곡에서 인상적인 점은 음악이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발디는 이 작품에 짧은 시를 함께 남겼고 그 안에는 새의 지저귐, 시냇물, 봄바람 같은 장면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우리는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빠르게 움직이는 바이올린은 새의 울음처럼 들리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선율은 흐르는 물처럼 이어진다. 음악은 계속해서 밝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그 안에는 과장된 감정이 없다. 오히려 일정한 리듬과 반복 속에서 '괜찮아지고 있다'는 감각이 조금씩 쌓여간다. 우리는 종종 감정이 뚜렷한 계기로 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이 있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어제와는 조금 다른 상태.


이 음악은 그 미묘한 변화를 닮아 있다. 처음부터 극적으로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리듬과 반복이 쌓이면서 분위기를 바꿔놓는다.






'봄'을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감정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풀리는 것에 가깝다는 것과

굳어 있던 마음이 조금 느슨해지고 긴장하고 있던 감각이 천천히 열리는 과정과 같다는 것.

etienne-girardet-KzTuBks7IWc-unsplash (1).jpg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