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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담 Sep 07. 2017

두려움의 위에 서는 일

서핑과 사업의 미묘한 상관관계에 대하여

 작년 여름, 서핑에 도전하여 이제 겨우 7번 정도 여기저기에서 어설프게 해봤을 뿐이니 아직 서퍼라는 소리를 듣는 일은 소원하게만 느껴진다. 

 5년 전, 처음 발리에 갔을 때 블루포인트 베이의 절벽 사이로 뛰어드는 구릿빛의 서퍼들을 보고는 언젠가 나도 이 바다에서 서핑을 해봐야겠다며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그 버킷리스트 위에 줄을 그을 수 있었다는 점은 무척이나 뿌듯하다. 물론 그들처럼 몸을 만들어 보겠다는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는 아직 못 지웠다. 여하간 서핑을 하게 된 건 좋았으나 문제는 사전에 충분한 정보 수집 없이 무턱대고 강습을 예약 한턱에 발리의 섬 중 하나인 렘봉안에서 첫 서핑 강습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렘봉안의 파도는 초보에겐 너무 거칠었다. 해변의 파도는 너무 잔잔해서 이곳에서는 보트를 타고 나가 서핑을 배운다. 해변에 겨우 몇 백 미터만 떨어졌을 뿐인데 파도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무거워 보이는 보트도 엄청나게 출렁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날 나는 처음으로 바다가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근 건 수년 만의 일이었지만 나름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배웠다고, 물이 무서워지는 순간이 올 것이라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매년 여름이면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던 피서객이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었다는 뉴스가 나오지만 대단히 비현실적이고 나와는 거리가 먼 일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기억 속 한국의 파도는 공포나 두려움을 주기에는 언제나 잔잔했다.

렘봉안 해변의 파도는 잔잔해서 서핑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보트에서 뛰어들기 전 인스트럭터에게 물어보니 수심은 20미터 정도라고 한다. 그러다가 보트가 멈추더니 갑자기 뛰어들라고 한다. '별일 있겠어?' 라며 별생각 없이 뛰어들었는데 순식간에 몸은 수면 아래로 잠기고, 보드가 머리 위로 가서 시작부터 물을 먹어버렸다. 겨우 발버둥 치며 보드를 부여잡고, 보드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파도는 가만히 떠있기도 힘들 정도로 거칠었다. 올라갔다 싶으면 울렁거린다 싶으면서 보드가 뒤집어졌다. 겨우 떠있는 게 익숙해질 때 즈음 인스트럭터가 바로 서핑을 시도하게 했는데 파도와 방향만 맞으면 페들링을 하지 않아도 거친 파도는 보드를 붕 띄워서는 엄청난 속도로 날려버리곤 했다. 일어서기는커녕 이대로 보드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을 가지게 하는 속도였다. 일어서려다 실패하면 파도 속에서 최대 3초 정도 발버둥 쳐야 수면 위로 겨우 올라올 수 있었고, 처음으로 정말 이러다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제대로 서기는커녕 기마자세로 일어섰다가 1초 만에 바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한계였다.


 그래서 서핑은 나에게 두려움 위에 서는 일이 되어버렸다.

첫 경험부터 거친 파도에 혼쭐이 난 터에 덜컥 겁이 나버렸다. 나와 아내는 렘봉안에서 스미냑으로 돌아온 상태였고, 아내는 서핑을 하기에는 많이 지쳐있었다.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대로 서핑 비슷한 것도 해보지 못한 채 발리를 떠나기는 싫었고, 혼자 꾸따 비치의 서핑 강습소를 찾아서는 예약을 했다. 아내는 혼자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홀로 꾸따 비치에서 강습을 받았는데 꾸따 비치의 파도는 나중에 생각해보면 꽤나 잔잔했지만 렘봉안에서의 기억 때문인지 두려움이 앞섰다. 아무리 잔잔해도 태평양 파도의 높이는 사람을 삼키기에 충분한 높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번 물을 먹고 나니 파도가 없을 때에는 서있으면 머리가 수면 위로 간시히 올라올 수 있는 수준의 수위란 걸 알 수 있었다. 순간 '여기서는 적어도 죽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초보인 내가 물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계속해서 파도를 향해 달려가며 시도를 했다. 친절한 꾸따 비치의 파도는 보드를 부드럽고, 편안하게 밀어줬고, 한 시간쯤이 지나자 능숙하지는 않더라도 테이크 오프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후 올해 초에 또 한 번 발리에 가서 서핑을 하고, 올여름에는 양양을 방문하여 서핑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몇 번을 하다 보니 바다마다 파도의 특징은 다르지만 서핑을 즐기는 데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그리고 그 요소들은 사업과 미묘하게 닮아있다.

처음으로 테이크 오프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꾸따비치

 첫째로 파도가 와야 파도를 탈 수 있다는 점이다. 작년까지 회사 생활을 하다가 올해부터 콰잇어캐릭터로 활동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목표지만 영상을 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서비스업이라 프로젝트가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서핑을 하려면 일단 좋은 파도를 찾아서 기다리고, 또 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저 타야 한다. 영상을 제작하려면 좋은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를 찾거나 기다리고, 계약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저 만들어야 한다.


 둘째는 두려움을 반드시 수반한다는 것이다. 회사원으로서 또 개인사업자로서 일을 해 본 결과 각각 저마다의 어려움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사업을 하는 일이 회사를 다니는 일 보다 훨씬 힘들다고 느껴진다. 그 이유는 바로 불확실성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이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반복되는 경향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해진다는 점이 있다. 하지만 사업을 하는 일은 비록 1인 기업일지라도 불확실성 투성이다. 금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프로젝트의 진행에 있어서도 나와 관계없이 결정이 나버리는 경우도 많다. 올해만 하더라도 여러 시즌의 웹드라마를 제작할 계획이었으나 제작사의 사정으로 두 번째 시즌을 앞두고 중단하게 되었다. 10여 년간 영상 감독으로 일하면서 이런 일은 수없이 많았지만 특히 프리랜서로서 프로젝트가 캔슬되는 일, 특히 그 프로젝트가 애정을 가졌던 것이라면 꽤나 큰 타격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타격이 반복되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일에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29살에 처음 QAC Visual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를 등록하고 영상을 시작했다. 그때에는 정말 모르는 것이 많았고, 모든 것이 처음 시도하는 것들 투성이었지만 두려움보다 젊음의 무모함이 더 앞섰기에 무엇이든 달려들어서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들이 반복되고, 크고 작은 실패라고 생각하게 되는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마음은 여려지고, 무모했던 청년의 열정은 점차 사그라든다. 그리고 어는 순간에는 두려움에 쫓겨 행동하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두려움은 도망쳐서도 안되고, 너무 맞서서 애써 부정하려 해도 안된다. 마치 파도로부터 도망쳐서도 안되고, 파도의 흐름을 부정해서도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이겨낼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여기서 세 번째 서핑과 사업의 공통점이 등장한다.


셋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요소로 시청률을 올리고, 나 또한 꾸준히 보고 있지만 훌륭한 이야기이거나 시청자에게 좋은 가치를 전달하는 드라마 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난 시즌에선가 유독 기억에 남는 대사가 하나 있었는데 존 스노우가 죽었다 되살아 났을 때 다보스 경이 한말이다. 배반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나서길 두려워하는 그에게 하는 말이 있다.


'나가서 또 실패해라. 존 스노우. 넌 아직 젊으니까 또 실패해야 한다. 어서 나가서 또 실패해라'

대강 이런 식의 대사였던 것 같다. 사실 이 대사는 작년에 내가 퇴사를 결심하게 한 수많은 이유 중 하나다. 나의 경우 '서핑은 어차피 물에 빠지는 일에 관한 것이다.'라는 작정으로 달려들었을 때 몸이 파도 위에 서기 시작했다. 두려움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갔을 때 비로소 파도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불확실성으로 인한 두려움은 사업을 하는 동안에, 또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아마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존재다. 하지만 두려움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잊는 것은 자기 최면일 뿐이다. 두려움 자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파도를 타듯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그저 끊임없이 시도하고, 그 시도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때로 결과는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다.

 파도로부터 도망쳐서는 파도를 탈 수가 없다. 물속으로 고꾸라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파도를 향해 달려 나갈 때서야 파도를 탈 수가 있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프로젝트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꾸라지는 일, 또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일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대상이란 것을 받아 들어야 한다. 그런 일을 어떻게든 계속해서 일어나게 마련이다.


두 번째로 갔을 때는 꽤나 여유로와 졌다.


 두려움에 쫓겨서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행동하는 일은 나를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피곤하게 만든다. 일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두려움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행동을 하는 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두려움에 의해 행동을 하면 쉽게 타인에게 화를 내게 된다. 스스로 그 의사결정이나 행동의 정당성을 찾을 수 없으니 누군가를 닦달하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려 한다. 그런데 의외로 어렸을 때부터 그런 식의 행동에 많이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 학교에서 낙오될 것이 두려워 공부를 해야 하고, 대학을 가야 하고, 세상에서 낙오자가 될 것이 두려워 좋은 회사를 다녀야 하고, 그럴듯해 보이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평생 쫓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쩌면 단지 사업에 관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일이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서핑에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두려움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나를 잠식하려한다. 이 글이 재미없지는 않을까? 아무도 안 읽으면 어쩌지?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데 이렇게 글이나 써도 괜찮은 건가? 그럴수록 처음 내가 왜 스토리텔러가 되려 했었느지 그중에서도 영상으로 만들려고 했었으지를 기억하고, 온 정신을 거기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두려움은 어느새 나를 밀어주는 파도가 되어 내 발밑을 흐를 뿐이다. 아무리 높은 파도라 할지라도 해변에 와서는 결국 사라지게 돼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렇게 두려움 위에서 서서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내가 가진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내 인생이 나의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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