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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다정 Dec 26. 2020

2020년에 알게 된 것들

얼마 전 회사에서 Year-end 회고를 했는데 경험이 정말 좋았다. 올해 성과를 정리하고 디자이너로서 내년엔 어디에 방점을 두고 성장해나갈지 공유했다. 그러고 나니 커리어 외적인 경험들도 한 번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의 해는 나에게 어느 해보다도 촘촘한 연결의 힘을 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회사 밖 상호 작용이 많은 해였고 그 속에선 늘 배움이 따라왔다.


1. 사이드 커리어

올해 두 가지 커뮤니티 활동을 했다. 넷플연가라는 넷플릭스 / 영화 기반 커뮤니티와 FDSC라는 여성 디자이너 커뮤니티다. 덕분에 회사에선 디지털 프로덕트를 만드는 UX/UI 디자이너지만 바깥에선 모임 호스트, 팟캐스트 작가, 강연가까지 다양한 페르소나를 경험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외부 활동이 본업에 영향을 끼칠까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본업의 퍼포먼스를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해 늘 스케줄이나 컨디션을 예민하게 관리하다 보니 셀프 매니징 능력이 길러졌다.


각각의 활동들은 서로 무관한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그 점들이 연결 되기도 했다. 회사에서 만들었던 UX 디자인 프레임워크를 영화 커뮤니티에서 커뮤니케이션 툴로 활용하기도 했고, 영화 커뮤니티에서 호스트를 하며 키운 순발력은 추후 다른 강연에서 발휘할 수 있었다. 또, 회사 밖 활동으로 쌓인 자신감은 회사 안으로도 이어졌다. 그리고 진짜 커리어처럼 수입도 있었는데 귀여운 수준이지만 올해 사이드 프로젝트로 번 돈이 한 달 월급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였다.


내년에도 조절만 잘 한다면 이렇게 사이드 프로젝트들을 연결해가면서 사이드 커리어를 충분히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이런식으로 각 점과 점을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조금이라도 있다면 바로 시작해보길 추천한다!


넷플연가 시즌3 모임 중


2. 유튜브 알고리즘보다 휴먼 큐레이션

넷플릭스에서 <소셜 딜레마>라는 다큐멘터리를 아주 재밌게 봤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사실 나에게 맞춘 추천을 해주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했던 걸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이고, 결국은 사회 양극화를 더 심하게 한다는 내용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직 안 봤다면 강추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을 만날 때 외에는 새로운 것을 주입할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넷플연가 커뮤니티가 좋았던 게 아무래도 넷플릭스 모임이다 보니 '콘텐츠 잘 알' 분들이 많았고 넷플릭스 외에도 그분들이 추천해주시는 책, 유튜브 채널, 광고 등 매번 새로운 콘텐츠를 흡수할 수 있었다. 역시 세상엔 내가 모르는 재밌는 게 넘쳐 난다.


연차가 쌓이고 한 분야에 대한 도메인이 깊어질수록 나를 구성하는 키워드는 디자이너, 스타트업, IT와 같이 또렷해진다. 나라는 직업인의 캐릭터가 쌓이는 것은 좋지만 한 편으론 갇히게 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 휴먼 큐레이션을 주기적으로 주입하면 좋다는 점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활용해야겠다.



3. 쿨한 연대의 경험

올해 FDSC(Feminist Designer Social Club)의 회원으로 이런저런 활동에 참여했다. 봄부터 가을까진 디자인FM이라는 팟캐스트 제작팀에 합류하여 대본을 썼다. 디자인FM은 여성 디자이너들을 초대해 그들의 일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콘텐츠다. 디자인FM을 만들며 서체, 인터렉티브, 1인 스튜디오, 출판, 에이전시 등 다양한 키워드를 가진 디자이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예술 분야 인기차트 진입한 디자인FM
내년엔 시즌3로 찾아 갑니다 (속닥)


컨퍼런스인 FDSC STAGE에 연사로 섰고, 다양한 여성 디자이너의 글을 모아 출판한 FDSC.txt 창간호넷플릭스 속 디자인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여성 디자이너들의 목소리가 ‘콘텐츠가 됐을 때’의 영향력을 체감했다. 그리고 여성 디자이너만이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이 모였을 때 나오는 엄청난 시너지를 볼 수 있었다.


FDSC 활동은 내게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의 역량을 확장해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좋은 콘텐츠를 고르는 것부터- 그것에 가장 알맞은 포장을 골라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세상에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을 함께하며 이런 일은 디자이너가 아니면 할 수 없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회사 다니는 디자이너'가 아니게 된다면 이런식으로 내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면 되겠구나하고 레퍼런스로 삼았다.


FDSC STAGE 스텝+연사자 단체 사진 (사진 : 스튜디오 멜란지)


4. 관계의 회색존 활용하기

여러 활동을 활발하게 했지만 사실 난 '인싸' 스타일은 아니다. 관계에선 소심하게도 ‘나를 알아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감사하게도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일들이 많았고, 나도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관계에 대한 생각을 확장했다.


꼭 '진짜 친해지지' 않아도 느슨하게 연결된 관계가 큰 자산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관계의 회색존을 사실은 가능성의 무지갯빛일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또, 회색을 무지갯빛으로 만드는 네트워킹의 기술은 명함을 교환하는 것이 아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5. 모든 것은 근육 드리븐

여러 일들을 동시에 또 책임감 있게 할 수 있었던 건 체력 덕분이었다. 올해 체력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 체력이 중요하다는 건 진리지만서도 일상의 변화를 직접 겪고 나니 더욱 운동은 선택이 아니구나 싶다.


체력이 좋아지면 긍정형 인간이 된다. 지금 상황이 힘들어도 금방 회복할 거라는 믿음이 항상 어느 정도 차있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여기서 일이란 건 회사 일 외에도 사람 만나는 일, 집안일, 노는 일까지(중요) 포함한다. 에너지 재충전에 써야 하는 시간이 짧아지니 나머지 시간을 더 야무지게 쓸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운동을 빼먹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캘린더에 운동 탭을 따로 만들고 모든 현실 세계의 스케쥴과 별도로 관리했다. 운동의 맛을 한 번 보았으니 내년에도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6. 경제 문맹 탈출

부끄럽지만 원래 돈에 감각이 무뎠다. 재테크는 나랑은 먼 얘기 같고 숫자랑 안 친해서 막연히 어렵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다. 그래서 경제 문맹을 탈출하는 게 2020년 목표 중 하나였다.


우연한 기회로 좋은 부동산 선생님을 만나 재테크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선생님 내년 스승의 날 찾아가겠습니다..). 공부를 하며 '집'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다보니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까지 확장하여 고민할 수 있었던 게 특히 좋았다.


아직 알아야 할 게 잔뜩이지만 사회 초년생이라는 명함을 더 이상 들이밀 수 없는 나이가 되기 전에 이만큼이라도 와서 다행이다. 부동산 공부 덕분에 다른 재테크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른 얘기지만 디자이너들은 여느 직장인들에 비해선 만났을 때 돈 얘기를 잘 안 한다고 느낀다(돈 말고도 재밌는 걸 너무 많이 알아서일까?). 하지만 돈 얘기를 많이 해야 돈이랑 친해질 수 있다. 내년엔 디자이너들이랑 돈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음 좋겠다.



7. 마음 근육은 책으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생산되는 텍스트 콘텐츠의 품질이 점점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품은 텍스트의 무게감은 대체되기 쉽지 않다. (책을 만들어 본 사람은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가 필요한지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사실 독서를 별로 못했다. 그러다 코로나 상황이 심해지면서부터 일년치를 몰아서 하고 있다. 하루에 세 권씩 돌려 읽으면서 역시 독서는 좋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몸의 근육이 신체 활동의 엔진이 되어준다면 독서를 통해 얻는 마음의 근육은 정신이 무너져을 때 회복탄력성의 기초가 된다. 내년엔 더 적극적인 독서를 위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관련 모임을 찾아 봐야겠다. 내가 만들까?



8. 지나면 다 드라마

모든 순간이 다 성장과 성취로 가득 찼던 건 아니다. 사실 하반기에 번아웃을 심하게 겪었다. 모종의 이유로 일에서 목표를 잃었었고 다른 여러 지치게 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디자인 챕터 회고에서 그린 히스토리맵. 하반기 무슨 일


이때도 책이 많은 힘이 됐다. 평소엔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우울한 에세이부터 일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룬 책, 말랑말랑한 소설까지 쭉쭉 읽었다. 운동도 효과 빠른 처방이었다. 그리고 좀 웃기지만 가끔은 이 순간이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됐다. 보통 주인공이 가장 고생할 때가 제일 시청율이 높을 때니까(??) 그냥 멀리서 보면 희극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잠시 됐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좀 나아졌다.




돌아보면 2020년은 안팎으로 대체로 버티는 해였다. 그 속에서 이따금 행복하고 때때로 즐거웠으며 조금씩 성장했다. 가랑비에 몸 젖듯 스며든 성장을 토대로 내년엔 커리어에서 더 큰 임팩트를 내고 싶다.


어디선가 해를 거듭할 수록 시간이 빨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물리학적으로 사실이라는 걸 본 기억이 난다. 그럼 내년은 더 빨리 간다는 뜻인데(그게 가능한가?) 멀미하지 않도록 내년도 함께 버텨주고 웃어줄 사람들에게 미리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사랑과 유머가 2021년에도 상비약이 되어주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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