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한국타이포그라피학술대회, UX 라이팅 발표 회고
지난 6월,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주최로 열린 제29회 학술대회에 연사로 참여했다.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는 디자이너, 학계의 연구자와 교육자를 주축으로 타이포그래피 관련 전시, 출판, 학술대회 등의 활동을 펼치는 기관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타이포그래피 지금 2025'라는 제목으로 타이포그래피와 정치, 웹과 출판에서의 타이포그래피, 브랜드 디자인에서의 타이포그래피 역할 등이 다뤄졌다. 연사 대부분은 타이포그래피 분야의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 연구를 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들이었는데, 나는 특이하게 'UX 라이팅 실무자'로서 디자이너들의 잔치에 초대받았다.
UX 라이터라는 직업과 무관, 혹은 유관하게 나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타이포그래피는 편집 디자인 수업을 통해 처음 만났다. 가물가물한 기억으론 기본적인 레이아웃이나 레터링 등을 배웠던 것 같고, 글자를 트레이싱해 한 땀 한 땀 따라 쓴 기억도 있다.
타이포그래피 소모임 활동도 했었다. 당시 과내 여러 소모임 중 어느 곳에 가입할지 고민했는데, 무릇 ‘진짜 디자이너’라면 타이포그래피를 알아야 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데다 가까운 친구들이 가길래 따라갔다. 내재적 동기 없이 시작한 것 치고 열심히 활동 했는데, 소모임에서 처음 디지털 폰트를 만들어 봤고, 그걸로 전시도 했다. 편집 디자인 프로젝트로 독립 출판도 해 봤다.
하지만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글자와 디자인에 대한 디테일과 끈기가 부족하다는 객관화도 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타이포그래피란 ‘진짜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감히 엿봐서도 안 되는 성역이었다. 그렇게 ‘글자’를 사랑하진 못했지만 ‘글’은 노력 없이 좋아하던 내가, 디자이너에서 UX 라이터가 되고, 타이포그래피학회와 만난 건 흥미로운 전개였다.
그동안 UX 라이팅을 IT 업계의 자리에서 발표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은 청중이 타이포그래피,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디자이너라는 것이 큰 차이였다. 다른 업계의 분들에게도 공감과 인사이트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러나 UX 라이팅과 타이포그래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겠느냐는 학회의 요청은 강력한 참여 동기가 됐다. UX 라이터로서 글과 디자인의 연관성에 대해 항상 강조하는데, 전통적인 디자인의 대표 격인 타이포그래피 씬에서 UX 라이터를 연사로 초대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해 온 가치에 대한 공감으로 다가왔다.
발표 준비를 시작하며 책장을 뒤져 학부 때 읽었던 <당신이 읽는 동안>을 꺼내봤다. 타이포그래피의 교과서 같은 책인데 글꼴을 넘어 ‘읽기’라는 행위를 분석한 내용이다. 10년 만에 펼치니 머리가 지끈해서 다 읽진 못했지만, 책을 통해 디자인과 읽기는 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채로 발표 내용을 구상해 나갔다.
발표는 <디자인을 데려오는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UX 라이팅의 기본적인 개념과 함께 타이포그래피와 UX 라이팅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사례로 설명했다. 끝으론 글이 디자인 과정인 이유와 그 중요성을 강조하며 마무리했다.
일부 내용을 옮겨 보면, 우선 전통적인 타이포그래피와 UX 라이팅 모두 공통적으로 ‘정보의 위계(Hierarchy)'를 다룬다. 모두 글을 쓰기 전에 정보를 이해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글은 단순히 배치된 장식 요소가 아닌 의미 있는 디자인이 된다. 보통 ‘디자인’ 하면 손을 움직여 즉각적인 시각적 결과물을 산출하는 장면을 떠올리지만, 디자이너가 정보의 위계를 고민하는 통찰 역시 큰 의미의 디자인(DESIGN)이다.
타이포그래피와 UX 라이팅의 두드러지는 차이는 쓰이는 공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종이에 올라가는 텍스트는 지면에 고정된 정적인 요소인 반면, 앱이나 웹 같은 디지털 제품의 글은 특정 결과를 유도하거나 다른 화면으로 이동시키는 동적인 장치이다. 따라서 UX 라이팅에서는 특히 앞뒤 플로우가 중요하다. 앞뒤 상황을 명확히 전달하고 예측 가능하게 구성했는지에 따라 좋은 글인지 판단할 수 있다.
발표자로 참여했지만 다른 디자이너 분들의 발표를 통해 새로운 인사이트도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최성민님(디자이너/저술가, 슬기와민)의 발표가 인상 깊었다. 타이포그래피가 글을 담는 도구로서 가진 중립성과 다르게 정치적인 프로파간다로 인지, 사용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진보 진영의 피켓에 쓰인 레트로 스타일의 글꼴이 북한의 서체로 오인받은 사건 등 재밌는 사례들이 다뤄졌다.
발표 중, 타이포그래피의 중립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과거 미국의 타이포그래피 연구자인 비어트리스 워드(Beatrice Warde)가 남긴 말이 인용됐다.
타이포그래피는 투명한 유리잔과 같아야 한다.
이 말은 타이포그래피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임을 강조한다. 타이포그래피는 중립적이어야 하며, 내용의 해석에 영향을 끼치면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투명성과 중립성은 UX 라이팅에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마이크로카피'라고도 하는 UX 라이팅은 카피라이팅처럼 기억에 남거나 되새길수록 가치가 발현되는 글이 아니다. 읽는 이의 마음에 들어가는 글이 아니라, 읽히는지도 모르게 투명해야 한다.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모바일 서비스들을 상상해 보면, 원하는 상품을 탐색하는 과정, 새로운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 대중교통 길 찾기를 하는 과정 등에서 딱히 '기억에 남는 글’은 없을 것이다. (“결제하기”나 “가입하기”와 같은 글이 마음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긴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UX 라이팅과 타이포그래피 모두 투명성이 그 완성도나 퀄리티를 전부 담보하는 게 아닌 점은 흥미롭다. UX 라이팅과 타이포그래피 모두 중립적이면서도 동시에 성격(Character)을 표현할 수 있다. UX 라이팅에선 문체, 문장부호, 길이감 등에 따라 보이스 톤(Tone of Voice)을 조절하는데, 이를 통해 전달하려는 감정의 색채를 표현한다. 사과가 목적일 땐 미안하게, 경고가 목적일 땐 엄중하게 보이스 톤을 조절한다.
마찬가지로 타이포그래피도 부리나 두께의 디자인에 따라 표현되는 정보의 성격이 다르다. 글꼴 자체에 색채를 담아 ‘어떠한 느낌’을.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글(UX 라이팅)과 글자(타이포그래피) 매체이며, 결국 본질은 정보라는 점은 일맥상통한다.
일에 대한 동기부여가 꼭 일하는 중에만 생기란 법은 없나 보다. 이번 발표는 UX 라이터라는 직업인으로서 힘이 되는 경험이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커리어에서 줄곧 '조직의 1호 UX 라이터' 역할을 해 왔다.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홀로 라이터로, 글이 디자인에 왜 필요한지,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를 증명해 가시화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글이 정말 디자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없었다곤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이 일의 중요성에 대한 의심으로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타이포그래피 학술대회를 통해 글과 디자인의 단단한 관계성을 또 다른 각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애초에 글자와 글은 나뉜 적이 없었으며 ‘디자인’ 안에서 아주 촘촘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 말이다.
폐회사에서 학회장이신 심우진님(디자이너/교육자, 물고기)께서도 디자이너의 ‘글자’를 넘어 ‘글’까지 포괄하는 시야에 대해 강조했다. 과거 자신이 디자인을 배울 당시엔 글자와 글을 명확히 구분해 배웠지만, 이제 둘은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 함께 바라봐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발표를 준비하며 처음엔 UX 라이팅과 타이포그래피 사이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부러 노력하며, 디자이너들의 무대에 UX 라이팅이 이질적으로 보일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글자든 글이든, 사람과 일상에 더 나은 변화를 주기 위해 고민하고 실행하는 행위라는 것을 새기고 나니 이제는 어렵게 바라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날의 배움을 연료로, 앞으로도 글이 디자인에 주는 가치와 변화를 계속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빌려 초대해 주신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와 명수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본 글을 가공해 콘텐츠를 제작할 땐 꼭 저자와 출처를 밝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