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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다정 Jun 26. 2023

디자이너와 퍼실리테이터로서 UX 라이터의 역할

UX writer, 사실 writer만은 아닙니다

최근 나를 UX 라이터라고 소개하니 “오 작가님이시네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작가라는 말이 새삼 너무 어색했던 건 UX writer를 직역하면 사용자 경험 작가이니 작가가 아닌 것도 아니지만 사실은 Writer라는 정제된 직무명에 비해 다양한 역할을 다이내믹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런 작가는 아니다. ©️unsplash


나는 지금까지 IT 인하우스 UX/디자인 팀 소속의 UX 라이터로 일해왔고 그동안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UX 라이터로서 작가 이상의 역할 두 가지를 해왔다. UX 라이터이자 대문자로 쓴 디자이너(DESIGNER)와 UX 라이터이자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이다.



UX 라이터이자 대문자 DESIGNER

글만 쓴다고 될 게 아니라는 거죠. 일단 협업이 필수이다 보니까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정말 중요해요. 프로덕트 기반으로 사고해야 하니까 UX도 잘 알아야 해요. 디자이너가 될 필요는 없지만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하죠. (중략) 멀티 태스킹 자체를 전문가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커뮤니케이션, UX 등의 역량 없이 글만 쓴다면, 내 일이 다른 사람의 일을 글로써 도와준 것에 그쳤다고 느끼기 쉬워요.

(숨고 UX 라이터 정서우 님의 인터뷰 | UX Writers in Korea)


라이터가 디자이너가 될 필요는 없지만 당연히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에 공감한다. 영어식 표현을 빌리면 UX 라이터는 designer(소문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DESIGNER(대문자)는 될 수 있다. 챗 GPT 왈 대문자 디자이너(DESIGNER)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디자인 업무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전체 디자인 분야에서 특정한 역할을 하는 개인을 말하는데,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을 기반으로 업무 하는 UX 리서처, UX 라이터 등이 해당된다.



문제 정의에서 시작하는 라이팅

라이터도 DESIGNER 이므로 문제 해결적 사고를 기반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일단 화면/기능에서 라이팅으로 어떤 사용자 문제를 예방 또는 해결하려고 하는 것인지 정의한다. 글은 수학 공식처럼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라이팅 작업은 정답이 아닌 최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문제 정의가 명확하지 않으면 결론 없이 무한히 발산만 하게 될 수도 있다. UX상 문제 정의를 할 줄 알아야 이 정도 라이팅이면 괜찮다, 올바르다를 판단할 수 있다. 문제가 해결 또는 예방됐는가를 기준으로 최선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 플레이스홀더가 사용자의 어떤 문제를 예방할 수 있을까?


위는 링크드인 앱(영어 버전)에 게시글을 올릴 때 나오는 플레이스홀더(Placeholder) 문구이다. ‘What do you want to talk about?’이라는 라이팅이 있다. 사용자는 이 문구를 통해 해당 화면이 텍스트 입력을 할 수 있는 기능이며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을 적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문구가 없다면 ‘사용자가 인풋필드에 어떤 내용을 적어야 할지 모르는 문제’ 또는 ‘인풋필드가 동작되고 있는 상태인지 알지 못하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이 문제를 예방하는 것이 플레이스홀더 문구의 역할이 되는 것이다.


한 줄짜리 간단한 문구지만 하필 이 자리에 왜 이 정보가 필요한지, 문구가 없다면 사용자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는 지를 하나하나 정의하는 것이 글쓰기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 작업이 끝나면 '그래서 라이팅이 문제를 예방 또는 해결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며 ‘잘 쓴 라이팅’인지 점검한다.



design을 고려하는 라이팅

라이터가 디자이너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는 UI 텍스트가 원고지에 쓰는 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UI 텍스트는 정보이기도 하지만 디바이스라는 가로, 세로 사이즈가 정해진 캔버스 상의 컴포넌트이기도 하다. 라이터는 글을 UI 요소로써도 바라보고 가장 가독성도 좋고 디자인의 균형을 해치지 않을 문장의 길이감을 제안한다. ("갤럭시 폴드에서 텍스트가 잘리는데 좀 더 줄일 수 없을까요?“ 같은 피드백은 라이터와 디자이너의 대화에서 빈번하다.)


또, 라이터가 UI 컴포넌트나 그래픽과 잘 어우러지는 지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진지한 톤으로 전달해야 하는 정보가 너무 귀여운 그래픽과 함께 있다면 디자이너에게 제안해 콘텐츠와 그래픽의 결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낼 수도 있다.라이터가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팀에 라이팅과 디자인의 작업자가 별개로 존재하고 각각의 전문영역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서로의 책임이다. 하지만 사용자에겐 라이팅이나 디자인 모두 구분없이 한꺼번에 인지하는 정보이기 떄문에 라이팅이 디자인과 상호 보완적인 상태인지를 확인하는 정도는 라이터도 하는 게 좋다. (그리고 디자인 또는 기획 초반부터 콘텐츠/라이팅 전략도 함께 논의할 수 있다면 이런 확인 과정이 별도로 필요 없다.)



UX 라이터이자 판을 짜는 퍼실리테이터

또 하나의 UX 라이터의 역할은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라고 생각한다. 퍼실리테이터는 개인 또는 조직이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논점을 짚어주며 건설적인 논의를 할 수 있게 이끄는 사람이다(참고: 브런치 - 모더레이터와 퍼실리테이터의 차이)


UX 라이팅은 집단지성이 매우 필요한 일이다. 가령 어떤 앱 화면의 라이팅 한 줄을 쓰려해도 이 문구를 보는 사용자가 비회원인지, 회원인지, 회원이라면 첫 방문인지, 재방문인지 등 구체적인 상황을 모두 알아야 글을 쓸 수 있는데, 라이터 스스로 모든 정책을 알고 있긴 힘들다. 결국 기능/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각자의 전문성으로 기여했던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UX 라이터 1인의 아이디어로 끝까지 끌고 가 완성되는 문구는 거의 없다. 대개는 팀원들의 피드백을 통해 수정의 수정을 거친 ‘진짜_최종_라이팅’으로 마무리된다. UX 라이팅이 함께 만들어가는 글쓰기이기 때문에 그렇다.



더 나은 사용자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는 판을 짜는 일

UX 라이터 스스로는 할 수 있는 역할이 적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애초에 함께 만들어가는 글쓰기라는 협업 행위 자체가 UX 라이터의 존재 덕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UX 라이터의 시안을 통해 팀원들은 더 나은 사용자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할 수 있다.


디자이너의 존재가 특히 빛을 발하는 순간은 모두의머릿속에만 있는 발상을 시각화해 공동의 이해를 맞출 수 있게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때 프로토타이핑의 가치는 그 자체의 완전무결함이 아닌, 덕분에 모두가 실효성 있는 건설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라이팅도 비슷하다. UX 라이터의 존재 자체가 팀원들이 더 나은 사용자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게 하는 촉매제가 된다. 라이터는 우리가 라이팅으로 해결 또는 예방하려는 사용자 문제가 무엇인지 팀에 상기하고 팀원들이 가진 정보를 취합해 논의의 판을 마련한다. 많은 팀원들이 라이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논의 과정에서 UX 라이터가 제안하는 글이 최종 라이팅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UX 라이터는 의사 결정 과정에서 글쓰기 전문가로서 소견을 건네면서도 팀원들이 스스로 더 나은 제안을 내도록 독려한다.



결국 사용자 여정을 함께 고민하는 역할

UX 라이터를 글 쓰는 사람으로만 규정하지 말자. 이건 UX 라이터와 일하는 분들과 UX 라이터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라이터와 일하는 분들은 라이터의 다양한 역할을 이해하면 그들과 협업에서 최대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 UX 라이터는, 특히 주니어라면 한 번쯤 나의 일이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는데(눈물), 다양한 UX 라이터의 역할 가능성을 상기하면 동기부여받을 수 있다.


UX 라이터가 글쓰기 전문가임은 명백하다. 좁은 디바이스 공간의 이미 넘쳐나는 텍스트 속에서도 사용자가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조사 하나, 공백 하나에도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짧은 글이기 때문에 텍스트에서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개복치여야 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개복치가 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지?' 근원적인 질문의 답은 더 나은 사용자 경험 만들기라는 점을 환기하고 싶다. 이를 위해 UX 라이터는 디자이너나 퍼실리테이터가 될 수도,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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