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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착한여행 Mar 15. 2021

사람 대신 책이 지키는 책방_
동네책방 <책약방>

동네책방이 추천하는 우리 마을 사람책_구좌읍 종달리 ①


책약방/ 양유정


종달초등학교 뒷골목에 자리한 3평짜리 공간에 그림책들이 빼곡하다. 허름하지만 정겨운 이 그림책 전문 책방은 주말을 제외하고는 주인도 없는 무인 서점이다. 그리고 24시간 활짝 열려있다. 사람 대신 책이 지키고 마을이 지킨다는 독특한 책방이다.



책약방은 어떤 곳인가요?

그림책을 나누는 공간을 늘 꿈꿔왔어요. 그림책은 짧지만 그 안에 즐거움과 위로, 성찰이 모두 다녀가는 아름다운 예술입니다. 그림책은 유아들만 읽는 게 아니라 온 세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장르라는 것도 더불어 알리고 싶었어요. 그림책의 매력을 몰랐다가 우연히 이곳 책약방에서 그림책을 만나 위로를 받고,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 책방 문을 열고서는, 어느 한곳쯤은 돈이 없어도 머물 수 있는 곳, 어느 한곳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습니다. 



문을 연 첫날부터 책방에 그림일기장과 100자짜리 작은 원고지를 놓아두었어요. 우연히 찾아온 사람들은 아무도 없이 혼자 머물면서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해지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놓으면, 그것이 또 나의 이야기라며 누군가 화답하곤 했어요. 그러면서 책방의 일기가 릴레이처럼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책약방의 약은 그림책과 이 일기라는 이야기를 해주곤 합니다.



‘사람 대신 책이 지키는 책방’, ‘24시간 열린 책방’을 열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해요.

나는 장애와 관련한 기관에서 일하고 있어요. 게다가 책방이 있는 곳에서 한 시간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보니 매일 책방 문을 여는 게 어려웠습니다. 사람 없이 무인으로 꾸리고 싶은 마음이 처음부터 있었지만 두렵기도 하고 용기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뒷문만 열어두고는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살짝 뒷문을 알려주라고 주변 가게에 부탁해두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책방 앞 종달초등학교의 김명선 교장선생님께서 만약 책이 없어지면 우리 아이들일 테니 당신이 변상해주시겠다며 책방의 앞문도 열어두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 말씀에 용기를 내어 24시간 열린 책방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매일 종일 책방을 지키는 다른 책방지기들의 모습을 보며 이처럼 책방을 꾸려도 되는지 고민도 됐습니다. 책방이라는 곳은 사람의 손길과 정성이 닿아서, 그 마음으로 더 많은 사람이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와 자리를 마련하는 곳일 텐데 이래도 되는 것일까? 부끄러운 마음도 컸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들여다보고, 직장에서 퇴근하고 한 시간여를 달려 책의 자리를 매만지고 책방 청소를 하며 보내왔어요. 주말에는 책방에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내내 머물렀고요.



주인 없이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주말이면 내내 책방에 머무르며 학교 운동장에서 놀면서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과 간식도 나누어 먹고, 함께 소리 내 그림책도 읽고, 놀잇감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아이들이 책방을 스스로 꾸미고 정리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아이들에게 ‘책방 지기 1호, 2호, 3호 등’ 역할을 맡겼습니다. 아이들은 어느새 "이곳 책방지기가 누구냐"고 물어올 때, 저를 가리키지 않고 스스로를 칭하더라고요. 

문 앞에 ‘좋은 추억은 쌓고 나쁜 추억은 익고 가세요’라는 맞춤법이 틀린 안내문이 있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써 붙였어요. 사람이 없어도 책약방을 함부로 쓰지 않도록 알리는 ‘책약방 사용법’을 만들기도 했고요.



교장선생님과 이장님은 책방의 불을 끄고 켜주시기도 하고, 태풍이 분다고 하면 책방 안팎 단속을 해주십니다. 요즘은 어느 어머님께서 아이를 등교시킨 뒤,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는 막내와 함께 아침마다 책약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책방 정리까지 해주세요. 그 덕분에 저는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책방 청소를 하러 가는 횟수를 조금 줄일 수 있었어요. 주변의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온 청년들도 책약방을 함께 아껴주고 돌봐줍니다. 그래서 점점 더 책약방은 저의 공간이 아니라 참 많은 이들이 주인인 책방이란 생각이 듭니다.



책약방이 어떤 곳이 되었으면 하는지요?

책방으로 생활이 될 만큼의 수입을 얻기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은 책방 문을 열기 전부터 잘 알고 있었어요. 더군다나 세 평짜리 작은 공간에서 책 이외 다른 것을 판매하는 일 없이 운영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점점 더 책약방의 약은 책을 통한 그럴싸한 처방이 아니라는 것을 느낍니다. 찰나 사진만 찍고 가는 이들은 결코 알 수 없을, 이 낮고 작은 의자에 앉아 나와 닮은 누군가의 마음을 펼치고, 그림책을 펼쳐보아서야 알 수 있는 그 ‘마음’이 약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책방지기가 지어주는 약이 아니라, 이곳에 머무는 당신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약이 되는 곳이라는 것을요. 그것은 제가 책방에 와서 혼자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는 시간을 통해, 이곳에 머물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일기들을 통해 느끼게 되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느리게 느리게 가지만 좀 더 깊게 머무르는 것이야말로 진짜 ‘약’이라는 걸 저 역시 깨닫습니다.



*책약방의 양유정 책방지기는 종달리 사람책으로 열린 마음으로 열일하시는 유창호 종달리 이장님, 마을과 함께하는 교육을 고민하시는 김명선 종달초 교장선생님, 마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신재삼 어르신을 추천했다.   



발행처 ㈜제주착한여행 / 인터뷰·정리 권영옥 / 사진 지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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