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기 / 영화감독
중국 영화감독, 제주에 오다
제주에는 영화 촬영 장소를 헌팅하기 위해 왔습니다. 나는 5세대 감독들을 배출한 북경영화학교에서 촬영을 공부했습니다. 한국인으로는 첫 유학생이었습니다. 입학 면접을 마치고 어둑해진 시간, 5세대 감독들을 기념하는 기념탑 밑에 누워 이 학교에 꼭 다니고 싶다고 바랐던 게 기억납니다. 그만큼 바로 윗 선배들인 5세대 감독들에 대한 선망이 있었지요.
2학년 때부터 ‘무사’라는 영화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해 수십 편의 중국 영화와 한중 합작 영화를 촬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중국 사람이나 한국에 귀화한 한국인으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15년을 촬영감독으로 중국에서 일하다가 2012년 마침내 시나리오를 쓰고 제 첫 작품을 총감독하게 됐습니다. 한중 합작 영화로 일부분을 제주에서 찍기로 하고 영화의 배경을 찾느라고 제주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게 됐어요. 그전에 제주라고는 군입대하기 전 혼자 여행 왔던 게 전부였습니다.
100살 된 팽나무에 반해
2013년 ‘길 위에서’라는 영화를 완성하고 개봉을 기다리던 때입니다. 가시리 마을에서 입주작가로 6개월 정도 생활했습니다. 제주도가 좋더라고요. 중국에서는 운남성의 리장을 좋아했습니다. 차마고도의 중심지로 알려진 그곳에서, 촬영으로 지치고 힘들었던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곤 했습니다. 직업상 영감을 많이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제 첫 번째 시나리오도 그곳에서 썼으니 저를 총감독으로 만들어준 곳이나 다름없지요. 바로 그곳과 제주도가 흡사했습니다. 여성이 활동적인 문화도 그렇고, 자연환경도 비슷하고, 3단으로 구분해서 사용하는 용천수도 그렇고, 우물의 모양새나 사당 문화도 비슷한 겁니다. 제주도에 살고 싶다고 했더니 아는 분이 이곳을 소개해줬습니다. 와보니 100년 된 팽나무가 버티고 서있었습니다. 팽나무에 반해서 눌러앉기로 했습니다.
직행 버스는 하루 네 번
처음에 왔을 때 이 집은 상여집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창고 같은 건물 안에 고재들이 쌓여있고 잡초는 울창하고. 내가 왔다 갔다 하니 마을 사람들이 놀래서 누구냐고 물어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야전침대 하나 놓고 누워있으니 행복하더라고요. 앞집도 흉가였습니다. 집이 움푹 들어가고 창문도 없고 잡초도 자라고 너무 울창해서 동네 분들도 무서워서 잘 다니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잘 정리해놨더니 동네 할머니가 감사하다고, 밤에 무서워서 못 지나다녔다며 고마워했습니다.
직행버스가 하루에 네 번 밖에 오지 않는 이 외진 마을이 맘에 들었습니다. 도시와 사람에 치여 살아서였을지도 모릅니다. 촬영 현장만 해도 스탭 200~300명은 훌쩍 넘으니 사람에 치이는 게 일이지요. 여기 있으니 저절로 사람이 걸러진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진짜로 나를 만나고 싶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면 물 건너 바다 건너 찾아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멀다고 안 옵니다. 그런 것도 좋더라고요.
상처 난 인어처럼
이곳 분들도 편하고 좋습니다. 제주에 와서 몇 년 동안 시나리오를 세 편이나 완성했습니다. 그중 한 편은 제주 전설에 나오는 인어 이야기입니다. 전설 내용은 간단한데요. 인어가 다쳐서 어떤 동네에 온 겁니다. 낯선 동네이지만 그 동네 용천수에 상처를 닦아야 낫기에 용기를 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인어를 보고도 인어가 놀랄까 봐 모른 척해줍니다. 저 인어가 낯선 공간에 와서 조용히 상처 치료하고 갈 수 있도록 우리가 모른 척 해 주자, 이런 마음이지요. 이게 제주식 배려이고 관심이에요. 이 마을 분들도 그러셨어요. 나를 일단 모른 척해 줬습니다. 근데 멀리서 다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걸 알게 됐어요. 어떤 날은 비닐봉지 같은 걸 툭 던져놓고 가는데 보면 상추 같은 거고요. 우리 집에는 귤나무가 없어요. 귤나무가 없으면 이 동네에서는 불쌍한 사람이에요. 마을 분들이 한라봉이니 천혜향이니 온갖 좋은 귤들을 그냥 집 앞에 두고 가십니다. 누구인지도 모르다가 나중에 알게 되는 식입니다. 그런 식의 돌봄, 관심에 나도 치유를 받았습니다.
돌담이 높은 이유
이 마을에 정착한 지 7년이 됐네요. 그 사이에 집도 짓고 마당도 가꾸었습니다. 서울에서 어머니도 모셔오고 결혼하여 아내도 내려왔습니다. 우리 집 마당을 두른 돌담을 보면서 왜 이쪽 담은 이렇게 높게 쌓았을까 궁금했습니다. 뒷집과 사이가 안 좋았나?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이곳 서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고 날카롭습니다. 그러니 북쪽 담을 높이 쌓고 방풍 나무를 심은 것이지요. 담이 높은 이유, 키 큰 나무를 심은 이유, 이 모든 것들이 살면서 체득하고 경험한 지식들입니다. 그런데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답답하다고 담을 무너뜨리는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그러다 북풍에 맞아서 춥고 불편하게 살게 되는 거고요.
처음에 제주도 오면 육지에 살았다는 것, 도시에 살았다는 것 때문에 우월감까지 갖고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농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나보다 문화의식이 덜할 것이다, 재산이 적을 것이다, 이런 식의 우월감이지요. 알고 보면 이 동네에서 제일 가난해요. 다들 재산가들인데도 성실하게 일합니다. 현실적, 문화적으로 나름대로의 경험이 대단한 분들입니다. 거센 맞바람을 맞고 살아오신 분들이라 그분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책들이지요. 그런 걸 아니까 자연스럽게 담이 높은 이유를 깨달아가면서 차분히 살려고 합니다. 여기서 뭔가를 해보겠다고 이 마을의 삶을, 일상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티 내거나 나대지 않으려고 합니다. 찬찬히 보고 닮아가면서 스며들고 싶습니다. 스며들 줄 아는 사람들만 제주에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내 영화의 바게트 빵을 만들고 싶어
이 마을은 담담한 마을입니다. 특별히 아름다운 곳을 대라면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주가 그렇듯이 이 마을도 순간순간 너무 특별한 아름다움을 줍니다. 순간순간이 변화무쌍하지요. 골목에 들어서면 햇살이 주는 느낌이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다 다릅니다. 조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노랗게 익은 감귤들이 마치 만발한 꽃 같습니다. 이 모든 게 나에게는 영감을 줍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시나리오를 3편이나 완성할 수 있었겠지요. 그중 한 편은 이 마을이 배경이고 이 마을 사람들이 주인공인 소소하고 유쾌한 마을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는 수십억, 수백억의 영화를 찍던 사람이 소소한 곳에서 소소한 이야기로 만족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마음에 오래 남는 인생 장면은 우리 일상의 한 장면이라고 믿습니다. 빵을 잘 만드는 사람도 몇 단의 화려한 케이크보다 담담한 맛의 바게트 빵을 만드는 게 더 어렵다고 합니다. 그 빵을 잘 만들어야 진짜 실력자라고 합니다. 나도 이 마을에서, 제주에서 내 영화의 바게트 빵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어느 날 밤에 마당에서 불을 다 끄고 앉아 있는데 오랫동안 본 적 없던 반딧불이 날아오더니 제 옷에 달라붙어 한참을 반짝이더군요.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제주도에 오길 잘했네.
발행처 ㈜제주착한여행 / 인터뷰·정리 권영옥 / 사진 지은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