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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Aug 02. 2022

마음이 열리는 순간

'안녕하세요? ㅇㅇㅇ 입니다.

형수님, 잘 지내셨어요?'

나는 침묵..

그러나 반갑고 고마웠다.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얼떨결에 받았는데

저 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어쩌면 좋은 관계로 남을 수도 있었던 우리의 인연,

짧은 시간이었지만

도련님과 형수로 맺어진 추억들이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십오년이 되었다.

결혼하고 6개월만에 발병한 백혈병으로

사계절과 봄, 그리고 여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는 그렇게 떠났다.

그리고, 나는 벌써 열다섯번째 여름의 중심에 와 있다.


요즘은 그래도 꿈에 덜 나타나고

꿈에 보이더라도 투정을 덜 부리며

오히려 나에게 자책하지 말라고 말하는 그가

동생을 통해서라도 나를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여전히 나를 염려하고 궁금해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를 보낸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에 걸려왔던 전화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그냥 그와 관련된 모든 인연이 끊겨나가는 편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느껴졌으니까.


역시 시간이 약인가?

마주 앉아 이야기할 용기가 아직은 없지만..

통화를 할 수 있는 마음이 열려있었네..


할머니의 소식을 묻고 싶은 마음이

턱끝까지 차 올랐는데.. 차마 소리로 나오지 않았다.


그를 보내고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그를 보낸건 그냥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되는 거였는데

그 관계들을 정리하기 위해, 보험과 국민연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그의 가족의 동의를 받아야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게 나를 지치게 했다. 정말 그때는 하나하나 다 끊어내고 싶었다.


그런 내가,

전화번호는 바꾸지 않았다.

대학교때 만든 번호를 아직 그대로 가지고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려고 그랬나?


암튼 내게도 오늘은 특별한 경험이다.

나를 시험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나 이 정도는 괜찮구나..


마흔다섯이 되기까지

이 시간을 나는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좀 성숙해지면..

내게도 용기가 생기겠지..

내게도 힘이 생기겠지.. 싶었다.


그동안의 나에게 고생했고 잘해왔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젠 정말 편하게 지낼 시간만 기다리고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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