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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민 Jan 16. 2022

박종철과 사람들

 




어제 조선일보에 눈에 띄는 인터뷰가 실렸다.  박종운이라는 사람의 인터뷰였다. 영화 <1987>에 짤막하게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박종철 역으로 잠깐 출연한 여진구가 무지막지한 물고문을 받을 때 경찰들은 "종운이 어딨어?"라고 묻는다. 경찰들은 박종철의 선배 박종운을 쫓고 있었고 박종철은 '참고인'이었다. 박종철은 입을 열지 않았고 끝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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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면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사이코패스같은 인간이 아니라면 그걸 두고두고 기억하며 가슴 아파해야 정상이다.  박종운도 평생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소련 망한 다음에 충격을 받고 2000년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내리 3번을 낙선하면서 이명박 박근혜 를 열렬히 지지했을망정,  박종철을 잊지 못했다고 했다.  그게 사람이니까.  그래야 사람이니까. 



 그가 '변절'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990년만 해도 "지금 울산은 소비에트다!"라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렇게 이상향으로 여기던 소련이 망하고 든든한 성으로 여기던 현실 사회주의가 터무니없이 몰락했다면 생각을 바꿀 수도 있었을 테니까. 더욱이 그가 입당하던 2000년만 해도 현 정부의 총리 김부겸, 이부영 같은 인물들이 한나라당에 있을 때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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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로 그의 고민과 언행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의문이 있다. 그 아쉬움을 영상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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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youtube.com/watch?v=bifyKbpYV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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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조선일보의 인터뷰도 그랬다.. 언젠가의 박계동 의원처럼 택시 기사를 하며 시민들과 만난다는 그의 자세는 그런가보다 할 만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이 인터뷰에서는 덜커덕 발이 걸리고 만다. 집값이나 기타 사안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야 그렇다고 치고, 민주화운동 세력이 과거를 내세우면서 독재 세력이 돼 버렸다는 말도 끄덕끄덕 넘어갈 수 있는데 이 말은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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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는 오로지 북한만 쳐다보고 있죠. 이인영 장관의 통일부에서 만든 달력에는 김일성, 김정일 생일이 표시돼있어요. 같은 운동권이었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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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끔찍이 북한을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통일부는 대북한업무를 주업무로 하는 부서고, 북한의 일정을 챙겨야 하는 곳이다. 음력을 또박또박 헤아렸던 과거 달력에 음력과 간지(干支)가 병기됐던 것처럼 그곳은 북한 일정을 달력에 담아 왔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남한 사람이 태양절을 몰라서야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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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운동권’ 출신이 거기에 시비를 거는 걸 보고 나는 새삼 슬퍼졌다. 과거 운동의 한계를 비판했지만, 박종운은 결국 새로운 증오의 대상과 새로운 도그마를 발견한 ‘과거의 얼치기 운동권’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런 사람을 위해 박종철이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입술을 깨물만큼 참담해지고, 제가 괜히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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