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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민 Jan 17. 2022

내 인생의 플렉스

 아내의 생일을 맞아 


내 인생의 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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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생일은 음력으로 12월 11일, 양력으로 1월 17일이다. 연애 시작할 즈음 생일을 다시 확인할 때 그랬던 기억이 난다. “양력으로 하자. 음력 나 기억 못해.”  그때까지는 음력으로 생일을 쇠던 아내는 그 이후 양력으로 생일을 쇠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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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를 시작한 게 1994년 12월 24일이었으니 그 스무날 남짓 뒤의 생일은 크게 기억나지 않는다. 뭐 대충 좋은 데 가서 좋은 거 먹었으리라. 그런데 그 다음 해의 생일 1996년 1월 17일은 기억나는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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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내가 제안했던 건 ‘선물 같은 거 안 주고 안 받기’였다.  당시에도 만난 지 몇 일째 알뜰하게 챙기는 족속들이 다분히 있었으나 이런 면에 대범하기 이를데없는 (이라고 쓰고 무심하기 짝이 없는) 나는 그런 시시콜콜에 머리를 쓰기 싫었던 것이다.  그래도 생일은 범연히 넘어가기엔 좀 그랬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는 아팠다. 아 뭘 사 줘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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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는 나를 짠돌이로 기억한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아내는 전혀 동의하지 못하고 지금도 부인하지만 데이트하느라 63빌딩 꼭대기 스카이라운지도 가 본 적이 있다. 즉 나도 돈 쓸 때는 쓰는 남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돈 아깝다며 칠색팔색을 했던 건 오히려 아내 쪽이었고, 좀 비싼 데 가자고 하면 먼저 고개를 흔든 것도 아내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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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껏 갖고 싶다는 것도 적절하게 저렴한 쪽이었지, 무슨 가방이니 명품이니 하는 걸 갖고 싶다고 한 적은 1994년 12월 24일 이후 지금까지 없다.  하기야 ‘GUCC’I를 ‘구씨’로 읽어서 “구찌를 구씨로 읽는 PD”로 소문나 다른 팀 작가들까지 구경 오게 만들었던 작자에게 무슨 눈썰미를 기대했을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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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연애 1년을 거친 뒤 다시 맞는 생일에는 뭔가를 안주면 안될 것 같았다. 그리고 식상해서도 안될 것 같았다. 뭔가 “상상도 못했어!” 라고 외칠만한 뭔가를 사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작은 머리에서 뭐가 생각이 나야 말이지. 원래 잘 안돌아가는 머리지만 특히나 이쪽으로는 거의 달팽이 덤블링 수준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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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갔고 그날따라 퇴근도 늦었다. (원래 툭하면 날밤새는 즈음이기도 했고) 백화점 갈 시간도 놓쳤고 당시엔 무슨 마트도 별로 없었다. 낭패감에 젖어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후배 한 명이 이런 말을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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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양말은 어때요?” 


 “패션 양말? 그게 뭐야?”


“당산역 몇 번 출구 앞에 가면 양말 파는 아저씨가 있어요. 그냥 싸구려가 아니라 디게 예쁜 양말들이에요.  여자들 줄 서서 사는데.... 하여간 다른 데선 잘 안파는 양말들이야.  언니가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특이한 선물이긴 할 거예요. 그런데 지금 문을 닫을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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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사무실을 뛰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탔다 당산역 0번 출구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당산역에는 출구가 많다. 내비게이션도 없을 때니 택시 기사 아저씨는 그저 당산역으로 차를 몰았고 몇 번 출구인지 모를 곳에 내려다 주었다. 안타깝게 0번 출구를 찾는데 아뿔싸 맞은편이었다.  패션양말(?)도 보였다.  문제는 아저씨가 노점 문을 닫고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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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아저씨! 내딴엔 벼락같이 외쳤지만 밤 8시경 당산역 앞의 소음은 그 벼락을 다락방 쥐소리로 만들기에 넉넉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술 안 먹고는 처음으로 무단횡단을 감행한다.  신호를 기다리기에는 아저씨의 손길이 너무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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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빵 소리가 “야 이 미친 놈아!”로 자동번역되는 가운데, 또 행여 경찰 아저씨 없나 분주히 눈을 돌리는 가운데 나는 차들을 뚫고 길을 건넜다.  아저씨는 거의 폐점을 마치고 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숨이 턱에 닿으며 무단횡단을 해 오던 총각을 아저씨도 봤던 것이다.  “웬 미친 놈인가 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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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가 가림막을 치우자 그때 온갖 ‘패션 양말’들이 드러났다.  그때만큼 양말이 예뻐 보인 적이 없는 것 같다.  앙징맞은 것, 화려한 것, 야해 보이는 것, 고상해 보이는 것 하여간 골고루 다 있었다.  그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못해 본 멘트를 날리게 된다.  드라마 속 재벌 2세나 하는 그 대사를 말이다. 아아 꿈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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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요.” 


 



 요즘 말로 플렉스라던가. 나는 그날 양말을 플렉스했다.  그렇게 사들고 아내에게 삐삐를 쳤고 퇴근한 아내에게 그 양말들을 펼쳐 보였을 때 아내는 깜짝 놀랐던 것 같다. 그 첫 마디는 찬탄과 아울러 이런 질문 겸 감탄사였다.  “어떻게 이런 걸 살 생각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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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저히 자기 남자친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선물이기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나는 지그시 미소를 지은 채 “나 이런 센스있는 남자야.” 하는 표정으로 20도 각도로 턱을 들고 까페 천정 한구석을 쳐다보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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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도 못할” 선물을 해 주려는 내 의도는 적중했다.  그리고 아내도 그 선물이 꽤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유는 그 후 두고두고 이런 불평불만을 털어놨기 때문이다. “양말 이후에 당신이 제대로 해 준 게 있으면 대 봐. 하나라도 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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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해 준 게 없을까. 그러나 아내는 다 기억하지 못하고 오로지 양말만 기억한다.  다시 1월 17일을 맞이하매 당산역 앞 도로를 무단횡단하며 아저씨 양말 아저씨를 애타게 부르짖던 내 모습이 다시 그려진다. 그때는 나도 청춘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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