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그 버섯 먹어도 될 거 같은데, 나무가 죽은지 3년이 지났고, 인도나 네팔에 가면 그 사람들은 산과 들에서 자라는 나무나 풀 같은 거 다 약초로 사용하던데, 우리 집 감나무에 달린 버섯도 좋은 약초아닐까?
'무슨소리냐 여기는 한국이지 인도가 아니다'라는 동생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이 버섯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얘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인터넷으로 알아보기로 하고 동시에 검색을 시작했다.
#죽은감나무
#버섯
이 두단어로 검색을 한 결과는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다. 죽은 감나무에서 나오는 버섯을 '팽버섯' 또는 '팽이버섯", '감나무버섯'이라고 하는데 실제 사람들이 찌개에 넣어서 먹거나 고기랑 볶아 먹는다는 내용들이 있었다.
죽은 감나무에서 자라고 있는 버섯 사진 (from hometown)
- 엄마 인터넷 확인하면 독버섯이라기보다 먹어도 된다는 내용이 더 많은데 엄마는 어떻게 할거야?
- 그럼 나도 먹을란다.
엄마는 고민없이 바로 결정하신다. 그런 성격 그대로 나도 엄마를 닮았다.
- 맞다. 엄마 이거 먹어도 된다니까. 내가 인도가서 풀 같은 거 많이 뜯어 먹어 봤는데 죽고 그런거 아니더라. 내일 같이 버섯 뜯어서 먹어보자.
내 말에 올케들도 걱정이 되어 친정에 전화를 하거나 어디 전화를 걸더니 한결같이 절대 먹으며 안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이런 버섯은 쳐다도 보지 말라는데 이 집안의 아들들과 올케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의 결정에 환호를 한다.
밤새 시시비비가 길어졌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버섯을 찍기 위해 방문을 나섰다.
- 버섯을 직접 봐야겠다. 어제 어두울 때 찍은 사진으로는 검색한 버섯과 어떻게 다른지 판단이 안 선단 말이야.
일찍 일어나신 엄마는 버섯을 한 주먹 따서 이미 손에 들고 계신다.
- 엄마 맛이 어때?
- 고소하니 버섯이 달고 맛있네.
버섯 맛을 이미 본 엄마는 맛있다며 웃는다. 그 소리에 동생들까지 마당에 나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나도 직접 따 먹어 보겠다며 휴대폰 들고 뒷간으로 간다. 버섯을 따러 가는 내 뒤에서 제발 사고치지 말라는 동생들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크게 웃었다.
- 이거 왠지 방금 깐 햇밤 맛이 나는걸. 버섯이 원래 이런 맛이었나? 고소하고 맛있네.
나는 우리집을 예전부터 '허브하우스'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집에 아무것도 심지 않았는데 사계절 어디에서 꽃씨가 날아왔는지 골목 입구에서부터 마당 전체가 국화, 봉숭아, 나팔꽃, 채송화, 제비꽃, 맨드라미 등 계절마다 온갖 꽃들이 피고지기 때문이다. 빈 터로 덩그러미 남은 앞마당에는 엉겅퀴, 꼬들빼기, 민들레, 냉이, 달래, 씀바귀 등 온갖 풀인지 약초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초들이 수시로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계절마다 먹을만큼 뜯어서 반찬을 담거나 오래 먹을 수 있게 장아찌로 담아 김치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잘 아는 나는 고향집에 갈 때마다 그런 반찬류는 하늘이 주신 친환경 자연산이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먹고 있었다.
이번 제사에 내려오니 마당에 나는 풀 중에서 그동안 방치했던 귀쑥을 뜯어서 처음으로 떡을 만들었다며 엄마는 민트색의 쑥떡을 내 놓는다. 떡의 목적은 아버지 제사상에 올리는 것이지만 미리 맛을 보는데 너무나 부드럽고 맛있다. 역시 우리 집에서 나는 모든 풀은 맛있는 먹거리가 된다.
그런 상황이니 죽은 감나무에서 아름드리 버섯이 자라더라도 이 또한 식용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 엄마 이 버섯 말려서 차로 마시자. 인터넷에는 찌개에도 넣고 고기랑 볶아 먹어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차로 마실래.
그렇게 한바탕 버섯 소란을 피우고 나서 서울에 도착한 뒤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 엄마 감나무에 달린 버섯은 어떻게 했노.
- 전부 따서 볕에 잘 말리고 있다. 근데 따도 따도 자꾸 버섯이 올라와서 언제까지 따야할 지 모르겠네.
엄마는 자식들의 독버섯 걱정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리해 준 검색 결과만 믿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버섯을 알뜰하게 따서 말리고 계셨다.
그러나 이 나무에는 엄마의 아픈 사연이 있다.
엄마가 처음 시집왔을 때, 화장실 입구를 가로 막고 있는 덩치 큰 감나무가 통행에 불편하다며 엄마는 아버지에게 나무를 베자고 했다. 그 말을 기억한 아버지는 며칠 뒤 톱을 들어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톱질을 하시다 뒤로 나자빠지셨고 쓰러진 아버지를 챙기시느라 그 때 엄마도 크게 허리를 다치셨다. 아버지는 그날부터 앓아 누우셨고 엄마가 병원이며 한약이며 백방으로 알아보아도 전혀 차도가 없었다고 한다.
동네 어르신들은 목신이 노했다며 그런 병은 의사가 고칠 수 없다며 무당을 소개했고 엄마는 아버지를 살려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크게 굿을 하셨다고 한다. 굿을 몇 번 하고 나서야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엄마는 그 때 다친 허리와 마음 고생을 생생히 기억하면서 절대 이 나무를 베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신 적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굵은 이 나무는 거의 백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무가 굵고 잘 생긴데다 기둥이 둥글고 곧게 위로 뻗어서 도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여러번 찾아와서 나무를 사고 싶다고 했지만 엄마는 당신이 살아있을 때는 나무를 베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모두 거절 하셨다.
그렇게 나무는 통행이 불편한 뒷간 바로 앞에 서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대로 두었고 감이 달려도 우리는 먹지 않았다. 가을이 되면 무성한 잎이 마당을 뒹굴어서 엄마는 청소하는 일이 힘들어도 그대로 두셨다. 그런 나무의 존재가불편해도 어찌 하지 못하다가 엄마는동네 어른의 조언으로약을 치게 되었다.
엄마가뿌리를 죽이는 약을 처음 친 게 3년 전인데 지금 감나무에서 버섯이 올라 온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에서야 엄마가 나무에 약을 쳤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 소식도 놀랍지만 새로운 버섯의 존재는 더 놀라웠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처럼 믿거나 말거나 생각할 수도 있다. 오랜 시간 감나무에 대한 엄마의 두려움을 옆에서 지켜 본 나는 가족들이 독버섯이라며 먹지 말자고 하는 순간, 이게 진짜 먹어야 할 약초라는 생각이 든 이유는 뭘까.
엄마가 시집와서 이 나무를 베자고 했을 때, 목신이 엄마 아버지 모두 아프게 해서 지금까지 허리도 제대로 못 펴고 평생을 구부린 채 사셨잖아. 결과적으로 약으로 생명을 다한 나무이긴 하지만 엄마한테 남긴 나무의 마지막 선물 같아. 하늘에서 귀한 자연산 약초를 감나무버섯 형태로 보낸 거 같아 이 버섯을 모른 척 하기가 힘드네. 엄마 이거 같이 물 끓여 먹자.
나의 말에 형제들은 큰일날 소리 한다며 말렸지만, 나보다 멘탈이강한 엄마는 이미 버섯을 따서 맛을 보셨고 나도 겁없이 버섯 한 잎을 먹은 상태다.
고소한 향에 가을 햇밤 맛이 나는 이 버섯을 이제 어떡할 것인가!
- 엄마, 말린 버섯 혹시 혼자 먹기 불안하면 내가 설날에 내려가서 챙겨갈 거니까 보관해 줘.
11월부터 2월까지 차가운 기후에서 자라는 겨울버섯으로 죽은 감나무에서 올라오는 팽버섯 또는 팽나무버섯이라 불리는 식용버섯.
자연산이라 마트표 팽이버섯과도 모양이 다르고 아주 맛있는 버섯이라고 검색 결과는 말한다. 엄마가 말린 버섯을 가지고 마을회관에 가서 상황을 말하니 동네 어르신들은 아무도 만지지 않았다고 한다. 시골 대부분의 집에는 죽은 감나무 한 두 그루는 있기 때문에 버섯을 봐도 관심이 없었다.
우리 집 다른 코너에서도 약을 쳐서 죽이고 있는 가죽나무가 있다. 자연스럽게 죽은 가죽나무에서도 버섯이 2년 동안 자라고 있었는데, 엄마는 같은 걱정으로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 올라온 버섯은 모양도 고운데다 엄마와 사연이 있는 나무라 그런지 처음으로 버섯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