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씩식이 Dec 26. 2017

겸손한 멋쟁이

서른일곱, 노동자 박영섭

그와의 급만남(?) 이후로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가을바람이 꽤나 쌀쌀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하룻밤 새에 길목이 하얗게 변하는 계절이 되었다. 녹음된 파일을 통해 한 달 만에 다시 들은 그의 목소리가 낯설다. 당연한 낯섦과, 그래서 더 설레는 마음.

시티보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완전한 타인을 인터뷰한 건 박영섭이 처음이다. 늘 나의 지인, 혹은 지인의 지인이었다. 박영섭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인친’들이 그러하듯 언제 어떤 경로로 팔로우를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센스 있는 피드들을 통해 그가 스타일링에 관심이 많고, 카메라와 커피를 좋아하는 남자, 그리고 최근 살이 쪄서 걱정을 하고 있다는 정도까지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의 이름도, 나이도 몰랐다. 그런데 그가 나의 강아지를 좋아한다. 사진과 짧은 피드 글로만 만난 나의 강아지를 좋아해 주니까, 나도 그의 일상에 더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나의 강아지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이유로 그는 나의 생뚱맞은 인터뷰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그의 또 다른 ‘인친’이 하고 있는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경리단길 어디쯤 골목 안에 위치한 작은 카페 ‘사루’는 유난히 추웠던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노랗고 따뜻한 빛을 내고 있다. 박영섭과 카페 주인은 따뜻하고 건조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카페 주인은 입구에 한가득 놓인 꽃바구니에서 차갑고 노오란 민들레 몇 송이를 뽑아 나에게 건넨다. 공간 안의 모든 것이 몽롱하고 기분이 좋다.

고등학교 때부터 방송 안무를 17년 넘게 해온 박영섭은 갑작스러운 어깨 부상으로 춤을 그만두게 되었다. 남양주 부근에서 지인의 카페에서 3년 정도 일을 했지만, 역시 몸에 무리가 되어 그만두고 쉬다가 3년 전부터 지금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의류 제작을 하고 있는데, 디자이너는 아니다. 샘플과 상품의 생산관리를 비롯하여, 공장과 디자이너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컨트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의류 프로모션 업체라고 볼 수 있는데, 소상공인을 위해 옷을 제작 및 공급하는 곳이다. 주로 어떤 옷을 만들고 싶은지 머리 속에 아이디어는 있지만 직접 디자인과 생산을 하지 못하는 분들과 거래한다. 사장님이 직접 디자인을 하면 박영섭이 공장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샘플 제작을 하고, 클라이언트와 조율하여 최종 디자인이 정해지면 공장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생산 관리를 한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패션은 디자이너나 모델처럼 화려하고 빛나는 사람들의 일인 줄로만 알았다. 눈부시고 값비산 1%의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면, 우리 ‘의식주’의 한 부분을 채워주며 99%의 일상을 만드는 건 스스로를 ‘노동자’라 불리길 고집하는 박영섭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

박영섭은 내성적이라던지, 외향적이라던지 하는 성향으로 직업을 선택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따라오다 보니 춤, 커피, 그리고 옷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것이라고.


“원래 몇 년 후엔 무엇이 되어야지, 하는 식의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편이에요. 다만 단기 목표, 내지는 꿈을 정해놓고 그 꿈을 하나씩 순서대로 이루면서 살아가려고 해요. 예를 들면, 처음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부터 클론과 엄정화 님의 백업댄서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정말로 그분들과 같은 무대에 설 수 있었죠. 20대 중후반쯤엔 나의 팀을 꾸리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가 있었는데, 그 목표를 계속 염두에 두고 일을 하다 보니 진짜로 스물여섯에 팀을 꾸릴 수 있었고요.”

춤이 좋아서 즐겁게 계속하다 보니 20대가 훌쩍 지나가 있었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너무 좋아서 계속하게 되는 일. 14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고, 박영섭은 그 좋아하는 일 때문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상처 덕분에 지금은 흥미진진한 인생 제 2막을 살아가고 있다.

춤과 커피, 그리고 옷. 언뜻 보면 제각기 다른 분야인 것 같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춤을 추고 방송일을 하며 많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함께 지내고 일하는 법을 익혔고, 그러다 보니 낯선 이들에게 커피와 공간을 제공하는 카페 서비스업도 잘 맞았던 거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다양한 배경과 연령의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윤활제가 되어 주는 것이니, ‘무엇을’ 하는 가는 변해왔지만, ‘어떻게’ 하는 가는 한 맥락으로, 더 깊이 들어가며 이어져왔던 게 아닐까.

그는 겸손하다. 3년 간의 카페 일과 지금 의류업계에서 다시 3년 차, 하지만 그는 스스로의 직업에 대해 말할 때 아직도 춤을 이야기한다. 17년 넘게 한 분야에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손사래까지 쳐가며, 커피 업계에서 3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옷도 마찬가지,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춤과 달리 커피나 옷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 일이 아니니, 아직 한참 부족하고 배워야 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차근차근 말하는 박영섭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는 자꾸만 스스로가 부끄럽다. 남들보다 조금 길었던 대학을 졸업하고, 2년 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한 뒤, 2년 간의 유학생활을 거쳐, 두 번의 짧은 회사생활 끝에 지금의 회사에서 다시 2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럼없이 나의 경험과 경력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한다. ‘내가 이런 일도 해봤는데,’ 내지는 ‘내가 어디 어디에 다녔었는데’로 시작하는 오만한 문장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자신감과 오만함의 털끝 같은 차이를 저울질하며 나는 위태로운 사회인 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변하고 스스로가 변해도 한 자리에서 우직하게 삶을 일구어가는 사람 앞에서 쓰고 뜨거운 커피를 들이켜고,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르면 인터뷰이에게 다음 달에 무얼 할지 묻는다. 이번에는 다음 달이 아니라 10년 후를 물어보았다. 박영섭은 내일 무엇이 되어야겠다가 아니라, 오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이니까. 오래 고민하더니 제일 하고 싶은 건 빵집! 이라고 단호한 대답을 내어놓는다. 단, 빵은 제빵사가 만든다는 전제하에. 웃음이 난다. 진지한 표정과 낮은 음색으로 꿈을 이야기하며 빛나는 그의 눈이 귀엽다. 서울에 멋쟁이가 많다더니 - 여기도 한 명 있다. 오늘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겸손한 멋쟁이.


2017년 12월 26일 화요일.


글_ 황은솔

사진_ 이현재

협조_ 플레이버 www.flavr.co.kr


박영섭_ @81supsupsup

장소제공_ 카페 사루 |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28길 6-3

매거진의 이전글 악흥의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