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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식이 Oct 23. 2017

악흥의 순간

서른다섯, 건축가 정소라

나는 정말이지 건축을 사랑했다.


건축가인 부친을 따라 건축과에 진학했다고 말을 했지만, 사실 그건 나중에 그럴듯해 보이려고 지어낸 말이다. 나는 한 번도 아빠의 일을 동경해본 적이 없다. 고등학고 ‘실과’ 수업 과제로 제도와 주택모형 만들기가 있었는데, 남들보다 손쉽게 A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 말고는 아빠의 직업이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진 적은 없었다. 학교에 부모님의 직업을 적어낼 때에도 건축가가 아니라 사업가라고 적었다. 나에게 아빠는 건축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업하는 사람으로 보였으니까. 그런데 왜 건축과를 지원했냐고 묻는다면, 대학 입시원서를 쓰던 날 마침 옆에 계시던 영어 선생님이 제안했기 때문이다. 당신께서 생각하셨을 때 건축가가 멋있는 직업 중에 하나라는 이유에서였다. 지금 기억에 대여섯 군데 정도 입시원서를 넣었던 것 같은데, 모두 건축과에 지원을 했다. 영어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로 추천해서가 아니라, 아빠의 직업 때문이 아니라, 그냥 갑자기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던 건축이라는 걸 너무너무 해보고 싶었다. 부모님의 의견도 구하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빠는 놀람, 걱정, 응원의 순서로 빠른 감정 변화를 보여주셨다. 겪어봤기에 그러셨던 것 같다. 건축이란 그런 거다. 이유도 모르고 그토록 빠지게 되는 것. 의외의 시기에 익숙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가 그토록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미치도록 건축이 좋아졌다.

건축.


나는 정말이지 건축을 사랑했다. 4년 동안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 정확히 말하면 3년 6개월이지만. 마지막 6개월은 식어버린 마음이 가져온 우울한 권태기였으니까. 끝나는 사랑을 참지 못하고 나는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른 건축을 탐닉했다. 이번에는 제삼자의 시선이었다. 사랑을 벗고 바라본 건축은 여전히 멋지고 사랑스러웠지만, 나는 나를 온전히 내어주지는 않았다. 위험한 고비를 잘 넘기고 나는 건축을 벗어났다. 몇 번의 이직과 유학을 거쳐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스스로를 먹여 살린다.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지만, 가끔 건축을 하던 내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나의 스무 살을 온전히 사랑해준 옛 남자 친구보다도, 나를 위해 기꺼이 목숨도 내놓겠다는 내 부모보다도 사랑했던 나의 건축이 그리워지는 순간.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고, 열 번째 시티보이 - 건축가 정소라를 만났다.

본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에서 만나자는 제안에 그녀는 내게 예술의 전당에서 보자고 했다. 그녀가 직접 디자인에 참여했던 호텔이나 유명한 건물 등 건축과 관련된 장소를 상상했던 나에게는 의외의 답이었다. 그녀는 로비에서 만난 우리를 콘서트 홀 쪽으로 안내했다. 방문객과 관람객이 뒤섞여 복잡한 로비와 달리 콘서트 홀 앞의 광장은 여유로웠다. 공간이 비어있으니 비로소 흐르는 음악소리가 들렸다. 예술의 전당 전체를 감싸는 클래식 선율이 이곳에서만 들린다.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는 음악을 듣기 위해 정소라는 이곳을 찾는다. 어렸을 때 오랫동안 피아노를 쳤다고 한다. 그래서 일에 지치고 사람에 치일 때면 예술의 전당을 찾아 피아노 공연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리고 콘서트 홀 앞의 넓은 광장과 조그마한 음악 분수는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몰입하는 연주회의 전과 후에 더없는 여유를 누리는 공간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순간을 즐기는 공간 그대로의 공간. 무엇을 해야 할 필요도, 무엇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는 순간을 그녀는 참 좋아한다.

정소라는 국내 모 건설사에서 호텔과 리조트를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는 사이판에 있는 골프리조트 내에 지어질 신축 호텔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호텔의 전략기획팀, 운영팀과 함께 마스터플랜을 그린 뒤 이에 맞춰서 호텔을 설계한다. 호텔을 찾는 숙박 고객, 골프를 치러 온 골퍼 고객 등 각각의 사용자 특성에 맞게 필요한 공간의 조닝(zoning)을 계획하고 고객과 직원의 편리한 동선을 계획하는 등, 조금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공을 위한 계획을 한다. 고객들이 내 집처럼 편안히 쉬었다가 갈 수 있는 공간이 됨은 물론이고, 호텔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는 공간이 되길 바라며 설계한다.


그녀는 2007년 건축과를 졸업한 후 소위 ‘메이저’ 설계사무소에 공채 입사를 했다. 과에서 늘 1등을 도맡아 하던 그녀였기에 일터에서도 훌륭한 건축가의 자질을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딘가 채워지지 않고 계속 비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설계사무소의 역할은 클라이언트나 건설사에게 도면을 납품하는 것까지가 보통인데, 그녀는 자신이 종이 위에 열심히 지은 집이 실제 형태를 갖춰가는 과정을 계속 지켜보고 싶었다. 처음 백지상태부터 마지막 공사 완료 시점까지 전체 공정을 다뤄보고 싶었고, 언제나 그 부분에 아쉬움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설계사무소에서 5년을 꽉 채우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건설사로 옮긴 지 6년 차.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아 있다.

“사실은 지금 이직을 앞두고 있어요. 지금 일하는 곳에 만족하지만, 첫 직장에서부터 느꼈던 아쉬움을 완전히 채울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두 곳에서 제안이 왔는데, 마침 또 설계사무소와 건설사예요. 선택의 갈림길에 딱 서있는 거죠. 두 길 모두 한 번씩은 가보았던 길이기에 선택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이직 이야기를 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의 직속 선배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건축을 사랑한다고 외치던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건축을 옛사랑이라 적고 있는 지금까지, 나에게 있어 정소라는 성공한 여자 선배의 표본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도 무얼 하고 싶은지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한다. 나는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당신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여성 건축인인데, 그게 웬 말이냐고. 서른다섯의 전문직 여성이라면 이제 그런 고민은 안 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러면 올해만 두 번째 직업을 바꾼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 방황하는 시간을 살아야 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눈으로 이미 물어대고 있었나 보다. 그녀의 목소리가 한층 진지해졌다.

“나도 그럴 줄 알았죠. 서른다섯 살이면 결혼은 물론 했을 거고, 경제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안정기에 들었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결혼이나 돈 문제를 떠나서, 지금도 여전히 무얼 하고 싶은지,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요. 어렸을 때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고민들 속에서도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거죠. 예전엔 고민과 걱정에 괴로워했다면, 지금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얻기 위해 감수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지, 그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보려고 노력해요. 법률스님의 말씀을 예로 들어볼게요. 여기 밤송이가 하나 있어요. 내가 밤이 먹고 싶다면 뾰족한 가시 투성이의 껍질을 벗겨야만 해요. 가시에 찔려 피가 나고 아프기도 하겠지만, 밤을 얻으려면 꼭 해야만 하는 일이죠. 만약 이 고통이 싫다면 밤을 안 먹으면 그만이고요.”

건설사에서 호텔 설계 전문 건축가로 일한 지도 6년, 그동안 정소라는 출장을 통해서든 개인적 휴가를 위해서든 수많은 나라와 도시를 여행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물었더니 올봄 친구와 다녀온 교토를 추천한다. 그녀와 동행한 친구는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었는데,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이틀간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여행을 정말 많이 다니는 그녀도 혼자서 여행을 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소란한 도심지가 아닌 자연 속에 폭 안긴 교토의 작은 마을에 머물면서 그저 걷고 또 걸었다. 산책과 쉼, 그리고 또 산책과 쉼을 반복하며 진정한 여유를 경험한 기억이 그녀의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고 했다. 화려한 패션과 즐길거리들로 가득한 도시들을 수없이 다녀보았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낯선 이들로 가득한 타국에서 느꼈던 그 평안함과 견줄 수는 없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 광장 한 편의 분수가 물을 뿜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평소에도 콘서트를 보고 나와 음악 분수를 한참 보다가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인지라, 그녀의 기쁨에 공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 특별히 좋아하는 곡을 추천해달라 했다. 20년 전, 그녀가 처음으로 피아노 콩쿠르에 나갔을 때 연주한 첫 번째 곡이라며 ‘악흥의 순간’을 추천한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가 제일 좋아한다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찾아보았다. 악흥, 음악에 심취한 순간. 음악에 심취한 채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찬란한 때를 보내는 남자의 표정으로 건반을 누르는 피아니스트를 보며 생각했다. 이 순간을 위해 사람은 사는 건가 보다. 잠자는 시간 말고는 피아노에 골몰해있던 인내와 연습의 시간은 결국 음악의 황홀경에 빠지기 위함인가 보다. 정소라가 견디어낸 시간도, 익숙한 선택과 불안한 마음도, 그 모든 것을 견딘 후에 그녀가 누리고자 하는 것 역시. 가시를 벗기고 알밤을 꺼내어 무는 순간, 바로 그 악흥의 순간.


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글_ 황은솔

사진_ 이현재

협조_ 플레이버 www.flavr.co.kr


정소라_ @s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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