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 소설가 서동찬
여름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오후였다. 만나기로 한 시간의 태양은 계절이 무색하게 작열하고 있었다. 사진 찍기에 좋은 빛이 아니라는 동행 작가의 말을 존중하여 조금 긴 인터뷰를 먼저 하기로 했다. 알고 지낸 지 10년, 인터뷰라고 하지만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자리와 다름이 없다. 앞에 술잔 대신 오레오 프라푸치노를 놓았을 뿐이다. 그는 8개월간의 소설 연재를 마친 후였고, 나는 어쩐지 모를 권태에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2013년, 서동찬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글 쓰는 일로 스스로를 먹여 살린 지 4년이 넘은 셈이다. 하지만 그는 전업 작가라는 말 대신 ‘프리터(freeter; 일본에서 정규직 이외의 취업 형태, 아르바이트나 파트 타이머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처음에 그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 가사를 많이 써두었는데, 함께 음악을 하며 비트를 만들던 친구가 너무 바빠서 한 곡의 노래가 되지 못한 채 남은 가사들이 많았다. 가사라는 게 본디 자신의 얘기를 쓰는 건데, 진행되는 것 없이 계속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소재가 동이 났다. 그래도 계속 썼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그렇게 첫 ‘이야기’를 쓴 게 2010년이었다. 그러다가 어학연수 차 영국으로 갔다. 브라이튼에서 9개월, 런던에서 3개월을 있었다. 브라이튼에서 매일 친구들과 놀러 나가고, 홈스테이를 하던 호스트 패밀리와도 가족처럼 지내면서 바쁘고 밝게 지내다가 런던으로 옮기고 난 뒤, 그에게 깊이 없는 외로움이 찾아왔다. 작은 바닷가 마을인 브라이튼과 달리 런던은 너무 크고 복잡해서 정신이 없었다. 새로 옮긴 어학원에서도 적응을 못했다. 친구도 잘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외로움에 대항하여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에 어학원 수업을 마치면 근처 카페에 가서 해가 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글을 썼다. 전에 써놓은 글들을 완성하기도 하고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고 다시 완성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썼다. 쓰는 것에 빠져서 계속해서 썼다.
계속해서 써 내려간 시간 동안 작가에 대한 꿈이 생긴 걸까. 서동찬은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문학동네 공모전에 출품을 했다. 상 받으면 취업 대신 작가가 되리라는 마음을 먹고 낸 거였다. 장편소설 부문이었는데, 써놓은 글이 원고지 2천 자 분량이었다. 너무 긴 것 같아 급하게 편집을 해서 냈는데, 떨어졌다. 그래서 바로 취업 준비 모드로 들어가 몇 군데에 면접을 보고, 한 건설회사에 입사했다. 회사를 다니던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그는 글을 쓰지 않았다. 회사생활은 많이 힘들었고 아무런 즐거움이 없었다.
입사 후 1년이 지나고,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꾸물대며 올라올 때쯤, 서동찬은 우연히 ‘디지털 작가상’이라는 공모전을 보게 된다. 마침 써놓은 글이 있으니 그냥 한 번 내 보았다. 문학동네 공모전에 냈던 것과 같은 작품이었지만, 이번에는 편집 없이 그대로 냈다. 지난번처럼 상 받으면 작가가 되리라는 당찬 포부도 없었다. 출품 후 공모전에 대해서는 잊고 지내디가, 입사 후 첫 휴가를 얻어서 방콕으로 갔다.
“방콕은 진짜 너무, 너무 좋았어요. 카오산 로드를 걸으며 브라이튼에서 누리던 자유를 다시 만끽하면서, ‘그래 내가 이런 사람이었지, 근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회한과 함께 예전의 내가 너무 그리워진 거예요.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방콕으로 갔죠. 두 번째 방콕 여행 중에 공모전 담당자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어요. 당선이 되었으니 시상식에 참석하라는 내용이었죠.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무슨 웃긴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웃음을 섞어가면서 담담히 말하지만, 이 사건은 말하자면 서동찬이 대한민국 문학계에 등단을 하게 된 이야기다. 등단. 누군가에게는 무겁고 또 간절한 말. 등단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생활에 극적인 변화가 생긴 건 아니었다. 통장잔고가 조금 변한 정도랄까. 그래도 ‘내가 쓴 글이 나만 재밌는 게 아니구나’ 하는 일말의 자신감은 갖게 되었다. 그 자신감으로 쓰고 싶은 글을 계속 썼다. 그 뒤로도 몇 번의 공모전에 출품하여 당선이 되었으나, 그는 공모전의 상금이 아니면 글을 써서 돈을 번 적은 없다고 털어놓는다. 여타의 공모전에 당선은 되었지만 책을 낸 것도 아니니 인세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을 받았다고 해서 독자들이 알아서 찾아 읽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사는 작가는 글만 써서는 절대 작가가 될 수 없다. 대한민국 출판 업계의 구조상 웬만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고서야 인세만 받아서는 생활을 이어나가기가 어렵다. 칼럼이나 강연 등으로 글을 쓰기 위한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이 보통인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청탁은 베스트셀러 작가나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작가에게만 돌아간다. 이토록 부익부 빈익빈이 명확한 업계에서 소설가 서동찬은 나름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먹여 살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있다. 작가가 되기 전과 후에 차이가 있다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쓸 때가 많아졌다는 거다. 공모전의 성격에 맞춰서 글을 쓰기도 하고, 원고를 부탁하는 내용에 맞춰서 쓰기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다가도 서글픈 통장 잔고가 다른 스타일의 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서동찬은 다작하는 소설가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2010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써놓은 글은 꽤 많다. 다만 결과가 없을 뿐이다. 결과가 없다는 말은 내게 백 퍼센트 이해되는 표현은 아니다. 무엇이 결과란 말인가. 소설가가 소설을 썼으면 그만이지, 팔리지 않는 소설은 소설이 아니란 말인가.
서동찬이 어학연수를 빙자하여 자유를 만끽했던 영국에서 나도 유학을 빙자하여 잠시 머물던 적이 있다. 유학생의 주머니는 가벼웠고, 한 시간 정도의 거리는 곧잘 걸어 다녔다. 강을 따라 쭈욱 걷는 코스를 좋아했는데, 다리 아래를 지날 때면 언제나 버스커들과 마주쳤다. 울림이 좋은 굴다리 속, 솔로 바이올리니스트도 드러머도 기타 치며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도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리며 혼신의 연주를 했다. 가끔은 지나가는 이들과 눈을 맞추기도 하고 기분 좋은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멈추어 들어주는 이가 없다. 간혹 쨍그랑 동전 소리가 나지만, 한 곡이 온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려 들어주는 이가 없다. 음악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것과 누구도 듣지 않는 음악을 하는 것은 같은 말이다. 글이라고 다르지 않다. 예술도 결국 팔리지 않으면 결론이 지어지지 않는 것일까. 듣는 이 없이 부르는 노래와 읽는 이 없이 쓰는 글과 보는 이 없이 그린 그림들.
인터넷 강국, SNS 중독, 스마트폰의 홍수 속에서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작가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디테일한 장면 묘사와 느린 호흡 속에서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서동찬의 글이 지금 우리 시대에게 소위 말해 ‘잘 팔리는’ 콘텐츠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서동찬도 최근 연재를 마친 <더 딜>처럼 긴박하게 진행되는 작품을 쓰기도 한다.
2015년 서동찬은 ‘대한민국 전자출판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수상을 계기로 통해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출판사와 연이 닿아 함께 일을 하다가, 네이버 장르소설에 <더 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초고의 내용에서 뼈대만 남기고 모바일로 연재되는 글의 특성에 맞춰서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 사실 <더 딜>은 장르소설이라고 부르기에 조금 애매한 부분이 많다. 전자책을 이용하는 독자들이 장르소설을 많이 찾다 보니, 전체적인 시장의 구조가 장르소설에 맞춰져서 짜여있는 경향이 있다. 네이버 장르소설에서도 <더 딜>은 SF/판타지로 분류되어 있는데,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누아르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판타지 소설인 줄 알고 읽다가 막상 내용에 판타지 요소가 없자 구독을 끊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 부분이 바로 전자책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책은 독자가 한순간 재미가 없다고 느껴도 일단 책의 후반부까지는 읽으려고 노력하는 게 있는 반면, 전자책은 많은 모바일 콘텐츠들과 마찬가지로, 인풋과 아웃풋이 적나라하고 직접적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원하는 장르가 아니다, 재미없다,라고 생각되면 그냥 안 읽는 거다. 도대체 이 ‘장르 소설’이라는 말은 언제 생긴 것인가? 그 장르라는 것은 누가 구분할 수 있는 건가? 작가 스스로도 본인이 쓴 작품의 장르를 모르는데, 평론가 혹은 편집자의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이 글은 이런 장르이다’라고 단정할 자격이라도 있단 말인가. 모든 예술분야의 장르 구분은 창작자가 아닌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 게다. 최근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경우에도 국내에서는 장르 소설이라고 분류되어 있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장르 소설이 대체 뭔지 헷갈리게 되었다. 말 자체도 흔히 사용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뿐더러, 읽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순수문학과 장르 소설의 경계도 애매하다.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 거리인 거지.
독자들이 원하는, 이른바 ‘팔리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읽는 사람에게 익숙한 틀을 제공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속에서 ‘참신한’ 글이라는 건 판타지에 가까운 생각일 걸까. 소설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책이며 학원이라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싶다. 글을 쓰는 것에 법칙이 있다는 게 말이 되는지. 애초부터 ‘작법’이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은 아닌지. 획일화된 독자와 획일화된 평론가들 틈에서 외롭게 버티던 소설가도 결국 획일화의 물살에 함께 타올라야 하는 건지. 일단의 답답한 마음에 대해 서동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새로움을 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최근 문단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들을 보면 문예창작과나 문학과 출신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책과 글을 접할 일이 많았던, 그저 쓰는 것이 좋아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고. 서동찬의 소설이 처음 주목받았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 이리라. 너무 많은 콘텐츠가 부유하는 붉은 바닷속에서 오롯하게 떠있는 은빛 생선.
그와 알고 지낸 지 10년이 되었는데, 이렇게 그의 생각과 삶에 대해 오래 이야기한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내가 생각해온 서동찬은 자기만의 세상에 살면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명확한 선을 긋고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는, 두꺼운 벽을 친 사람이었다. 딱히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거나 에피소드는 없다. 그러니까 이것이야 말로 나의 편견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술 한 잔 마시지 않고도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나가 동행한 사람들을 커피숍에서 새벽 4시까지 앉아있게 하고, 메신저로 농담과 우스갯소리를 잘 하는 꽤나 수다스럽고 밝은 사람인데.
소설가 서동찬에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를 물었더니 그는 고민도 없이 ‘없다’라고 한다.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시티 보이들의 대답을 예로 들어주면서, 직업적인 부분에 있어서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것이 정말로 없느냐고 재차 물었다. 또다시 망설임 없는 ‘없음!’이 돌아온다. 이제껏 한 번도 타협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그에게 무엇이라도 요구했었다면 타협도 하고 고집도 부려보았을 텐데, 지금까지는 그럴 일이 없었다고 한다. 포기해본 적이 없어서 무얼 포기할 수 있고, 또 무얼 포기할 수 없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돈을 받고 글을 썼다면 그런 일이 많았을 텐데, 지금까지는 써 놓은 글들이 이따금씩 돈을 벌어다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생활은 어렵지만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던 적은 없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쓰고 싶은 대로 썼다.
신념은 아직 잘 모르겠다는 서동찬에게도 소설가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는 있다. <골든 슬럼버>,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의 작가인 이사카 코타로의 세계관. 팬들은 ‘이사카 월드’라고 부르는데, 그의 작품들 전체가 거대한 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로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면서 연결되어 등장한다. 그의 소설들은 모두 개개의 독립적인 작품이면서 어떤 식으로든 다른 소설과 연결되어 있다. 소설가 서동찬이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가 만든 모든 인물들이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서동찬 월드’.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대신 낮게 흐르는 흑인 음악과 극히 낮은 인구밀도, 그리고 연중 따뜻한 나날들. 아지랑이 피는 들판 위로 걸어가는 등이 구부정한 남자.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어슬렁거리면서 세상을 관찰하는 소설가가 무심한 눈으로 사람들을 관찰하는 그런 세상 말이다. 자신이 만든 세상 속에서 그저 조용히 보통의 하루를 보내며, 쓰고 싶은 글을 계속해서 써 나가는 것.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쓰고 또 쓸 수 있는 날들이 언젠가는 오기를 바라면서 그는 오늘도 계속해서 소설을 쓴다.
인터뷰가 끝나고 다음날, 서동찬에게서 다이렉트 메시지가 왔다. 아무런 설명 없이 웹 링크만 덩그러니 적혀있었다. 링크를 누르니 그가 자신의 작품들 중에 ‘의미와 상징의 덩어리’라고 말한 단편소설 ‘A Stranger’를 볼 수 있는 사이버 문학광장으로 연결되었다. 단숨에 읽어 내렸다. 여기에서 그의 글이 어땠는지 감상평이나 어쭙잖은 논평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도 그렇지만,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 그러니까 글을 잘 쓴다는 것과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한 내용으로 팩트와 나의 생각을 적절히 섞어 원고지 천 매 짜리 글을 쓰라고 하면 주저 없이 키보드 자판을 두드릴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분량으로 나의 철학과 사상을 녹인 소설을 쓰라고 한다면. 백지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괴감에 빠져 글도 책도 평생 놓아버리게 되거나, 혹은 끝없는 열등감을 학벌이라는 디딤판을 밟고 벗어나기 위해 유학길에 오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소설가 서동찬이 대단하다. 그리고 진심으로 부럽다. 야금야금 ‘서동찬 월드’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의 내일이 궁금하다.
2017년 9월 28일 목요일.
글_ 황은솔
사진_ 이현재
협조_ 플레이버 www.flavr.co.kr
서동찬_ @vianque
<A Stranger> http://webzine.munjang.or.kr/archives/10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