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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식이 Aug 17. 2017

여행의 의미

스물아홉, 관계관리자 이정민

스물둘, 9박 10일의 도쿄 여행이 시작이었다. 낯설지만 익숙한 도시로 혼자 떠난 여행은 나를 곱씹어보게 했고, 세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게 하고,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어주었다. 형언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홀린 듯 동경 구석구석을 헤매던 첫 여행에서도, 두 해 뒤 런던으로 떠났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까지 거쳐온 많은 도시들에서도 나의 여행을 좌우하는 요인 중 팔 할은 어디에 머무는가이다. 여행지에서의 좋은 숙소란 사성급 이상의 준수한 호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하다. 떠나간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야무지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혼자의 시간을 위로할 수 있는 곳이면 된다. 낡아서 깃이 닳아버렸지만 머물 사람을 배려하여 깨끗이 세탁한 시트를 깔아놓은 소파 위도 괜찮다. 극한까지 치달은 피곤을 종아리에 짊어지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벼룩이 뛰노는 매트리스와 전 세계에서 모인 열네 개의 발 냄새가 반겨준다면 하루만큼의 여행이 준 감동도 도루묵이 되기 마련이니까.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해 포틀랜드를 거쳐 하나의 현상이 된 에이스 호텔, 디자인의 의미를 공간으로 보여주는 드룩 호텔, 그리고 얼마 전 영종도에 둥지를 튼 네스트 호텔의 공통점이 있다. ‘요즘 핫 한 호텔들’이라고 뭉뚱그리기엔 화가 날 정도로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공간들이다. 세 호텔의 공유하는 가치는 단순히 여행을 위해 머무는 공간을 넘어, 그곳에 머물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장소성’이다. 그저 며칠 밤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완전한 여행을 채워주고 여행자의 마음은 비워줄,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여행지.

나에게 있어서 여행의 동기는 언제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유명한 그림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다거나, 진짜 맛있는 어떤 음식을 먹고 싶다는 건 다분히 부차적인 요인이다. 그런 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여행 중에 반드시 겪어야 하는 경험이라면, 일상을 살듯 그 지역을 살아보는 것이다. 단 하루를 머물더라도 별다를 것 없이 하루를 보내는 일. 낯선 곳에서 보통의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야 말로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특별함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역시 머무는 장소, 숙소이다.


스테이폴리오는 여행하는 것처럼 일상을 살고, 매일의 일상처럼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하이엔드 숙박 큐레이션 서비스이다. 전국 곳곳의 머물고 싶은 잠자리를 찾아내 소개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테이폴리오에서 관계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이정민을 만났다.

이정민을 만나기 위해 스테이폴리오 사무실이 위치한 서촌으로 갔다. 궁의 서쪽에 위치해있어 서촌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사실 누하동, 옥인동, 통인동 등 9개의 법정동을 아우르는 곳이다. 넓지 않은 면적에 9개의 동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보니, 골목을 꺾으면 다른 동네가 나오고 길 건너가면 또 다른 동네인 셈이다. 개량 한옥, 근대 양옥, 빌라 등 시대를 대변하는 집들을 지나 걷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바뀌는 장면과, 어디를 걷든 낮은 옥탑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의 초록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행한 사진작가는 이사 오고 싶을 정도로 동네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이 작가를 비롯한 젊은 예술가들에게 서촌은 한 번 살아보고 싶은 동네이다. 높은 건물 없이 수평적으로 펼쳐진 지붕들 너머 북악산의 바위가 보이고, 전통 있는 식당과 트렌디한 카페가 뒤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척에 궁이 있고 수준 높은 전시관과 독립서점도 있어서 지식을 향유하고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기에 더없이 좋은 동네이다. 이 정도면 이태원 경리단길이나 합정동처럼 젠트리피케이션 운운하며 원주민의 불만이 생길 법도 한데, 어째 서촌은 잠잠하다. 예부터 궁을 드나들며 일을 보던 전문직들이 모여 살던 동네이다 보니 땅값이 원체 비싸서 그런 거라고. 이웃에 청와대가 있고 문화유적지가 있어서 개발 제한과 주민 통제가 심한 동네인데도, 서촌에 터를 잡은 사람들은 좀처럼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지 않는다. 이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뿐만 아니라 스테이폴리오처럼 서촌에서 삶을 일구어가는 동네 구성원들도 서촌을 많이 아낀다. 어느 동네든 골목 귀퉁이에 쌓여있을 법한 불법투기 쓰레기 더미도 없고, 밤늦은 산책도 불안하지 않다.

보광동에서 누나와 함께 살고 있는 이정민은 어제 서촌의 ‘디귿집’에 묵었다. 스테이폴리오에서 관리하는 한옥 ‘스테이’ 중 하나인데, 최근 건물주가 바뀌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고. 문 닫기 전, 이정민은 마지막으로 디귿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봤는데, 매일 출퇴근하는 동네인데도 밤을 지내고 나니 기분이 새로운 모양이다. 표정과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스테이폴리오에서 이정민의 정확한 직함은 ‘HGRM’이다. Host-Guest Relationship Manager, 즉 호스트와 게스트를 이어주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다. 게스트들이 편하고 쉽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피드백을 받고 서비스 개선점을 찾아내는 일도 한다. 아무래도 스타트업이다 보니 하는 일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고, 모든 팀원들이 멀티 플레이어로 스테이폴리오를 꾸려나가고 있다. 새로운 스테이를 찾아내고, 홈페이지 상에 소개하는 위클리 매거진을 쓰고, 직접 디자인에 참여해 운영까지 하는 ‘Z_Stay’ 관리 등 많은 부분에서 정확한 담당자가 없고, 모두가 함께 하고 있다.

“스테이폴리오에서 일하면서 하게 되는 가장 특별한 경험은 답사예요. 직접 스테이 후보들을 보러 다니고, 어제처럼 하룻밤 머물기도 해요. 직접 사용해보면서 고객의 입장을 경험해보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전국 방방곡곡의 스테이와 스테이 후보들을 돌아보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각기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다는 건 인생에 있어서도 정말 좋은 일인 것 같아요.”


그의 말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스테이폴리오는 이정민처럼 사람 냄새나는 다섯 명이 모여 꾸려가고 있다. 공간의 가진 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테이폴리오와 결이 맞는 스테이들을 모아서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게스트들이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대부분의 호텔 예약 사이트처럼 양으로 승부를 보는 게 아니라, 여행의 가치를 높여줄 곳을 큐레이션 한다. 금액과 스케줄 검색으로 적당한 방을 골라주는 게 아니라, 조금 사적인 방향으로 숙소를 소개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하룻밤 묵을 숙소를 제공한다기보다는 스테이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스테이폴리오 홈페이지에 연재 중인 '위클리 매거진'도 같은 맥락에서 만든 콘텐츠이다. 특이한 점은 에디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서 기사를 쓰고 내용을 구성한다는 것. 그만큼 팀원 모두가 자신이 소개하는 스테이와, 스테이가 위치한 지역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일 게다. 

직업 때문에라도 여행을 많이 다니는 이정민에게 최근 다녀온 여행지에 대해 물었다. 스테이 이름들을 줄줄 이어 말하던 그는, 객관성(?)을 위해 스테이폴리오에 등록되어 있지 않는 해외 숙소를 추천하겠다며 사진을 보여준다. 올봄, 여행차 일본 가마쿠라에 다녀온 그는 호텔 아이아오이(hotel aiaoi)라는 곳에 머물렀단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호텔인데, 부부의 손길이 닿은 인테리어와 곳곳에 숨어있는 감성적인 소품들, 그리고 호스트의 따뜻한 마음씨 등이 모두 어우러져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며 추천을 한다. 그런데 호텔보다 

그의 사진들에 눈길이 더 간다. 작은 휴대전화 화면으로 슬쩍 보아도 예사 솜씨가 아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이번에 사진집도 나왔어요. 독립 출판물이라 부수가 많지는 않지만, 취미로 하고 있는 클라이밍을 주제로 2년간 찍은 사진들을 모은 거예요. 서울에 올라온 뒤로 3년 동안 운동을 하러 다니던 자스(JAS) 클라이밍 짐이 사정상 없어지게 되었는데, 함께 운동하던 사람들과 정도 많이 들었고, 무엇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많이 아쉬워요. 그래서 모두가 함께 추억할 수 있도록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는데, 자스팀과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는 사진집을 만들었어요.”


집에서 청소를 하다 삼촌이 사용하시던 미놀타 XG2를 우연히 발견하며 사진에 입문한 그는 주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다. 그의 사진에는 일상과 여행, 보통과 특별함의 경계가 없다. 스테이폴리오에서 호스트, 게스트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듯, 이정민은 피사체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며 살아있는 순간을 담는다. 그가 선물한 사진집을 훏어보다 문득 물음이 생긴다. 매일 마주하는 순간이 이렇게 찬란한데, 우리는 왜 지금을 떠나 다른 시간을 보내려 하는 걸까. 여행의 의미는 무엇일까.

일상으로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시 떠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당신이라면, 여행이란 그저 시공간이 바뀐 또 다른 일상일 뿐이라면, 마음이 동하면 떠나야만 하는 인생이라면, 스테이폴리오와 함께 떠나보는 것도 좋다.



2017년 8월 17일 목요일.


글_ 황은솔

사진_ 이현재

협조_ 플레이버 www.flavr.co.kr

장소 제공_ 오후카페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9길 33


이정민_ @mydear_enemy

스테이폴리오 www.stayfol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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