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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늘 Mar 05. 2020

디어, 인도

04화. 좋은 사람들

한국에서는 운동화 한 켤레만 들고 온 터라, 편하게 신을 샌들이 필요했다. 콜카타에 있는 큰 시장인 퀸마마 마켓을 들렸다. 길가 노점상에는 이미 선글라스, 옷, 기념품, 장난감 등 잡다한 것들이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빈 배낭으로 와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맘에 드는 샌들을 발견해, 색깔을 고르고 샌들을 신었다 벗었다 하면서 맞는 사이즈를 찾았다. 산다는 말도 안했는데, 비닐 봉지에 신발을 넣고 건네는 상인이었다. 이렇게 쉽게 살 순 없다는 오기가 생겨 ‘안 살거야’ 하고 뒤를 돌았다. 그랬더니 원래 말했던 가격에 반이 깎여나간다. Ok. 


퀸마마 마켓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대형 쇼핑몰처럼 여러 상가 건물이 연이어 있었다. 건물 밖에는 시장처럼 노점상이 즐비어 서있었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상점 밖에 걸린 화려한 옷들을 따라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사리 같은 인도 전통 옷들이 그득했다. 사람들 발에 밟히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누워있는 많은 개들을 피하며 맘에 드는 치마를 입어보고 옷차림을 인도스럽게 바꿨다. 

퀸마마 마켓을 오고가는 인파

저녁에는 기차를 타고 겐지스 강이 흐르는 영감의 도시 바라나시로 향한다. 쇼핑하고 신나게 놀 때만 해도 내가 예매한 기차표의 문제점을 알지 못했다. 기차 출발 시간을 몇 시간 남겨두고서, 내가 예매한 기차표가 대기표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도는 기차칸이 등급별로 나눠져 있고 에어컨과 침대가 구비된 등급부터 여섯 명이서 한칸에 배정되어 좁은 침대에 누워가는 등급까지 무수히 많은 구분이 있고,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좌석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결제가 완료된 상태라 예매가 제대로 된 줄 알았는데, 대기표의 경우도 결제까지는 원활히 진행되고 예약 취소가 생길 때마다 대기인원이 줄어드는 식이었다. 


기차를 타지 못하면 당장 오늘 콜카타에서 묵을 숙소를 발품을 팔아 구해야 했고, 바라나시 숙박 취소를 비롯해 생각했던 스케줄이 전부 엉켰다. 새로 기차표를 예매하려고 해도 표가 없는 상황이라 막막함을 안고서 인도 여행자 커뮤니티인 인터넷 카페에다 글을 올렸다. WL(waitlist의 약자)의 의미를 오늘 아침에 알게 되었고, 당장 저녁에 다른 도시로 넘어가야 할 일정인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의 게시글이었다. 일단은 짐을 다 챙기고 숙소를 나와 기차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계속 8이라는 대기번호 숫자가 줄어드는지 확인했지만 요지 부동이었다. 다음 도시 기차역에서 나를 픽업해준다는 게스트 하우스에도 메일을 보냈다. 


내 기차표가 대기표였어. 난 바보인가봐.
내일 바라나시 기차역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어.
일단 상황이 어떻게 될지 말해줄게. 날 위해 빌어줘.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 속에서 마음도 심란했고, 기차역에 가면 어떻게든 해결될까 싶어 그곳을 향하는 길이었다. 그때 어떤 분이 인터넷 카페 댓글로 아니 아예 게시글로 외국인 전용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기차 창구로 가서 티켓을 구매하라고 알려주셨다. 가격은 일반 기차표에 비해 비싸지만, 철도청에서 외국인 티켓은 일정비율로 빼놓아서 판매하고 있었고 지금 3자리 정도 남았다는 답변이었다. 이 분이 인도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호인 중 한 분이었다. 감사하다고 댓글을 달고 얼른, 외국인 전용 레일 센터로 향했다. 출발 기차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이 떨렸다. 어렵사리 기차표 구매를 위한 양식을 작성하자 긴장이 탁 풀렸다. 창구 직원 분들도 정확한 안내를 해주지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양식을 작성했다. 

하우라 철교 밑 꽃 시장
노랑
선물
아름다운 색색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기차표를 구하기까지 혼이 빠진 상태로 콜카타를 동분서주했다. 기차표를 다시 구하고서 기차역으로 가는 길, 강을 가로지르는 하우라 철교 밑에는 꽃시장이 있었다. 일단, 배가 너무 고파서 가는 길에 바나나를 사고 꽃시장을 구경했다. 인도에는 골목 구석구석에 작은 사원이 있고 언제나 꽃이 올려져 있고 향이 꽂혀 있었다. 꽃시장에서 본 꽃들도 주로 사원에 꽂혀있던 것들이다. 주황색, 흰색 이쁜 꽃들을 구경하고 서있으니 한 상점 주인분이 꽃을 목에 걸어주셨다. 인도에서 받은 첫 번째 선물이었다. 


사람들이 버스 창가에 걸쳐 앉거나 아슬아슬하게 손잡이를 잡고 몸은 밖으로 튀어나와있는 이상한 버스에 올라타고서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기차역에 가냐고 물어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여기야 지금 내려’ 옆 좌석에 앉은 여자분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기차역에 제대로 내릴 수 있었다. 오늘만 몇 명의 도움을 받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무 자리에나 걸쳐 앉아 깊은 숨을 몰아 쉬었다. 다행히, 시원하게 비가 내렸다. 마음이 조금 평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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