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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Dec 10. 2019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기억 속 트라우마 극복하기

이모들의 꿈을 실현시켜줄 도구로써의 삶


극성스러운 이모들과 함께 살며, 콩쿠르를 준비하는 폴.


말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폴에게 주는 이모들 때문일까. 폴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모들과의 소통은, 현관 앞 칠판에 단어들을 쓰는 것으로 대신한다.


극진한 이모들 때문에 반항 한 번 못해보고, 이모들이 그토록 원하던 피아니스트가 된 착한 아이 폴은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에 무력감을 느낀다.


공허한 눈빛, 느린 행동, 자신의 생각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청년은 우연한 기회에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마담 프루스트가 공원에서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것을 본다. 그녀의 개 ‘미미’와 함께 행복하게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프루스트 부인.


폴은 엘리트 연주자이지만 프루스트 부인의 자유로운 연주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의 마음만큼이나 기계적이고 공허한 음악 때문인지 매번 콩쿠르에서 탈락하는 폴이다.

만남, 우연이 아닌 필연


어느 날, 자신의 피아노를 조율해주는 남자가 떨어뜨린 레코드판을 주워다 주려다, 프루스트 부인의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된 폴은 그녀가 대접한 차를 한 잔 마시고 깊은 꿈속으로 빠져든다.


폴이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은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이모들과 살고 있는 것이다. 폴은 희미한 기억 속에서 부모님과 함께 했던 추억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그런 부모님들을 프루스트 부인의 집에서 꿈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폴은 자주 그녀의 집을 찾아간다. 부인이 대접하는 차와 마들렌(부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독이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오마쥬로 이 소품을 사용한 것 같다) 한 조각이면 그토록 염원하던 부모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꿈속에서나마 다정한 한 때를 즐기는 폴과 부모님들. 그러나 이전에도 아버지에 대한 꿈은 자주 꾼 적 있다. 매번 화가 난 모습으로 소리를 지르는 게 전부지만 말이다.

기억? 오해!


그러나 프루스트 부인의 집에서 꾸는 꿈들을 통해 부모님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이 점점 완성작으로 변해간다. 자신에게 화만 내고, 소리 지르며,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으로 나타났던 아버지의 모습은 점점 가족을 사랑하고 아내를 아끼는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폴은 자신이 한때나마 사랑받는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마음이 편안해진다.


폴이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을 때는 공허한 연주를 했지만, 모든 퍼즐이 맞춰지고 나서부터는 마음으로 연주를 하게 돼 영혼이 충만한 음악을 만들어 낸다.


프루스트 부인의 정원에서 폴이 얻어간 것은 ‘사랑’이었다. 그토록 바랐던 부모님의 사랑을 되찾게 된 것이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폴은 프루스트 부인에게서 받은 사랑을 타인에게 돌려주기 시작한다. 비록 엘리트 연주자의 모습은 아니지만, 친근한 이웃으로, 아버지로, 이모들의 조카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자신이 받은 모든 사랑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옹알이를 시작할 때, 폴 역시 한 마디를 내뱉게 된다. 자신이 미움받는 아이였다고 오해하고 살았던 나날들에, 드디어 이별을 고한 것이다.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을 찾는 마음 아픈 자들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해답을 얻어서 나간다. 프루스트 부인은 마음을 다해 손님들을 대접하고, 식물들을 키우고, 동물들을 아낀다. 결국 그녀가 내뿜는 진정한 사랑의 열기는 사람들의 미움과 오해를 녹이고, 자신 마음속의 트라우마와 맞설 용기를 주는 것이다.

트라우마,
끔찍한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기




트라우마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맞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격파해야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트라우마'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과거 경험했던 위기,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네이버 발췌)


그렇다. 트라우마라는 것은 마음에 난 상처다. 실제로 트라우마(trauma)는 상처라는 뜻의 그리스어 ‘traumat’에서 유래됐다. 트라우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도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한데 신체적, 정신적인 상처를 얻게 된 후, 그 상황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장기간 반복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후유증, 왕따, 실수, 꾸중, 싸움 등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충격까지 모두 트라우마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트라우마가 정말 무서운 이유는, 불시에 혹은 특정 상황에 처하면 외상 당시의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와 함께 심리적인 불안이나, 감정적 동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가 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시 운전대를 잡는 것이 두렵고, 왕따를 당했던 학생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실수한 기억 때문에 도전이 망설여지고, 혼날까 봐 소극적이 되는 아이들도 있다.


트라우마는 없어질 수 있을까


내 개인적 견해로는 기억은-특히나 이미 기억으로 남 사건들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적 병력 없는 정상인의 기준으로 봤을 때, 공포나 수치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때에는 기쁨이나 환희, 성취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자주 떠오르고 자세히 기억이 난다.


그래서 트라우마가 없어지거나 잊힐 것이라는 마법의 주문 같은 말은 믿지 않는다. 오히려 수차례 맞서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기억이 나는 것들을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은 일종의 회피일 뿐 마음을 낫게 할 수 없다.


나는 안 좋은 기억일수록 피하기보다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애쓴다. 정말로 잔인하고 쓰라리지만, 그런 과정이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다.


이 영화에서처럼, 조각난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려 전체적으로 완성시킨다면, 부분적으로 볼 때와는 다른 그림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을 혼자 하는 게 어렵다면, 다른 사람과 나누기만 해도 그 짐을 덜 수 있다.


전문가와 상담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주변인에 기대어도 좋다.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반겨주는 사람들은 마담 프루스트처럼 따듯한 차와 마들렌을 기꺼이 내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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