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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l 07. 2020

요즘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똥괭이네 ‘할배’


색이 바래 희끄무레하고, 발톱은 이리저리 구부러 지고, 구내염 때문에 입 주변이 지저분한 고양이. 8키로에 육박하던 몸집이 나이가 들어 아기 고양이만큼 작아져버린 전직 대장 고양이. 이빨은 하나도 없고, 관절염까지 앓는 할아버지 고양이가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똥괭이네 할배다.


유튜버 ‘22똥괭이네’에는 길거리에서 생활하던 고양이들 스물두 마리가 등장한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모두 다 다른 날 구조돼 온 길고양이들이다. 유기된 아이도 있고, 임신한 채 구조되어 어엿한 가정을 꾸린 고양이도 있고, 사람에게 학대당한 기억에 유튜버 이삼님(스물두 마리의 고양이를 돌보는 스물세 번째 고양이 집사님)을 3년째 경계 중인 예쁜 고양이도 있다.


스물두 마리의 고양이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보니, 집이 엉망진창일 법도 한데 일반 가정집에서도 보기 드문 깨끗한 창틀과, 잘 정리된 고양이 화장실, 좁은 공간이지만 공간감각을 살려 옹기종기 설치된 캣타워들을 보고 있노라면, 집사가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양이 세계의 질서다.


똥괭이네에는 대장 고양이 ‘고니’와 그의 형제 ‘이백이’가 함께 구조되어 와 살고 있는데, 그 둘이 주축이 되어 집 안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나이 많은 노묘나, 아파서 두 눈을 잃은 아기 고양이,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심한 고양이들은 보호하고, 장난꾸러기 청년 고양이들이 말썽을 일으키면 놀랍게도 훈육을 하기도 한다. 대장 고양이 ‘고니’는 절대 약자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오히려 천방지축 톰보이 아가씨 고양이들이 싸움을 걸어오면 그냥 맞기만 하고, 할아버지 고양이가 사료를 탐내면 양보하기까지 한다. 그의 형제 ‘이백이’ 역시 7키로가 넘는 거묘에 속하는데도 불구하고, 평화주의자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집안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새로 입소한 고양이들에게 상냥하게 대하며, 적응을 돕는 놀라운 고양이다.

할아버지 고양이는 평소엔 조용하지만, 누군가가 심한 장난을 걸어오거나 장난감을 독식해 다른 고양이들이 놀지 못할 때, 한 번씩 노익장을 발휘해 호랑이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 할아버지 고양이의 이름은 ‘할배’다. 할배는 사람 나이로 치면 호호 할아버지 격(이미 10살 이상으로 추정되는 나이에 구조되어, 현재는 적어도 13세 이상이다). 그런데도 젊은 고양이들이 버릇없이 굴거나, 누군가를 괴롭히면 양 손으로 상대를 제압하여 혼쭐을 내준다.


나는 ‘할배’의 팬이다. 청소기가 다가와도, 온갖 옷을 입히거나 가발을 씌워놔도, 집사가 장난을 쳐도 특유의 은근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할배가 너무 좋다. 할배는 나이가 많아 체력도 약하고 면역력도 약하다. 그래서 먹는 약도 많고, 좀처럼 움직이는 법 없이 잠만 잔다. 그러다 하도 잠만 자서, 집사가 억지로 깨워 화장실에 가라고 말하면 진짜로 화장실로 가는 천재 고양이다. 쳐진 눈매, 억울한 입모양, 넙적한 턱, 흡사 호랑이 같은 큰 머리와 암사자같이 두툼한 콧잔등... 어디 하나 빠지는데 없이 준수한 외모를 자랑하는 완벽한 고양이 할배.


할배는 한 구역을 호령하던 대장 고양이였지만 나이가 들어 젊은 고양이들에 밀려 뒷산으로 도망쳐 왔다. 이미 구내염이 심해 구조하면서 전발치를 했고, 그 덕분에 더욱더 할아버지 같은 외모가 된 듯하다. 그래도 마음만은 아직도 청춘이다. 아무리 대장 고양이가 서열을 잡기 위해, 다른 고양이를 야단치더라도 너무하다 싶으면 기어코 뛰어들어 ‘야옹-‘ 한마디 던지고야 마는 정의로운 고양이. 나는 그래서 할배가 아직도 짱짱하다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점점 야위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점점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을 알면서도, 점점 여자 친구 고양이와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안 그래도 늙은 할배가 더욱 늙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나 보다.

할배는 먹는 약이 다섯 가지가 넘고, 신부전까지 와서 하루 두 번 수액을 맞는다. 최근엔 빈혈로 병원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할배의 그 늠름했던 덩치가 요새는 소위 말하는 ‘아깽이’ 같다. 너무 마르고 작아졌다. 넉넉했던 둥근 턱은 뾰족해지고, 볼살에 파묻혀있던 작은 눈이 엄청나게 커졌다. 할배는 늙어도 귀엽고, 더 늙어도 아기 고양이처럼 예쁘다. 그런데 왜 내 가슴이 이렇게나 아픈지...


이삼님은 부지런한 사람이다. 본업을 하면서도 거의 하루 한 편씩 영상을 올린다. 고양이가 스물두 마리다 보니, 할배 영상만 올릴 수는 없을 터. 각기 개성 넘치는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돌아가면서 주인공을 맡는다. 그러나 나의 눈은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를 좇는다. 어느 구석에서 할배 꼬리라도 보이면 ‘살아있구나’하고 안도한다.


할배가 말썽꾸러기들을 혼내는 영상이 올라오면, ‘그래, 우리 할배 아직도 창창하지!’하고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아파서 감기라도 걸려 후리스 입고 콧물 뚝뚝 흘리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나기도 한다.


이렇게 예쁜 고양이가 있을까. 나에게 할배는 정말 정말 잃고 싶지 않은 특별한 고양이다. 할배는 지금 여린 불꽃을 태우는 중이다. 찬란했던 청춘, 동네를 호령했던 용감한 고양이 할배는 요새 어린 고양이처럼 조그만 고양이가 되었고, 약이 먹기 싫어 집사의 품에 얼굴을 숨기는 여린 고양이가 되었다. 그만큼이나 약해져 버린 생명의 불씨를 안간힘을 쓰며 붙잡고 있다. 나도 매일 할배가 건강하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나의 온라인 고양이에게 밤 인사를 전한다.


“할배야, 아프면 온 힘을 다해서 이삼님을 불러라. 구석에 숨어 들어가 끙끙 앓지 말고 꼭 알려줘야 돼.”


https://youtu.be/oVahRSR2bv0


https://www.youtube.com/channel/UCYaBl0gtXV_3sHW4bQjq0hA

https://youtu.be/vdPdqzRu5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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