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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Dec 14. 2020

식탁을 차리며

문학 에세이, <맛있는 소설들> 시작합니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 속에는 항상 음식이 있었다. 살기 위해 먹든, 먹기 위해 살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소설은 문자로 표현된 ‘삶’이다. 문자의 세계라도 누군가는 먹는다. <맛있는 소설들>에서는 문자로 이루어진 세계에 박제된 주인공들을 위한 식탁을 차린다.”


최초의 기억은 어디로부터 시작되는가. 태어나 울음으로 생명을 알리고, 어머니의 젖을 빨며 생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삶의 시작이다. 인간의 삶은 사건과 먹는 것의 연속이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먹어야 하고, 살아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사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며, 기억에 남는 순간만이 인생의 사건으로 남는다. 이를테면, 행복했던 사건들, 슬프거나 아프거나 혹은 불행했던 감정들이 흘러가지 않고, 가슴 한 켠에 모인다. 그리고 그런 순간 속에서도 인간은 먹는다.

졸업식, 결혼식, 장례식 등 큰 사건은 물론이고, 시험을 망치거나 취업을 하거나, 친구나 연인과 만났을 때, 간만에 온 가족들이 모였을 때 등 사소한 일상에서도 우리는 웃고 울고 떠들고, 또 먹으면서 추억을 쌓는다.

때때로 먹은 것 자체로 기억에 남는 사건이 될 때도 있다. 먹는 것이란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어떤 사건과 기억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먹는 것과 사건 사이에 특별한 연결고리가 있는지 탐구해보고 싶었다.

내 삶의 이야기나 내 주변인의 이야기로는 표본이 턱없이 부족하고, 내 주변의 일상은 타인에게 그리 큰 흥미를 자아내지 못할 것이므로, 나는 다시 한번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사례를 빌리기로 결심했다. 인간의 최초의 기억은 불분명하더라도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은 모두 기록으로 남았고, 사건과 먹는 것 사이에 꽤 분명한 관계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부고를 들은 뒤에 태연히 브런치를 먹으며, 카페 오레 한 잔을 마셨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특정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가려는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장치다.

표본은 더 있다. 차 한잔에 곁들인 마들렌 한 조각으로 옛 추억을 소환하여 깊이 감상에 젖는 주인공도 있고, 사랑했던 연인이 자신의 언니와 결혼하는 막장 드라마 속에서 눈물 젖은 요리를 만들어야만 하는 주인공도 있다.

이렇듯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마주하는 사건과 그 사이에 곁들여진 요리 한 접시는 큰 의미와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앞으로 크게 피타이저, 메인 요리, 디저트로 이어지는 챕터마다 각각 다섯 편의 소설이 등장하게  것이다. 그리고 소설  주인공의 이야기와 그들이 먹은 상징적인 요리들을 차례로 소개하며, 소셜 먹방이 아닌 소설 먹방을 이어가려고 한다.

요컨대, 소설 속 주인공들의 기억에 남을만한 사건과 잊지 못할 인생의 요리 한 접시,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맛있는 소설들>이라는 타이틀에 담아, 허구의 식탁을 차려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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