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돌아온 브런치
칼럼을 기고하며
여름 즈음 원고 청탁 메일을 받았다. 때마침 십사만 자짜리 원고를 해서 넘긴 터라 여유가 좀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밤 사이 계절이 바뀌듯이, 그렇게 새로운 원고 주제와 마주하고 나니 오래 전에 썼던 책이 떠올랐다. 작품 속 캐릭터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하는 책이었는데, 그때는 소설을 주제로 했다면 이번엔 영화나 드라마를 주제로 캐릭터 분석을 하는 것이다.
간만에 예전에 썼던 도구들을 책상으로 끌고와 이론을 짜맞추면서, 열정적으로 여름을 났다. 정말 오랜만에 쓰는 칼럼이었는데, 에디터 분들의 도움에 힘입어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네 편의 글을 실어 보냈고, 이제 한 편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미지의 서울>이라는 드라마 속 주인공의 심리를 분석하는 글이다.
사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실존 인물이 아니기에 내가 하는 심리분석이 맞냐, 틀리냐 하는 문제는 언제나 내 마음 한 켠에 찜찜한 자취를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쓰고, 어딘가에 그걸 재밌게 읽어주는 미지의 독자가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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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브런치로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린 게 21년도다. 쓰는 글의 장르를 바꾸어 보겠다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분투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만족도 불만족도 아닌 상태로 계속 방향을 모색중이다. 그리고 가능성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여러 갈래의 길들 중 하나가 바로 브런치였다.
<카우치와 만년필>이라는 매거진명은 내 첫 책의 가제에서 따온 것이다. 처음 기획 단계에서는 영화와 소설 속 주인공의 심리분석을 동시에 실으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소설 위주로 흘러가게 되었다. 카우치는 영화광을 일컫는 카우치포테이토에서 떼어온 것이고, 만년필은 소설가를 연상시키는 상징물이다. 즉 <카우치와 만년필>은 영화와 소설을 아우르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담은 타이틀인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내가 이 매거진에 쓸 글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카우치와 만년필>은 내가 감명깊게 본 영화나 책에 대한 단상을 가볍게 정리하는 공간으로 사용될 것이다. '당분간은'.
왜 굳이 당분간이라는 기한을 두었냐 하면, 새해부터는 오래전부터 기획했던 글을 써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연말까지는 소재를 모으고 칼럼을 구상하는 일에 집중하고, 2026년 1월 1일부터 새로운 작품으로 인사드리려고 한다.
(오래도록 떠나있었던 사람이라 머쓱하지만) 4년 만에 돌아온 소회를 밝히자면 브런치가 그대로 있어줘서 너무나 고맙다. 무작정 글을 써올릴 공간이 있다는 것은 그저 '좋다'는 말로는 부족한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회사 다니면서도 주말이면 까페로 가서 글을 쓰던 내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그 당시 동전 한 푼 벌어다 주지 못했던 그 열정이 아직도 뜨거운 온도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쁘고, 지금은 어느 정도 내 글로 값을 흥정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동안 나는 어느 정도 성장했고, 어떤 점에선 그대로다. 내 성장의 동력을 시험하고, 또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써 또다시 브런치를 활용할 수 있어서, '좋다'.
진부한 말이지만, 지금으로썬 대체할 표현을 찾을 수 없다.